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무용의 형식과 동작의 흐름을 제대로 보여주면서 보통 사람 정석순의 ‘마음의 동요’를 자서전적으로 엮은 춤은 현대무용의 질서를 따르면서도 격조의 춤으로 ‘굿’, ‘딜레마’, ‘희망’, ‘치유’, ‘치유된 사람들’을 사유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저편, 핏빛 선연한 쿠마리와 자신의 삶을 연관 지으면서 쿠마리에게 참회로 용서받는 의식의 춤은 붉은 천으로 신성을 드높이면서 정화의식을 마친다.


정석순(Project S 대표)은 대학생일 때 동아무용콩쿠르 대상(2005)을 수상한 스타 무용수이다. 스위스의 생칼렌 극장(Theater St. Callen) 등을 거치며 무용수로 성장했으며, 무용단 ‘Project S’(2009) 창단 이래 안무가로서 방송에까지 영역을 확장하며 왕성한 작업을 해왔다. 「Prayer 우리들의 봄」은 자기 경험을 응용하여 ‘쉽지만 가볍지 않은 작품을 만들어 낸다’라는 신조에 부응했다.
인생의 봄날, 청춘에서 활기차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밝히는 행위는 즐거웠다. 내일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헤세의 안개 속을 걸어 보아야 한다. 시간이 경과 되면서 안개는 조금씩 걷히고 아침과 함께 빛은 사물을 영롱하게 비추기 시작했다. 내일이 보였고, 따뜻한 봄이 너와 나, 우리들을 비추었다. 기원의 춤은 복사꽃 피는 날의 산책으로 다가왔고 조용히 기도하다 보면 뜻에 이른다.


인생의 전반전을 질풍노도의 삶으로 보내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들추어진다. 타인에게 춤꾼의 삶은 파란만장이었다. 오만방자에 가까운 독선은 주변을 힘들게 했다. 시련과 좌절의 삶에서 다시 설 때까지 안무가의 삼십 대는 현실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시기였다. 거친 현실은 역동으로 가득한 장면들을 무수히 만들어 내었다. 젊은 날의 초상은 「Prayer 우리들의 봄」이 되었다.
프롤로그가 있는 봄은 쿠마리를 상징하는 객석의 소녀를 향해 한 줄기 빛을 내보낸다. 쿠마리가 천천히 무대에 진입하자 사바세계의 청춘들은 고뇌하고 부 댓 끼고 흔들리면서 일상을 살아간다. 빛의 파장은 완급을 조절해 내면서 삶의 유동과 흔적을 표현한다. 높고 빠른 음악에서 낮고 느린 맞춘 움직임은 오랜 시간에 걸쳐 풍화된 암석의 작업을 즐긴 흔적이 되어 세련되게 뚜렷하게 드러난다.


완전한 침묵이 자리 잡은 곳, 높고 높은 곳에 계신 분에 대한 경외의 마음은 예불의 배(拜)를 가하면서 진행된다. 국악 베이스의 퓨전그룹 ‘블랙 스트링’의 <Hanging Gardens of Babylon> (바빌론의 공중 정원)이 ‘굿’을 형상화한 신으로 인간 본연의 간절하고 절실한 마음을 시각화하는 촉매가 된다. 풀브라이트에서 미세한 조명까지 정석순 표의 빠른 무리의 춤과 조화를 이룬다.
‘딜레마’, 아이슬란드 음악가 존시(jonsi)의 ‘오지 않은 여름’(Sumarið sem aldrei kom)이 상징하는 젊은 날의 들뜸, 고통스럽고 힘겨웠던 시기의 시간이 빠르게 흐르기를 바랐던 마음은 날랜 움직임으로 대체된다. 숫자의 변동이 조합의 묘를 보이며, 순간적 움직임이 분출하는 역동성의 매력에 빠지게 한다. 도미노처럼 무너질 젊은 날의 취기는 ‘침묵의 서’를 앞두고 있었다.
‘희망’,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앞으로 나아가며 절실하게 희망을 찾는 과정이 표현된다. 음악은 「포레스트 검프」를 리메이크한 인도영화 「달려라, 라싱 차다」에서의 OST ‘투르 칼리얀’(Tur Kalleyan)이 사용된다. 완벽한 무음은 춤 연습에 집중했던 무용수들의 거친 호흡과 생존의 증거인 발소리만 들려준다. 안갯속에 빠진 듯한 상황을 부지런한 움직임이 소멸시킨다.


‘치유’, 안무가는 네팔의 쿠마리 문화를 동인(動因)으로 삼아 아역 무용수를 캐릭터로 설정한다. 작품 안에서 희망, 치유의 존재를 중시하는 아이슬란드 밴드 시규어 로스의 ‘Stendur æva’(일어서)가 돌아오는 봄을 영접한다. 안무가 정석순은 「Prayer 우리들의 봄」에 파격이라 할 수밖에 없는 쿠마리를 도입부와 결론부에 등장시켜 소망사고(Wish-Thinking)를 충족시킨다.
‘치유된 사람들’, 숱한 천이 내려앉은 무대는 온통 붉은색이다. 희망하던 곳에 도착한 사람들은 엄숙하게 성취의 기쁨을 누린다. 존시의 음악‘Grow Till Tall’(다 클 때까지 자라라)이 종교적 경외감을 부른다. 안무가 정석순이 몸으로 써낸 반성 의식은 바람이 사람들을 평화스러운 현실로 밀어낸다. 쿠마리가 주인공 정석순을 어미처럼 위로하며 춤은 종료된다. 어제는 오늘의 거울이다.
2021년 MODAFE와 대전예술의전당의 협업 프로젝트로 20분 버전의 작품 「Prayer」의 제작이 결정되었다. 2022년 1월 말 오디션을 통해 9명의 남자 무용수를 선발했고, 2022년 4월에 대전예술의전당 앙상블 홀, 같은 해 6월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되었다. 공연 이후 MODAFE와 대전예술의전당의 지원으로 65분 분량의 「Prayer 우리들의 봄」 제작이 확정되었다.

이 작품은 올해 1월 남녀 무용수 각 7명, 아역 1명을 선발하여 4월에 대전예술의 전당, 10월에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했다. 「Challengers」(도전자들)>는 41회 서울무용제 경연 부문에서 대상, 안무상, 최고무용수상을 석권했다. 이미 「아수라발발타2」, 「Blue」는 2013 한국춤비평가협회 '올해의 베스트 작품‘, 제20회 크리틱스초이스 댄스페스티벌 우수 안무가 등에 선정된 바가 있다.
「Prayer 우리들의 봄」은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촘촘한 안무와 연출력이 돋보이는 구성으로 기교적 우월성을 보여준 걸작이었다.
출연(인남근 김효신 권재현 박민지 한지원 박정무 오신영 신동윤 김효경 김혜미 유예진 이유진 이진우 이신우 정석순 박하민(아역)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사진=한필름 촬영, 모다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