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김주빈 안무의 '귀신날'…코리안 핼러윈에 관한 유쾌한 상상

공유
0

김주빈 안무의 '귀신날'…코리안 핼러윈에 관한 유쾌한 상상

김주빈 안무의 '귀신날'이미지 확대보기
김주빈 안무의 '귀신날'
서울을 살아내는 일은 귀신을 대하는 일 같다/ 이야기가 피어나는 신비의 숲 넘어/ 밤엔 별똥별이 떨어지고/ 주름살 휘어지는 나무들 사이/ 무서움을 떨구며 권리대장전이 쏟아진다/ 귀신은 놀이에 익숙하되 상생을 삼가라/ 공동묘지였던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내시의 무덤에 들러 갈대밭 사이로 퍼지라/ 도깨비시장에 들러 방앗간 주인을 골리거라/ 곡마단의 조랑말을 놀라게 하라/ 상급 귀신들은 벨기에 초콜릿 맛을 안다/ 자신들의 모습이 달에 비치는 밤이면/ 화들짝 놀라 과거를 되돌아본다/ 귀신날의 서사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JUBIN COMPANY(대표·예술감독 김주빈) 주최·주관, 서울특별시·서울문화재단의 후원, 김주빈 안무의 「귀신날」이 공연되었다. 「귀신날」은 귀신 소재의 명랑 무용극으로써, 한국에도 핼러윈이 있었음을 증거하며 한국문화의 국제성과 위대함을 부각한다. 유럽 서커스 풍의 놀이와 한국의 민속놀이 ‘놋다리밟기’와 강강술래, 전래동화 ‘햇님달님’ 이야기의 귀신들을 소환하여 놀이 향연을 펼친다. 「귀신날」은 현실과 비현실, 일상과 판타지를 오가며 죽은 자들의 삶을 통해 지금의 삶을 되돌아본다.
김주빈 안무의 '귀신날'이미지 확대보기
김주빈 안무의 '귀신날'
김주빈 안무의 '귀신날'이미지 확대보기
김주빈 안무의 '귀신날'

김주빈 안무의 '귀신날'이미지 확대보기
김주빈 안무의 '귀신날'


「귀신날」은 •Opening: 귀신을 퇴치하려는 인간들, •기괴한 숲: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의 초대, •유령의 집, 꿈-‘햇님 달님’ 이야기, •지옥철: 오히려 귀신같은 인간의 모습, •퇴근길, 유령의 집 II: 보이지 않는 세상, •도시의 밤: 귀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밤의 시간, •귀신날,•Epilogue: ‘세계는 융합되고, 로맨스는 계속된다.’로 갈래를 나누며 구성된다. 이 작품은 한국창작춤의 화려한 전통을 이으면서도 현대적 리듬감을 살리고 절제된 춤사위 속에 격정적 에너지를 발산한다.

「귀신날」의 등장인물(소년·소녀: 서상원·한지원, 처녀·총각: 선은지·조한진, 엄마·나무신: 황서영, 호랑이: 김현우, 몽마: 성주현, 미라·염세주의 귀신: 이혜준, 장난꾸러기 도깨비: 강민지 손무경, 인간스토커: 김태훈)을 살펴보면 놀이 구성과 움직임의 실체를 파악하게 된다. JUBIN Company와 벨기에와 스웨덴 본부의 컨템포러리 서커스 페트리 디시(Petri Dish)와의 만남은 즐거움을 증폭시킨다. 새로운 움직임이 탄생하였다. 귀신을 앞세우고 구성한 안무, 연출, 서커스적 움직임이 난장을 벌인 무용극은 관객의 관심을 크게 불러왔다.
김주빈 안무의 '귀신날'이미지 확대보기
김주빈 안무의 '귀신날'

김주빈 안무의 '귀신날'이미지 확대보기
김주빈 안무의 '귀신날'

김주빈 안무의 '귀신날'이미지 확대보기
김주빈 안무의 '귀신날'


JUBIN Company는 다양한 예술 콘텐츠들을 제작해 오면서 전통적 ‘호흡’과 ‘정서’에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불가시 세상에 관한 이야기는 파격적 상상이 필요하다. 귀신보다 전세 사기범이 더 무서운 현실, 귀신 잡으러 나선 인간들을 피해 숲(기괴한 숲)과 오두막집( 유령의 집), 가구 귀신으로 살아남은 귀신들의 에피소드가 전개된다. 「귀신날」은 한국창작춤의 아울렛을 제시하며 스펙트럼을 넓혔다. 이 작품은 Petri Dish의 안나 닐슨(Anna Nilsson)과의 협업으로 지구촌 사람들이 공감하는 한국창작무용이 되었다.
「귀신날」은 오프닝부터 관객을 압도한다. 귀신들이 곳곳에 등장하고 사라지며 무서움을 만들어 나가는 공식이 작동된다. 흔들리고(빛, 조명, 커튼), 떨어지고(갓등, 처녀 귀신), 사운드(비명 지르기, 귀신의 집 효과음, 굿 음악), 움직임(귀신, 소리 지르면서 뛰어가기, 드론), 무성(巫性)을 띄며 누군가 쓰러진다.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올라오는 귀신 퇴치 인간들의 군무로 긴장감이 조성되면서 무용극은 시작된다. 단순하지만 반복적 발동작, 한 줄로 정면으로 다가오면서 바닥에 널브러지며 굴러 들어가면서 사선으로 연결된다.
김주빈 안무의 '귀신날'이미지 확대보기
김주빈 안무의 '귀신날'

김주빈 안무의 '귀신날'이미지 확대보기
김주빈 안무의 '귀신날'

김주빈 안무의 '귀신날'이미지 확대보기
김주빈 안무의 '귀신날'


이미지적 작품 전개: 난 귀신을 믿지 않지만, 귀신 이야기는 늘 무섭다. 때로는 분주한 내가 귀신보다도 더 좀비처럼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 마음속의 귀신들을 불러 모아 한바탕 놀아보자. 오늘은 귀신날, 보름달 휘영청 띄우고 그동안 못 본 척 살아 온 내 마음속 귀신들을 불러 모아야겠다. ‘햇님달님’에 나오는 호랑이의 사연도 궁금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서로 받쳐주기도, 밟고 지나가기도 한다. 거대한 대자연의 품속에서 우린 하나의 존재임을 깨닫는다. 귀신을 통해 사랑을 배운다.

숲과 집은 신비감을 일구는 핵심축이다. 기괴한 숲은 보이지 않는 신비로운 세상으로 초대한다. 거대한 나무 신이 모습을 드러내며 숲이 만들어진다. 모든 막이 열리고 보름달이 내려온다. 문이 열리며 빛과 함께 처녀 귀신 등장한다. 놋다리를 밟아서 숲에 찾아온 처녀 귀신과 나무 신이 만나고, 다른 존재들은 사라진다. 숲속의 작은 오두막집(유령의 집)에 한 소녀가 살고 있다. 안락의자와 램프 요정, 벽난로, 청소기, 레코드판, 독서 뒤 잠이 들면 ‘햇님달님’이 전개된다. 극의 종반부엔 무너져 내리는 안락의자로 연결된다.
김주빈 안무의 '귀신날'이미지 확대보기
김주빈 안무의 '귀신날'

김주빈 안무의 '귀신날'이미지 확대보기
김주빈 안무의 '귀신날'

김주빈 안무의 '귀신날'이미지 확대보기
김주빈 안무의 '귀신날'


꿈, 꿈의 세계로 진입하는 소녀는 그림책 속 풍경과 현실과의 차이점을 발견한다. 죽은 자의 삶을 통해 보이지 않는 세상의 이야기를 살핀다. 아이들을 위한 동아줄이 내려왔고, 어미를 위한 동아줄은 끊어졌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나는 이 세계에 태어났고, 이 세계에서 배제되었다. 당신의 눈길은 나의 어느 모습에 머무는가? 나 또한 존재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인간에게 있어’ 뼈와 살은 아래로 스러지고, 피와 가죽은 흙을 물들이니. 피로 범벅이 된 수수밭 위에 서서 너의 세계를 내 어깨에 얹어보지만 나 또한 살고 싶었다.”

현실 반영은 처녀 귀신과 총각 귀신이 노니는 지옥철과 밤길에 스토커 따라붙는 퇴근길이다. 엄마 귀신의 마음을 읽은 지나가던 처녀 귀신이 그놈을 낚아채 간다. 귀신들의 개성이 드러나는 홀 춤이 진열된다. 도시의 밤은 귀신과 인간이 공존한다. 달이 천천히 내려오며 귀신의 밤이 시작된다. 호랑이 오인무, 인간들의 느린 움직임이 따른다. 인간 전체가 바닥에 쓰러져있다. 달에 반영되는 인간의 무리, ‘햇님달님’의 동아줄, 강강술래의 개념이 떠오른다. 달이 올라가면 ‘귀신날’의 놀이가 시작된다. 무용수들은 신나게 춤을 춘다.

「귀신날」에서 다양한 개성의 귀신들은 삶의 희로애락을 연기한다. 코어 멤버 12명(강민지 김현우 서상원 선은지 성주현 손무경 오푸름 이혜준 조한진 한지원 황서영 김태훈), 에어리얼 퍼포머 2명(마히니 엄예은), 앙상블 멤버 24명(강미진 강하늘 고지희 김주희A 김주희B 선효정 박상은 오하라 윤나영 윤보람 윤영서 원채빈 이가야 이나경 이다연 이서영 이선영 이영우 이유빈 장선주 조은별 지혜진 황민하 허미소)은 탁월한 놀이꾼이었다. 공중서커스는 빠르고 자유로운 지상의 호흡에 맞춰 크고 확실한 동작과 행위를 실현했다.

무용극 「귀신날」은 극성을 강화하면서도 춤의 본질을 잊지 않는다. 춤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달에 아름답게 몸을 투영시키는 즐거움을 조율한다. 세계는 융합되고, 로맨스는 계속된다. 지하철 소리에 좀비들이 쏟아진다. 양쪽 끝에서 터져 나온 처녀·총각 귀신이 차를 마시며 즐긴다. 현실을 인정하며 도전 정신을 불어넣는다. 나무가 솟아오르고 산과 수풀 등의 풍경이 펼쳐지는 가운데, 인간 가구들 또한 그 풍경 속에 녹아든다. 산더미 같은 혼돈 속에서 극을 정리해 나가는 안무의 모습이 대견하고 아름답다.
김주빈 안무의 '귀신날'이미지 확대보기
김주빈 안무의 '귀신날'

김주빈 안무의 '귀신날'이미지 확대보기
김주빈 안무의 '귀신날'


JUBIN Company의 대표이자 예술감독인 김주빈은 서울문화재단 ‘최초예술지원’(2017)작 「착한 사람」을 시작으로 다채로운 안무작업을 해오고 있다. JUBIN Company는 「견」, 「착한 사람」, 「마주하기까지」, 「새다림」 등 다양한 형식의 안무 배열을 통한 실험을 거치면서 새로운 스타일의 방향성을 제시한다. 해마다 해외 춤 페스티벌로부터 초청받고 있으며, 해외 레지던시 프로그램에도 꾸준히 참여, 국외로까지 활동 영역을 넓혀 한국창작춤의 무한 가능성을 해외 곳곳에 알려왔다. 「귀신날」은 놀이무용극의 수범이 되었다.

「귀신날」의 장점 가운데 하나는 관객들의 눈을 뜨게 한 계몽적 역할이었다. 한국적 소재로도 세계가 공감하는 특유의 표현법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안무가의 천재성으로 구성은 촘촘하고 투명한 유리알처럼 빛났고, 협업 예술가들과의 균형감도 뛰어났다. 내용에 대한 수사의 적합성은 안무가 자신이 직접 조절해 내며 무용수들과의 호흡으로 해결해 내었다. 안무가 김주빈이 춤으로 만든 극은 육체적 박동을 회화적으로 조성하며 관객들을 즐겁게 한 성탄 선물처럼 여겨졌다. 그의 천재성이 만개할 날이 주어지길 기원한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