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한은 “물가안정기 진입 아직 일러…마지막 리스크 잔존”

공유
0

한은 “물가안정기 진입 아직 일러…마지막 리스크 잔존”

주요국 과거 고인플레이션기. 사진=한국은행
주요국 과거 고인플레이션기. 사진=한국은행
우리나라 인플레이션 지표가 점차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물가안정기 진입과 관련한 마지막 단계(Last mile·라스트 마일) 리스크가 잔존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마지막 단계 리스크는 가격조정 모멘텀과 인플레이션 재발 위험이 상존하는 가운데 기저효과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안정되어 보이는 상황을 의미한다. 한국은행은 물가안정기조로의 재진입 여부는 부문간 파급, 기대인플레이션·기조적 인플레이션 등 다양한 관점에서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한국은행은 29일 발표한 BOK 이슈노트 ‘물가안정기로의 전환 사례 분석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역사적으로 물가안정기로의 진입에 실패했던 사례를 보면 마지막 단계 리스크에 대한 부주의에 기인하는 경우가 다수였다고 평가했다.

한국은행은 IMF 워킹페이퍼를 인용해 물가 안정기 진입 실패의 주요 원인은 마지막 단계의 리스크에 대한 경제 주체들의 부주의한 태도에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인플레이션에 민감한 상황에서 상품 부문이나 유가 충격으로 인한 일회성 물가 상승은 기저 효과에 의해 물가 안정으로 오인될 가능성이 높다.

기저 효과로 인해 물가가 안정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는 착시 현상일 수 있으며, 정책 당국이 성급하게 통화 완화 기조로 돌아선다면 물가 관리에 실패하게 된다는 것이다.

해외 연구 결과에 따르면 물가안정기 진입에 성공한 국가들은 최초 인플레이션 충격 이후 물가가 충격 전 수준으로 돌아가는데 평균 3.2년이 걸렸다.

한국은행은 현재 인플레이션 목표 수준 달성 시점에 대한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물가 안정 기준 및 판단 지표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단순히 인플레이션 수치가 2%를 넘거나 밑돌았다고 해서 물가 안정 여부를 판단하는 경향이 있지만, 장기적인 기조적 물가 안정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들은 인플레이션이 소비, 가격 결정, 투자 등 경제주체의 일상적 경제 활동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상태를 물가 안정 상태라고 정의했다.

물가 안정 상태에서는 경제주체들이 현재의 물가나 인플레이션에 대해 합리적 무관심을 유지한다. 합리적 무관심에 따르면 경제주체들은 소화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경제적 의사결정에 중요한 정보에만 선택적으로 집중한다. 물가안정기에는 인플레이션이 경제주체들의 의사 결정에서 중요한 정보가 아니기 때문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다.

물가안정기에 접어들면 어떤 특정 부문에서 발생한 인플레이션 충격이 여타 부문으로 파급되지 않고 자체적으로 소멸하게 된다. 만약 물가안정기에 유가 충격이 발생한다면 일시적인 충격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어 충격이 발생하더라도 큰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민감한 상태라면 물가 충격에 대해 경제주체들의 의사결정이 변하게 된다.

물가안정기에 종합 지표상의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으로 등락할 수 있다. 정성엽 한국은행 정책분석팀 차장은 “유가 충격 등 충격이 발생하면 종합지수 상으로 인플레이션 지표가 한 번 크게 상승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며 “일시적으로 등락을 할 수가 있겠지만 기조적으로는 장기간 목표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상태가 된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상품 및 개인서비스 인플레이션. 사진=한국은행이미지 확대보기
우리나라 상품 및 개인서비스 인플레이션. 사진=한국은행

한국은행은 BIS 기준에 따라 5년 이동 평균 소비자 물가지수가 5%를 넘는 기간을 고인플레이션기, 그 이하를 물가안정기로 구분했다. 고인플레이션기에는 부문별 물가 충격이 다른 부문의 가격 조정을 촉발했던 반면 물가안정기에는 충격이 발생하더라도 부문별 인플레이션의 독립적 충격이 상대가격 변화만을 일으키는 경향이 나타났다.

특히 이는 상품 부문의 인플레이션이 서비스 부문으로 파급되면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통상적으로 석유나 식료품 등에서 충격이 발생하면 전년 동기 대비 인플레이션이 크게 상승하게 되는데, 다음 해에는 그 기저효과로 인해 상품 부문에 인플레이션 효과가 사라지게 된다. 그런데 고인플레이션기에는 상품 부문에 충격이 발생하면 서비스부문의 인플레이션으로 전가되면서 연쇄적인 반응이 나타난다.

이러한 현상은 과거 우리나라의 상품·서비스 인플레이션 동향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고인플레이션기에는 상품 부문의 인플레이션이 등락을 하면서 시차를 두고 서비스 부문을 자극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물가안정기에는 서비스 인플레이션이 안정적인 움직임을 이어가는 가운데 상품 부문이 자체 등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부문 간 인플레이션 충격의 파급에는 기대인플레이션이 연결고리로 작용하고 있다. 종합 지수 측면에서 봤을 때 인플레이션 충격의 부문 한 파급 효과가 제한적이라면 종합지수가 근원 인플레이션을 중심으로 등락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인플레이션 국면은 복합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주요 인플레이션 지표들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으며 인플레이션의 부문별 파급도 축소되는 추세다. 그러나 인플레이션 기대 및 품목별 분포를 보면 아직 가격조정 모멘텀이 남아있으며 추가적인 비용충격이 발생 가능성도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성엽 차장은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인플레이션 지표가 낮아지고 있는 모습이지만 물가 안정기 진입과 관련한 마지막 단계의 리스크는 아직 잔존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물가안정기조로 재진입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지표가 특정 수준에 도달했는지 뿐만 아니라 부문 간 파급, 기대 인플레이션, 기조적 인플레이션 같은 다양한 인플레이션 지표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훈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unjuroh@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