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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가혹하고 척박한 환경서 살아남기 위한 '고육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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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가혹하고 척박한 환경서 살아남기 위한 '고육지책'

[힐링마음 산책(311)] 형제일처혼과 문화
지난 2017년 2월10일 미 유타주 주도 솔트레이크시티의 주 의회 앞에서 일부다처제 지지자들이 중혼자 처벌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유타주 의회는 일부다처제를 합법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인간 동의에 따라 이뤄진 중혼의 경우 징역형에 처하는 대신 벌금 납부와 사회 봉사만 하도록 하는 법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해 하원으로 송부했다. 사진=AP/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2017년 2월10일 미 유타주 주도 솔트레이크시티의 주 의회 앞에서 일부다처제 지지자들이 중혼자 처벌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유타주 의회는 일부다처제를 합법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인간 동의에 따라 이뤄진 중혼의 경우 징역형에 처하는 대신 벌금 납부와 사회 봉사만 하도록 하는 법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해 하원으로 송부했다. 사진=AP/뉴시스
최근 인도 북부 하티족 마을에서 벌어진 일이 화제다. 한 여성이 형제 두 명과 동시에 결혼식을 올린 것이다. 수백 명의 주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흘간 열린 성대한 결혼식에서 신랑들은 "우리 전통을 자랑스러워한다"면서 "함께 아내를 사랑하겠다"고 당당히 선언했다. 우리 눈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다. 그런데 이런 '형제다혼제'가 존재하는 이유를 들여다보면, 인간의 생존 본능이 얼마나 강력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하티족의 일처다부제는 인도에서는 불법이지만, 이들이 거주하는 지역에서는 여전히 전통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이 세 사람은 어떠한 압력도 받지 않고 가족의 동의를 얻어 결혼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형제는 "아내를 위한 안정적인 삶을 함께 만들어가며 아내를 사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발언에서 우리는 단순한 관습이 아닌, 깊은 사회적 맥락을 읽을 수 있다.

결혼의 본질과 다양성


결혼을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먼저 인간의 본능적 욕구인 성욕을 사회가 인정하는 방식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성적 만족은 반드시 결혼을 통해서만 충족되는 것은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관계나 개인적인 방법을 통해 결혼 외의 방식으로도 성욕이 충족될 수 있음이 널리 인정되고 있다. 따라서 결혼의 본질은 단순한 성적 충족을 넘어 정서적·사회적·심리적 욕구의 통합적 만족을 주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전 세계 80% 이상의 국가가 법적으로 일부일처제(monogamy)만 허용한다. 우리에게 제일 익숙한 결혼제도인 일부일처제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결혼해 가족을 구성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류학자들이 조사한 1200여 전통사회를 보면 우리의 상식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일부일처제만 허용하는 사회는 겨우 15~20%에 불과하다. 즉 법적·공식적으론 다수를 차지하지만 실제 문화·관습으론 그 비중이 의외로 낮다.

일부일처제 외에 잘 알려진 것이 일부다처제(polygamy)다. 인류학적으로 조사된 사회 중 약 75~80%가 최소한 관습적으로라도 일부다처제를 허용하거나, 일부 가정에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중동, 아프리카, 일부 남아시아 국가에서 이 제도가 공식적으로 또는 관습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소수의 남성만을 제외하면 경제적 이유 등으로 실제로 한 사회에서 일부다처 가족이 전체 가정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낮다.

특히 일처다부제(polyandry)는 전 세계 1% 미만의 사회에서만 발견되는 극히 희귀한 제도다. 부인 한 명이 여러 남편과 결혼해 동거하는 제도다. 이 경우 남편들은 다른 가족에서 자란 사람이다. 하지만 티베트 고원, 네팔 산간지대, 인도 라다크 등 고산지대에서만 나타나는 ‘형제일처혼제(fraternal polyandry)’는 아주 특이한 결혼제도다. 이는 일처다부제 중에서도 가장 희귀하고 흥미를 자아내는 제도로, 한 여성과 형제들이 동시에 혼인하는 제도다.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이 특이한 결혼 형태에는 절박한 생존 전략이 숨어있다. 이 결혼제도가 유지되는 이유를 정확히 알면 생존과 문화의 관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척박한 땅이 만든 생존 공식


'형제일처혼제'가 발달한 지역들은 극도로 척박한 환경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처럼 쉽게 이해하기 힘든 형제일처혼제가 발달한 이유를 살펴보면 인간이 생존을 유지하며 자손을 낳고 키우면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처연한 일인지 알 수 있다.

첫 번째는 경제적 요인이다. 히말라야 고산지대의 좁은 경작지에서는 재산의 분할이 곧 가족의 몰락을 의미한다. 이 지역들은 대부분 산악지대로 경작지가 매우 제한적이다. 한 부모 밑에 여러 자식, 특히 아들들이 있는 것은 어느 문화에서건 일반적인 일이다. 만약 한 가족에 아들 셋이 있는데 장성해서 결혼하면 분가(分家)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일반적인 경우처럼 아들 셋이 각각 결혼해 분가하면 농지는 3등분 된다. 그러면 한 아들당 돌아가는 농지는 적어지고 이 농지로는 한 가정이 자식을 낳고 살아가기가 매우 힘들어진다. 이렇게 분할된 땅으로는 한 가정도 제대로 먹고 살 수 없다. 그렇다고 아들들을 결혼시키지 않는다면 결국 대가 끊어지고 만다. 동시에 성장한 아들들의 성적 욕구를 해결해줄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 해답은 하나다. 아들들이 성적인 만족을 얻을 수 있고 재산 분할을 할 필요가 없는 방안, 즉 형제들이 한 여성과 결혼하는 것이다.

이 방식은 놀라운 인구 조절 효과도 가져온다. 형제들이 한 여자와 결혼하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자손이 생기는 것을 조절할 수 있다. 각 아들이 다른 여자와 결혼해 가정을 이루면 자손들이 많아진다. 그러면 식량 등을 제공할 수 없다. 하지만 여자는 생식의 양식에서 남자와 다르다. 남성은 생리적으로 여러 여성을 임신시킬 수 있지만, 여성은 아무리 많은 남성과 관계해도 낳을 수 있는 자녀 수는 동일하다. 형제들이 한 여성과 결혼하면 자식을 생산해내는 면에서는 결국 한 아들만 결혼한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 결국 가족의 분열을 막고 제한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혹독한 자연이 빚은 공동체 전략


두 번째는 환경적·생태적 요인이다. 형제일처혼제를 유지하는 지역은 기후가 가혹하고 생존 자원이 부족하다. 고산지대의 가혹한 기후에서 농업과 목축으로 살아가려면 여러 성인 남성의 협력이 필수다. 농경이나 목축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에서 다수의 성인 남성이 협력해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 가계를 유지하는 데 유리하다. 따라서 형제 모두가 결혼 후에도 한 가정에서 공동 생산과 공동 소비를 지속하는 것이 생존 전략으로 유리하다.

분가보다는 형제들이 힘을 합쳐 한 가정을 꾸려가는 것이 생존에 훨씬 유리한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부계 중심의 확대가족제도를 중요시하고, 가족 단위로 생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지역들은 가문과 혈통의 단일성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해 외부로 분가하거나 가문을 나누는 것을 피하려는 목적도 있다. 가문의 혈통과 재산을 하나로 유지하려는 의지가 형제일처혼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이에 따라 형제가 함께 한 여성과 결혼해 하나의 가정으로 살아가는 것이 자연스럽게 용인되어 왔다.

현대화와 전통의 갈등


오늘날에는 교육 보급, 도시화, 법률 제도의 확산 등으로 형제일처혼제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특히 중국의 티베트 자치구에서는 정부의 산아제한 정책과 한 자녀 정책의 영향으로 이 제도가 약화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고립된 지역에서는 경제적 어려움과 지리적 조건, 문화적 전통 때문에 이 제도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젊은 세대들은 교육을 받으면서 개인의 선택권과 자유를 중시하게 되었고, 전통적인 결혼제도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또한 경제적 기회가 늘어나면서 도시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이들은 자연스럽게 일부일처제를 선택하게 된다. 법적 제도의 정비와 인권 의식의 확산도 이런 변화를 가속하고 있다.

문화는 한 집단이 환경에 제일 효율적으로 적응해 살아남기 위해 형성된 삶의 양식이다. 살아남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도덕이나 가치는 없다. ‘사흘 굶어 담 아니 넘을 놈 없다’는 속담이 있다. 이 말은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몹시 궁하게 되면 못하는 짓이 없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사람뿐만 아니라 꿀벌조차도 며칠 굶으면 도둑질을 한단다. 이를 양봉업자들을 도봉(盜蜂)이라고 한다. 누구와 성관계를 맺고 결혼하는지는 본질적으로 윤리의 문제가 아니다. 문화가 결정하는 것이고, 더 나아가 그 방식 자체가 문화이기도 하다.

인간 적응력의 놀라운 증거


다양한 결혼제도가 있다는 것은 인간이 그만큼 환경에서 살아남는 적응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입증한다. 만약 인류가 한 가지 결혼제도만 고집했다면 벌써 멸종했을 것이다. 환경은 지속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결혼제도가 또 나타날지는 모른다. 환경 변화에 따라 생존 전략을 유연하게 바꿔온 것이 오늘날 우리가 지구 곳곳에서 번영할 수 있었던 이유다.

인류의 역사는 환경에 끊임없이 적응하는 기록이다. 환경은 자연환경(natural environment)과 인공환경(artificial environment)이 있다. 과거로 멀리 갈수록 자연환경이 인간의 삶을 지배했다. ‘형제다부제’도 이 척박한 자연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형성된 제도다. 하지만 현대로 올수록 자연환경보다 인공환경이 더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제 인간은 자연환경에 단순히 순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인공환경을 통해 자연환경을 지배하는 존재로 변하고 있다. 이제 그들은 척박한 자연환경에 순응하기보다 스스로 새로운 환경을 개척하고 있다. 결혼제도뿐만 아니라 윤리와 가치를 포함한 현재 살아가는 방식도 지금은 익숙하지만 계속 변하고 있다. 환경이 변하기 때문이다. 현재 형제일처혼제를 채택하고 있는 지역도 점차 우리가 익숙한 결혼제도로 변하고 있다. 그들의 윤리의식이 제도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환경이 변화시킨다.

중요한 것은 문화가 그 사회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발달했다는 점이며, 이는 인간의 놀라운 적응력과 다양성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각각의 결혼제도가 그 사회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발달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우리의 방식과 같거나 틀리거나와 관계없이 인간 문화의 다양성과 창의성에 경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현대 사회에서도 전통적인 핵가족 외에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등장하고 있다. 모두 변화하는 사회 환경에 대한 적응의 한 모습이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이미지 확대보기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