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15년을 기다린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 시행 한 달을 앞두고 ‘반쪽 출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전자의무기록(Electronic Medical Record·EMR) 구축을 담당하는 업체가 수지 타산을 이유로 전산 구축을 외면하면서 대형병원 외 동네병원은 참여가 저조하기 때문이다. EMR 업계의 미온적인 대응으로 소비자들은 당분간 서류를 일일이 발급해 보험금을 청구해야 될 판이다. 업계는 일단 실손 간소화를 시행하고 점진적으로 참여 병원을 늘려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보험개발원이 공고한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시스템 구축 3차 확산 사업 참여 기관 모집’이 전날 접수를 마감했다. 보험개발원은 실손청구 간소화 서비스의 전송 대행 기관이다. 개발원 측은 지난달부터 1~2차에 걸쳐 참여 기관을 모집했지만, 국내 55개 EMR 업체 중 10여 곳만 참여 의사를 밝혀 신청률이 저조하자 3차 추가 모집에 나섰다. 그러나 3차 모집에도 EMR 업체의 신청은 많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EMR 업체의 협조가 없으면 실손청구 간소화도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봐도 무방하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의 핵심은 병원 측이 직접 전자문서를 보험사에 제출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환자의 진단·처방 등의 정보가 담긴 기록을 관리하는 EMR 업체의 참여가 필요하다. 규모가 큰 병원의 경우 보험개발원과 논의해서 자체적으로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지만, 규모가 작은 병원의 경우 사정이 여의치 않아 EMR 업체가 나서줘야 한다.
현재 실손청구 간소화 사업에 참여하기로 한 업체는 55곳 중 10여 곳에 불과하다. 일부 EMR 업체는 정부 지원금 외 추가 비용을 요구하는 등 불만을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올해 10월까지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를 시행해야 하는 대상 의료기관 4235곳(보건소 제외) 중 197곳만 전산 시스템을 구축한 상황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1차로 시행되는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대상은 30병상 이상 병원급인데 규모가 큰 상급종합병원을 제외한 47곳은 이미 100% 참여했지만, 병상수가 적은 소형 병원들의 참여가 부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쪽 출범 우려가 커지자 이날 김병환 금융위원회 위원장도 업계에 차질 없이 준비해 달라고 재차 요구하고 나섰다. 김 위원장은 이날 10개 보험사 최고경영자(CEO)와 간담회를 열고 “보험업법 개정을 통해 이뤄낸 국민과의 약속이므로 초기 인프라 비용과 의료계와의 협조 등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4000만 보험소비자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 순위로 두고 추진해 달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