
이번 전쟁은 유엔을 통해 십수년에 걸쳐 축적해온 ESG(환경보호, 사회적 책임, 투명경영)의 철학을 무참히 짓밟고 있기에 전쟁 리스크는 ESG의 죽음을 뜻한다. 그린환경은 밤낮으로 공격하는 폭격과 죽음에 의해 폐허가 되고 승리의 욕망에 치우쳐 서로 상처주고 죽이는 행위에서 인권의 가치는 염두에도 없다. 70여년 전 더 이상 전쟁 없이 인간의 존엄성을 살리기 위해 국제사회에서 창설한 유엔이나 제네바협약, 적십자, 포로에 대한 예우, 부상자 치료 등의 시스템을 연달아 구축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하나도 적용되지 않는다. 양국가의 선동선전으로 어디까지 진실인지 파악할 수 없는 치열한 프로파간다 전쟁은 점입가경으로 ‘진실성’ ‘신뢰성’의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국가 ESG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공급망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이다. 전쟁은 국가의 투명한 거버넌스의 부재로부터 비롯된다. 그동안 러시아가 8년 넘게 추진해온 자유주의 경제정책이 완전히 명령과 통제방식으로 변질되어 초래된 이번 전쟁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 공급망의 봉쇄로 인해 치솟는 인플레이션과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경제 문제이다. 엘비라 나비울리나 러시아 중앙은행 총재는 “서방의 금융제재보다 공급망 봉쇄가 더 뼈아프다. 공급망이 무너지고 재고가 소진되면 물가가 치솟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세계은행의 올해 러시아 경제에 대한 전망치는 –11.2%이며 러시아 GDP는 무려 –28%나 역성장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가져온 가장 큰 경각심은 ‘공급망 전쟁’으로 치닫는 위기를 맞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밀 전체 수출은 25%를 차지하고 보리는 30%에 해당한다. 우크라이나의 해바라기유는 전세계 수출의 77%를 차지할 정도이다. 특히 러시아는 비료에 필요한 요소수·칼륨·암모니아 등 수출이 15~18%을 차지하는데 미국도 비료가 부족해지면 수확량이 30~40%가 떨어지게 마련이다. 니켈의 경우 세계 전체에 13% 공급하는데 일반적으로 니켈 하루거래가 2만 달러였으나 이번 전쟁으로 발생한 공급부족(shortage) 때문에 하루에 사상 최초로 10만 달러로 치솟았다. 이번 전쟁으로 밀가루와 팜유의 품귀현상이 발생하면서 식품값의 도미노 인상 등 동시다발적 식량위기의 공포가 확산되면서 ‘식품안보’의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세계 식량농업기구가 집계하는 세계 식량가격지수는 지난 2월 140.7로 2차대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비료가격도 크게 오르면서 전 세계 농가들이 자구책을 찾고 있다. 제3국으로 낙후되었던 아프리카·중남미·중국 등 자원보유국들에서 그동안 선진국이 약탈했던 ‘자원의 복수’가 시작된 셈이다. 이제 후진국의 ‘자원의 국유화’를 통한 ‘자원의 민족주의’ 추세는 더욱 심화된다는 점에서 각 국가의 공급망 외교는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부상될 것이다.
이혜주 국가 ESG 연구원 공동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