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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마음도 심폐소생술이 필요할 때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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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마음도 심폐소생술이 필요할 때가 있어"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275)] 마음의 심폐소생술

갑자기 찾아온 심정지를 살리는 데 심폐소생술이 필요하듯이 '심장이 멎는' 것처럼 마음이 정상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멈추려 할 때에도 마음의 심폐소생술이 필요하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갑자기 찾아온 심정지를 살리는 데 심폐소생술이 필요하듯이 '심장이 멎는' 것처럼 마음이 정상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멈추려 할 때에도 마음의 심폐소생술이 필요하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
1년 내내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미담(美談)이 기다려지지만 특히 거리에 빨간 복장을 한 구세군의 자선냄비와 종소리가 들리는 연말에는 더욱 그립다. 미담을 접할 때마다 "그래도 아직 우리 사회가 살 만한 곳이구나"라고 확인할 수 있어서 그럴 것이다. 최근에도 언론을 통해 따듯한 미담을 접하게 되어 반갑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심정지 상태로 길거리에 쓰러졌다가 시민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60대 남성이 생명의 은인을 찾고 있다. 지난 9월 18일 오전 7시40분쯤 울산 동구의 한 골목길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60대 김모 씨가 심정지 상태로 길바닥에 쓰러졌다. 1분 넘게 행인과 차량들이 쓰러진 김씨를 보고도 그냥 지나쳤지만, 차량 한 대가 갓길에 멈추더니 한 남성이 내려 119에 신고했다.
이어 대형병원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간호사인 한 여성이 다가와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또 다른 남성도 가방을 벗어던지고 심폐소생술에 동참했다. 이들의 심폐소생술은 구급대원들이 도착할 때까지 이어졌다. 김씨를 살린 이들은 구급대원들이 도착하자 이름도, 연락처도 남기지 않고 홀연히 사라졌다. 구급대원들이 도착할 때까지 심폐소생술을 했던 남성의 신원은 파악되지 않았다. 김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저희 가게에 한 번 들러주시면 만나서 따뜻한 밥이라도 한 끼 하고 싶고 그런 심정"이라고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이 미담은 단순히 남을 도와준 것에 지나지 않고 무엇보다 소중한 목숨을 구한 것으로 미담 이상의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때마침 119에 신고한 시민이 있고, 무엇보다 구급대원이 도착할 때까지 심폐소생술을 이어간 간호사와 익명의 시민이 있었다. 만약 119에 신고만 하고 발을 구르며 지켜보기만 했다면 생명을 잃거나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수도 있었던 위급한 상황이었다. 이 미담은 우리에게 귀중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중요한 교훈을 알려준다.

살다 보면 누구나 전혀 예상 밖의 일을 당할 수 있다. 어느 누가 길에서 심정지 상태로 쓰러지고 싶겠는가? 또 자신이 심정지로 쓰러질 수도 있다고 예상이나 하겠는가? 하지만 불행한 일은 예고 없이 언제 어디서나 찾아올 수 있다. 특히 심정지 상태처럼 분초(分秒)를 다투는 위급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그래서 학교에서 긴급 상황에 대처하는 응급처치 요령을 가르쳐 준다. 약 1년 전인 2022년 10월 29일 토요일 이태원 거리에서 일어난 참사는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 참사로 인해 196명이 부상당하고 159명이 사망했다. 이 사고 현장에서도 '인공호흡' 할 줄 아는 시민들을 다급하게 찾았던 이유는 심폐소생술을 실시해 한 사람이라도 무고한 사망자를 줄이려는 애타는 호소였다.

목숨 위태로울 때 누군가 그 마음 헤아려준다면 귀한 목숨 살릴 수 있어


심폐소생술은 스스로 뛸 수 없게 된 심장을 사람이 직접 눌러서 펌프질을 해주는 과정이다. 동맥에는 판막이라는 기관이 있기 때문에 밖에서 눌러도 정상 방향으로 혈액이 흐르며, 외부에서 압력을 가해 심장이 해야 할 일을 대신 해주는 것이다. 심폐소생술은 구급대원이 도착하거나 병원에 도착하기 전까지 사람, 특히 뇌의 죽음을 지연시키는 처치다. 심장이 정지돼 순환이 되지 않은 채 4분이 지나면 뇌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뇌가 손상되기 시작하며, 10분부터는 뇌 이외의 다른 장기들도 손상되기 시작한다. 따라서 심정지가 발생하면 늦어도 4분 이내에 심폐소생술을 시작해서 치료가 이루어질 때까지 중단 없이 계속해야 환자의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

비유적으로 말한다면, 위급한 상황에서 몸만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살다 보면 마음도 심폐소생술이 필요할 때가 있다. '심폐(心肺)'는 '심장과 폐'를 의미하지만 '심(心)'은 마음이라는 뜻으로 더 많이 쓰인다. 필자가 공부하는 '심리학(心理學)'도 '마음의 이치(理致)'를 공부하는 분야이지 심장(心臟)을 공부하지 않는다. 우리말에도 마음에 급격한 충격을 받을 경우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또는 "숨이 멎을 뻔했다"라는 표현이 널리 쓰인다. 급격한 충격을 받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표현이다. 마음이 정상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멈추려 할 경우에도 심폐소생술이 필요하다.

심폐소생술은 전문적인 치료가 아니다. 주위에 있는 사람이 갑자기 심장이 멎어 쓰러지면 구급대원이 오거나 병원으로 이송될 때까지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면 무엇보다 소중한 목숨을 살릴 수 있는 응급처치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갑작스럽거나 누적된 심리적 충격으로 스스로 목숨을 위태롭게 할 때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적절한 도움을 주면 목숨을 살릴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자살률이 몹시 높은 나라다. 그만큼 심리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다. 하지만 더욱 절실한 것은 자신이나 주위 사람이 심리적으로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의 미담에서도 입증됐지만 천만다행으로 마침 주위에 응급실의 간호사와 지나가던 사람이 심폐소생술을 할 줄 알았기 때문에 한 사람의 소중한 목숨을 살릴 수 있었다. 마음의 심폐소생술도 마찬가지다. 주위에 심폐소생술을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이 있다면 그만큼 위기를 넘기고 소생할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 그러므로 학교 교육과정에서 인공호흡과 심폐소생술을 전 국민에게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지하철 정거장 등 가까운 곳에 심폐소생술을 할 수 있는 도구를 비치해 두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언제 어디에서 누가 불행한 일을 당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단 한 사람만이라도 진심으로 내 마음 알아주면 역경 헤쳐갈 수 있어


마찬가지로 마음이 위급한 상황을 맞았을 때도 옆에서 시의적절하게 도와주면 귀한 생명을 구할 수 있다. 따라서 학교 교육에서 '심장이 멎을 것만 같은' 위급 상황을 당했을 때 신속하게 개입해 위기를 넘길 수 있도록 '위기 상담'을 할 수 있도록 그 방법을 알려주어야 한다. 위기 상담(crisis counselling)은 자연재해나 극심한 심리적 고통과 같이 자신의 대처능력을 벗어나서 견디기가 매우 힘든 급박한 사건이나 상황처럼 특정 순간에 갑작스레 심각한 문제를 겪어 신속한 해결이 요구되는 상황 혹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상담이다.

예를 들면, 갑작스러운 자살 충동을 겪을 때 전화로 도움을 요청하면서 이루어지는 전화 상담도 위기 상담의 일종이다. 한국생명의전화에서 19개 한강 교량에 총 74대의 전화기와 전국 20개 교량에 총 75개의 전화기를 설치 운영해 24시간 365일 위기 상담을 해주는 긴급상담전화는 많은 사람을 살리는 꼭 필요한 위기 상담이다. 위기는 급격하게 올 수도 있고 한 달 이상 지속될 수도 있다. 이 기간 안에 문제해결을 위한 대처 전략이나 기술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면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

위기에 처한 사람 도와주기 위한 자문이나 훈계•충고는 도움안돼


심폐소생술이 의료진의 전문적인 처치를 받을 때까지 일시적으로 하는 것처럼 일반인들에 의한 위기 상담도 상담 전문가가 개입하기까지 급격한 위기를 넘기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심장이 멈춘 후 가능한 한 빨리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처럼 심리적 위기에 처한 사람도 결국 전문가에게 상담받아야 한다. 하지만 위기의 순간을 효과적으로 넘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급격히 절망적 사건에 직면했거나 만성적으로 우울감에 시달려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끼는 순간에 누군가가 그의 마음을 헤아려줄 수 있다면 장기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건강은 관계의 건강이다. 죽고 싶을 만큼 억울하고 화가 난 자신의 마음을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관심도 기울여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 오는 절망감이 스스로 세상을 등지게 만든다. 세상에서 단 한 사람만이라도 진심으로 내 마음을 알아주고 공감해줄 수만 있어도 사람들은 온갖 역경을 이기고 살아갈 수 있다. 마음의 건강은 이성(理性)의 영역, 즉 생각의 영역이 아니라 감정(感情)의 영역, 즉 느낌의 영역과 더 밀접한 연관이 있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높은 것은 전반적으로 국민들의 지적 수준이 떨어져서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만큼 대학 진학률이 높은 나라도 별로 없다. 자살률이 높은 것은 우리가 생각보다는 감정에 더 민감하고, 서로 공감해줄 수 있는 관계를 맺지 못하고 생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만큼 위기 상황을 잘 넘길 수 있는 마음의 심폐소생술이 보급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는 다른 사람에게 자살을 만류하고 오히려 도움을 주어야 할 직분에 있는 분들이 자살해서 더욱 안타깝다. 교사들이 학생과 학부모에게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불교 종단의 최고위직을 지냈고 현재에도 큰 영향을 미치던 승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은 우리를 너무나 안타깝게 한다. 아무리 미사여구로 치장한들 사건의 본질이 미화되는 것은 아니다. 자살을 미화하고 조장하는 교육과 종교는 본질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위기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서는 자문이나 훈계나 충고는 도움이 안 된다. 그들도 자살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살아갈 힘을 잃었기 때문에 스스로 생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따듯한 위로와 공감이 필요하다. "네가 얼마나 힘들면 자살할 마음까지 먹었겠니? 내가 네 마음을 알아." 진정 어린 이 한마디가 필요한 것이다. 이제 2023년이 20일도 채 남지 않았다. 서로 공감하고 위로하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기 바란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