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자리에서 갑자기 윤석열 대통령이 ‘중대선거구제 도입 검토 필요’라는 정치적 화두를 불쑥(?) 던졌다. 이에 여당인 국민의힘은 사전 교감이 없었던 듯 ‘어리둥절’해 했고, 불참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무슨 의도’가 숨어있나 궁금증을 자아내며 여의도 정가를 어수선하게 만들었다.
과거 정치사에서도 몇몇 대통령이나 대권 주자들이 언급한 바도 있다. 그렇다면, 2023년 새해 벽두, 그것도 여의도 정치와 일정 거리를 두겠다고 하던 대통령은 왜 먼저 화두를 띄웠을까?
소선거구제의 단점들 즉, 사표로 인한 대표성 문제, All or Nothing 게임(올 오어 낫씽)으로 인한 극단적인 대립, 한국 정치의 고질병 지역주의 등을 완화할 수 있는 대안, 다시 말해 중대선거구제의 장점을 크게 볼 수 있다.
그런 단면들은 소선거구제인 광역의원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에서 엿볼 수 있지만, 그보다 그 단점들이 더 증폭되어 나타나는 선거가 바로 대통령선거이다. 한국 정치에서 대통령선거는 대한민국이라는 커다란 하나의 지역구에서 결선투표제도 없는 소선거구제 상황에서 극단의 지역주의가 선거 과정에서 표출되고 가장 많은 수의 사표가 발생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바로 이런 소선거구제 선출시스템에서 당선되는 과정에서 제도 개편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면, 이번 국회의원 중대선거구제의 재검토 언급과 함께 현행 대통령제 개선이나 구체적인 협치, 나아가 연정 등 새 대통령으로서 가진 고민의 흔적을 보여주었다면, 아무리 입법, 행정, 사법 3권분립의 헌법 체계라도 그 진정성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중대선거구제는 의원내각제의 필수 전제 조건이 된다. 중대선거구하면 의원내각제, 소선거구제는 대통령제 할 정도로 대의민주제 형성원리나 정치 철학의 근간에 상호 연결되는 면이 크다. 그동안 여의도 정치에서 전·현직 국회의장을 비롯해 중진 국회의원들은 대체로 의원내각제 개헌을 찬성하고 소선거구제보다는 중대선거구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공천 탈락, 정치 역풍 등 차기 총선에서 예상치 못한 돌발변수에도 정치신인보다는 오랫동안 지역구를 관리해 온 중진의원이나 지명도 높은 인사가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는 제도라는 점도 분명 작용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에 주장했더라도 그 발언의 무게감은 크게 다를 수밖에 없다. 시기적으로 2024년 총선 1년을 앞두고 제기된 점을 감안한다해도 세간의 궁금증이 커질 수 있다.
중대선거구제 도입 필요성과는 별개로 단임제 대통령제하에서 현직 대통령이 된 이 시점에 어쩌면 다음 총선에서 개별 의원의 당락이나 어느 지역에서 여당이 몇 석을 더 잃고 더 얻는 것은 크게 고려대상이 아닐 수 있다. 국정운영의 파트너인 국회 내 집권 여당이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는가는 성공한 대통령의 길로 가는 필수조건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지금의 여소거야(與小巨野) 정치지형을 몸소 체험한 8개월, 총선 1년여 전 시점에 그 부문이 대통령에게 가장 뼈아픈 지점이 아닐까 싶다.
지금 비록 여당 후보보다 야당 후보를 찍겠다는 의견이 약간 높다고 하더라도 2024년 총선에서 어느 당이 승리할지 예상하긴 어렵다. 그러나 지금처럼 양당 구조가 더욱 고착되어 가는 가운데 의미있는 의석을 차지할 제3세력이나 제3정당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국민의힘 또는 민주당이 150석에서 단 1석이라도 더 많은 과반의석을 차지할 가능성이 최소 50% 이상 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은 집권 여당이 민주당을 그렇게라도 이기면 천만다행이고, 그 반대의 경우라면 지옥같은 임기 후반기를 맞을 수 있다는 공포감이 들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대선거구제는 결코 밑지는 정치 셈법은 아닐 수 있다. 특히 수면 아래 잠복되어 있던 친명 대 비명간 극한 대립 갈등이 공천과 관련해 총선 정국에서 폭발한다면, 중대선거구제 도입은 162석 거야 민주당이 분당의 길로 치닫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
대통령 임기 초반 집권 여당의 분당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점까지 감안한다면, 여소야대가 설령 되더라도 최소한 국회 제1당의 지위는 보장될 수 있고, 타협과 협상 등 국회 운영의 묘를 살린다면 얼마든지 여소야대는 극복 가능한 정치지형이 될 수 있다.
지금 대통령에게 중대선거구제는 밑져야 본전, 천신만고 우여곡절 끝에 도입되면 최소한 내년 총선 결과에 대한 ‘리스크 헷지’로서 충분한 의미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이진충 글로벌이코노믹 명예기자 jin2000kr@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