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예금자보호 1억으로 늘리자" ··· 한도 상향목소리 커진다

공유
0

"예금자보호 1억으로 늘리자" ··· 한도 상향목소리 커진다

23년째 5000만원 제자리
선진국 비해 턱없이 낮아
여야, 법안 발의 등 속도
예보료율 부담 소비자 전가
도덕적 해이 부작용 우려도

지난 2011년  저축은행 사태가 터지며 금융당국의 저축은행 영업정지 조치가 이어지자, 예금 손실을 우려한 예금자들의 '뱅크런(예금 대량 인출)'이 발생했다. 저축은행 사태 당시인 2월 18일 저축은행 부도로 불안한 시민들이 예금 인출을 위해  부산2저축은행 덕천동지점에 몰려와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2011년 저축은행 사태가 터지며 금융당국의 저축은행 영업정지 조치가 이어지자, 예금 손실을 우려한 예금자들의 '뱅크런(예금 대량 인출)'이 발생했다. 저축은행 사태 당시인 2월 18일 저축은행 부도로 불안한 시민들이 예금 인출을 위해 부산2저축은행 덕천동지점에 몰려와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을 계기로 국내에서도 언제든지 '뱅크런(예금 대량 인출 사태)'이 발생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자, 23년째 5000만원대에 머물러 있는 예금자보호 한도를 상향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다만, 예금자보호 한도를 확대시 금융사가 예금보험공사(예보)에 납부해야하는 예금보험료율(예보료율)도 올라가게 돼 그 부담 만큼 고스란히 금융소비자에게 전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시각도 있다.
21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 경제위기대응센터는 예금자보호법을 개정해 예금자보호 한도를 1억원 이상의 범위에서 예금보험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정하도록 추진한다. 또 급박한 경제위기 등으로 예금자를 보호해야 할 경우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예금 전액을 보호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진행키로 했다.

예금자보호 한도 상향 관련 법안은 여야 모두가 발의한 상태다. 민주당 신영대 의원과 국민의힘 홍석준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법안은 현재 5000만원인 예금자보호 한도를 1억원 이상으로 상향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뱅크런을 대비하기 위한 예금자보호 한도 상향 논의에 속도가 붙고 있다. SVB의 초고속 파산 원인으로 '디지털 뱅크런'이 지목되면서 이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에서다.

SVB의 파산 원인은 급격한 금리 인상에 따른 주고객인 스타트업들의 예금 인출요구와 채권 투자 손실이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은 예금자들이 은행도 파산할 수 있다는 불안 심리 때문에 단기간에 돈을 찾게 되면서 손 쓸 틈도 없이 무너졌다는 데 있다.

과거와 달리 예금자간 소식을 전하는 속도도 빠를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예금을 순식간에 빼가면서 온라인에서 돈의 쏠림 현상에 대한 공포도 커지고 있다. 특히 디지털 강국인 한국에서 디지털 뱅크런이 발생하면 그 파장이 더 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예금자보호 제도가 실질적인 물가 상승과 현재의 국민소득 수준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예금자보호 한도는 예전의 2000만원에서 지난 2001년 5000만원으로 상향된 후 23년간 그대로 유지돼 왔다. 국민의힘 홍석준 의원실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우리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액(GDP)은 약 3992만원, 부보예금액은 총 2754조2000원으로, 2001년 대비 각각 2.7배, 5.0배 수준으로 늘었다.
20년 넘게 예금자보호 한도는 묶여 있지만 국내 예금 규모는 이를 초과해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예금자보호를 받지 못하는 예금 잔액의 경우 2018년 976조원 수준이었지만 2019년 1072조원, 2020년 1265조원, 2021년 1422조원, 2022년 1504조원으로 최근 5년 새 500조원 이상 불어났다. 금융사가 파산할 경우 보호 받지 못하는 예금이 점차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우리나라의 예금보호 한도는 낮은 수준이다. 주요국 예금보호 한도는 △미국 25만달러(약 3억2700만원) △영국 8만5000파운드(약 1억3500만원) △캐나다 10만캐나다달러(약 9500만원) △일본 1000만엔(약 9800만원) △프랑스·독일·이탈리아 10만유로(약 1억4000만원) 등으로 우리나라보다 월등히 높다. 1인당 GDP 대비 보호한도 비율은 미국은 3.33배에 달하지만 한국은 1.17배에 그친다.

하지만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예금자보호 한도를 높이려면 금융사들이 예보에 지급하는 예보료율(예금 잔액의 0.08~0.4%)를 높여야 하는데, 결국 이 비용이 예금금리 인하, 대출금리 인상 등으로 금융소비자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정부가 보증하는 예금 규모가 커질 수록, 소비자들은 한 푼의 이자라도 더 받기 위해 부실 금융사인 것을 알면서도 예금을 맡기게 된다. 또 금융사 입장에서도 건전성이 취약해도 예금자 보호를 핑계로 예금을 끌어 모아 엉뚱한 곳에 투자한다. 금융시스템 전반적으로 리스크를 키우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때문에 예금자보호 한도를 유연하게 해 위기시 정책수단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예금자 보호를 받지 못하는 예금 잔액은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하지만 예금자 수 기준으로 보면 95% 이상 현행 한도로 보호 가능하다. 한도 조정은 입법 절차 없이도 시행령 개정만으로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다. 실제, 금융당국은 SVB 사태 발생 즉시 미국 정부가 "예금자보호 한도를 넘는 예금도 전액 보호하겠다"고 발표하며 조기 수습에 나서자 이같은 조치가 과연 국내에서도 가능할지 검토하고 있다.

과거, 국내에서도 예금을 전액 보호해준 사례는 있다. 정부는 1997년 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금융사의 구조조정 충격을 줄이고자 2000년 말까지 한시적으로 예금 전액을 보장 했다. 다만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당시에는 5000만원이 넘는 예금에 대해선 보호해주지 않아 형평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의견도 있다.

예보는 지난해 3월부터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예금자 보호 한도를 1억원 정도까지 2~3단계로 나눠 인상하는 방안'과 일단은 '현행 한도를 유지하고 금융 위기 등이 발생했을 때 한도를 높이는 방안' 등을 두고 논의를 계속하고 있다. TF는 논의된 내용을 정리해 오는 8월 중 국회에 보고할 계획이다.


정성화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h122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