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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대사면] “꼬박꼬박 빚 갚은 우리는 봉이었나” 성실 상환차주 역차별... 모럴 해저드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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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대사면] “꼬박꼬박 빚 갚은 우리는 봉이었나” 성실 상환차주 역차별... 모럴 해저드 우려

김주현 금융위원장.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김주현 금융위원장. 사진=연합뉴스


서민과 소상공인 대상 신용대사면 조치가 12일 개시되면서 그동안 꼬박꼬박 빚을 갚아왔던 성실 차주들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코로나19 시기 피치 못할 사정으로 소액 대출을 연체한 차주들의 신용점수가 대거 회복될 것으로 기대되지만 일각에서는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연체된 후 빚을 모두 갚은 한 차주는 “조기 상환이 아무 의미 없고 꼬박꼬박 빚 갚은 우리가 봉이 된 기분”이라며 “신용점수가 오르는 것도 아니다”라고 불만을 터트렸다.

금융위원회는 12일 ‘서민·소상공인에 대한 신속 신용회복 지원 시행’ 행사를 열고 신용회복 지원 조치 대상과 효과 등을 발표했다. 2000만원 이하의 소액 연체자 중 연체금액을 전액 상환한 경우 연체이력 정보를 공유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번 조치로 최대 개인 298만 명과 개인사업자 31만 명의 신용평점이 오르게 된다.

그러나 정직하게 빚을 갚아온 차주들 사이에서는 이 정책이 불공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코로나와 고금리가 이어지며 어려운 시기에 연체를 피하기 위해 겨우겨우 자금을 조달해온 사람들은 뭐가 되느냐는 지적이다.

실제로 금융권은 이번 신용사면으로 298만 명의 장단기 연체정보 공유·활용이 제한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세부적으로 250만 명이 평균 39점(662점→701점)의 신용점수를 회복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중 25만 명은 은행에서 신규 대출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며, 15만 명은 신용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이외에도 다수의 차주들이 상향된 신용점수를 바탕으로 저금리 대환대출의 혜택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이전에 대출이 연체된 후 빚을 모두 갚은 한 차주는 “조기 상환이 아무 의미 없는 걸 느낀다. 신용점수가 오르는 것도 아니고 장단기 연체 기록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라면서 불만을 드러냈다. 또 한 차주는 “2021년도 이전에 연체한 기록은 신용사면에 해당되지 않는 게 불공평하다”고 말했다.

신용사면은 지금까지 딱 세 번만 진행된, 쉽게 접하기 어려운 정책이다. 지금까지 신용사면은 1999년, 2013년, 2021년 진행됐고 2024년인 올해 네 번째로 진행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총 세 번 실행됐던 신용사면이 이전 신용사면이 진행된 지 고작 3년이 지난 지금 다시 시행되면서 차주들의 모럴 해저드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짧은 기간에 신용사면이 반복되면 앞으로 차주들이 정기적인 ‘신용사면’을 기대할 수 있다. 실제로 통상 100만원 이상의 금액을 3개월 이상 연체하면 이른바 ‘신용불량자’로 분류돼 최장 5년간 신용평가사(CB) 등에 연체 정보가 보관된다. 이 기간 동안 차주들은 대출이나 카드 발급이 거부되는 등 금융거래에 막대한 제한을 받게 되는 등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데 이번 신용사면으로 많은 차주들의 신용점수가 단숨에 회복되고 연체기록도 사라지면서 "버티는 게 이득이다"라는 말도 나온다.

또 여신업계에선 대규모 신용사면이 건전성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번 신용사면으로 카드를 신규 발급 받을 수 있는 15만 명 중 상당수가 자금 여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연체기록만 사라졌다는 우려다. 이들이 카드 사용을 시작하면 연체가 다시 발생할 수도 있다. 카드사들의 건전성 리스크는 고금리 지속으로 이미 높아진 상태다. 지난해 3분기 기준 국내 8개 전업카드사들의 1개월 이상 연체액은 2조원을 돌파해 2005년 카드대란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카드사 9곳의 카드론(장기 카드대출) 잔액도 지난 1월 말 기준 39조2120억원을 기록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번 신용사면으로 연체율이 상승하면 금융권은 리스크 상승을 반영해 대출한도나 가산금리를 조정할 수밖에 없다. 성실히 대출을 갚아 나가는 차주들이 피해를 볼 가능성도 높아진 것이다. 또 신용사면이 진행되면 금융권이 오히려 대출심사를 강화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는 비정기적으로 진행된 신용사면이 모럴 해저드를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는 과하다는 입장이다. 이날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코로나19 여파와 함께 이례적인 고금리·고물가의 지속 등 예외적인 경제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연체돼 금융거래에 어려움을 겪는 취약계층이 현재 290만 명이 넘는다”면서 “개인적 사정 외에 비정상적인 외부환경 때문에 연체에 빠진 분들에게 우리 사회가 재기의 기회를 드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다정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2426w@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