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월 7일(일) 오후 3시,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2025 예술창작활동지원사업 선정 프로젝트, 고현정 주최·주관, 서울특별시·서울문화재단·이화여자대학교무용과 후원, 고현정(HYEON-JEONG GO, 이화여대 무용과 부교수) 안무의 'Salt Path'(소금길)가 공연되었다. 압도적인 공연 공간에 수준급 발레 무용수들이 연습량이 보이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옹골진 연기는 안정된 안무의 도움으로 미학의 상부구조로 치달았고 군무는 이화 발레의 자존심으로 비쳤다.
'Salt Path'는 공연 못지않게 이론이 빼곡히 포진해 있어 학구적 발레의 한 모습이 되었다. 안무가 고현정은 대형 발레를 주조하면서 홍정희, 신은경의 대형 발레와 조기숙의 연구적 발레의 전통을 이음 하면서 이화 발레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고현정 발레의 이화 발레 제3막은 이원(梨園)을 나와 강남의 갓을 쓰고 샹그릴라 신드롬을 창출하고 있었다. 그녀의 발레에 대한 사유가 깊어질수록 춤은 싱그러움이 더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Salt Path'는 “발레의 아름다운 언어를 창의적으로 탐구하며 우리 삶의 ‘소금길’을 만드는 과정을 그려낸다. 자연에서 긴 세월을 거친 후 탄생하는 소금의 결정처럼 오랜 세월을 지닌 발레와 함께 시대를 넘나들며 사유하는 예술적 실험을 시작한다. ‘소금길’의 실험은 감정과 기억의 뇌파 분석을 통해 무용수의 인지를 읽어내고, 숨겨진 과거의 역사를 현재의 관점으로 그려내며, 동시대 우리의 소중한 유산을 탐구한다.” 안무가는 소금길 작업에 대해 해답을 제시한다.





'Salt Path'는 프롤로그 : ‘여정의 시작’, 1막 : ‘탐구의 서고’, 2막 : ‘찰나의 반짝임과 인류세’, 3막 : ‘생각하는 춤’, 에필로그에 이르는 3막으로 구성된다. 소금에 관한 서사는 현대무용에서의 수난과 극기 끝에 피어나는 소금꽃이거나 한국무용에서 낭만적인 향토색 물씬 풍기는 민속춤으로 다루어져 왔다. 새로운 시선을 마주하고, 춤을 바라보는 고현정의 'Salt Path'는 성경의 ‘소금과 빛’에 관한 비유에서 추출한 연구물로 구성한 듯 보인다.
프롤로그. 여정의 시작: 소금을 캐는 Salt Collector(소금 채집가)가 밝고 생기 넘치는 무대로 꿈꾸는 길을 비추며 소금길의 첫걸음으로 인도한다. 아름다운 모습으로 형상화된 소금 결정체는 황홀하고 몽환적인 망령들의 왕국(The Kingdom of the Shades)의 우아하고 섬세한 클래식 발레 동작으로 녹아든다. 결을 달리하는 Salt Collector(13명, 6명, 3명)의 춤은 분위기를 일구고 망령들이 구분된 춤은 열정을 주도한다. (음악: 루트비히 민쿠스, 김태근)
1막. 탐구의 서고: 숨겨진 고전, 다시 빛나다. Salt Collector는 1700년대의 빛나는 소금을 수집한다. 베토벤이 작곡한 두 개의 발레 음악 작곡 가운데 드문 하나가 소개된다. 과거의 전통과 현대의 생동감이 뒤섞인 움직임이 1700년대 후반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이 작곡한 ‘기사의 발레를 위한 음악’(Musik zu einem Ritterballet, WoO 1)과 함께한다. 클래식 발레의 아름다움은 반짝이는 소금 결정처럼 섬세하고 독창적인 움직임 속에서 새롭게 빛난다.
계몽주의 시대의 춤을 재해석한다. 섬세하고 우아한 움직임으로 역사 연구를 그려가며 빛나는 소금길을 만든다. 18세기 계몽주의는 발레에 인간의 감정을 전달하려는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프랑스극장에는 열정을 표현하는 데 회화적 아름다움을 달성하는 일련의 규칙이 있었고, 이러한 규칙들은 노베르 무언극 구절의 기초를 이루었다. 당시 발레는 표현적 안무로 이야기를 전달했고, 서사와 감정 전달에 중점을 둔 계몽주의적 이상을 반영했다.
안무가인 피에르 가르델의 1790년대 그림이 입증하듯 당시에 이미 턴 아웃(turn-out)과 발끝으로서는 푸앵트(pointe) 기교가 존재했다. 팔 움직임인 포르드브라(port de bras)는 동시대 발레의 기본 포지션과 차이점이 있었는데, ‘움직임의 고귀함’에 중점을 둔 우아하고 지적인 팔의 움직임을 강조한다. 고현정은 Guest, I.(1996)의 계몽주의 발레책에서 참고하여 그 시대 춤을 연구하였고, 1막 안무를 통해 무용수의 포르드브라와 제스처를 새롭게 해석한다. 당시 발레 기술은 계속 발전되었으며, 베스트리스의 등장으로 정점을 찍었다.
2막. 찰나의 반짝임과 인류세: 영통함의 순간, 심연의 속삭임을 기억하다. Salt Collector는 현재에서 소금을 찾는다. 현재는 언제나 순간적이며, 순간의 아름다움을 지닌다. 찰나의 아름다움은 인간의 탐욕으로 인간을 인류세의 중심에 둔다. 지구는 더 이상 자연의 강물이나 숲의 경계가 아니라 인간이 만드는 거대한 실험실이 된다. (음악: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2악장(D Minor, Op. 125), 교향곡 7번 2악장(A Maior, Op. 92, Allegretto)
일상사에서 환희의 순간과 그 이면의 심연을 연구한다. 즐겁고 밝은 움직임과 섬세한 감정 표현으로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회복을 향한 갈망을 표현한다. 인류세(인류의 시대)와 지속 기능성에 얽힌 동시대 춤을 사유한다. 지난 세기 인간은 인간 중심적인 사고와 삶의 방식으로 재능과 힘을 휘둘렀다. 우리는 현재 홀로세에 살고 있지만, 많은 학자가 인류세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모든 것을 인간 위주로 생각해 삶을 꾸려나간다.
급격한 발전과 변화의 시대에 지속가능성을 생각해 낸다. 인간의 생태계 교란으로 인한 환경 파괴, 기후 변화, 먹거리 위기, 오염, 전염병은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며 소중한 것들을 앗아간다. 즐거움으로 가득한 현시대 인간의 삶. 우리가 잃어버리고, 파괴하고 있는 것을 찾아본다. 유발 하라리(히브리 대학 교수)의 '호모데우스'가 발레에 스며든다. “우리가 누리는 즐거움 뒤에 숨겨진 그림자를 외면한 채, 과연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3막. 생각하는 춤: 춤추는 뇌, 내면의 미로를 탐험하다. 미래로 간 Salt Collector는 ‘생각하는 춤’으로 나아간다. 춤추는 무용수의 뇌파와 감각-인지-기억-공감이 연결된 움직임이 예술과 과학을 만난다. 인간은 춤의 미래를 상상하고 실험한다. 무용수의 심신이 합체되는 초월의 순간, 무용수의 뇌 변화를 통해 관객은 무용수의 내면세계와 만난다. (음악: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2악장(Piano Concerto No. 5 in E-Flat Major, ‘Emperor’ Op.73 : II.)
소금길, 뇌와 춤의 교차로에서 미래를 조망한다. 동작 학습 과정에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사고를 하고 타 무용수와의 공간 사용, 정확한 타이밍, 리듬과 박자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하는 무용수의 뇌파를 측정하고, 동작을 체화한 후 뇌파를 비교해 춤과 함께 예술적 표현에 숨겨진 뇌의 변화를 그려낸다. 거울신경 시스템의 작동, 복잡하고 정교한 움직임을 수행하는 무용수의 엄청난 몰입과 특별한 감정을 느끼는 뇌파를 검사해 결과치의 뇌 활성화 부분을 그려낸다.
뇌신경 과학자들은 발레 무용수의 정형미와 특별한 기억력 분석을 위해 다양한 연구를 했다. 무용은 관찰에서 움직임을 배워가며 타인의 움직임을 관찰할 때 활성화된다. 무용수가 타 무용수의 동작을 보거나, 직접 춤을 출 때, 움직임을 감각적으로 인지할 때, 우리는 타인의 행동을 이해하고 공감한다. 이때의 뇌파 차이 분석, 팔동작과 다리 동작을 관찰할 때의 뇌파 비교 등 무용수의 ‘뇌의 움직임’을 밝혀내어 무공수의 뇌가 가진 능력을 이해한다.
에필로그. 소금길 위에서 발레는 사유의 언어가 된다. 안무가 고현정에게 연구하는 춤은 늘 즐겁다. 그녀는 올곧은 소금길을 찾기 위해 늘 나침반을 소지한다. 안무가는 예술·인문·과학이 교차하는 무대라는 실험실 위에서 반짝이는 소금길을 만들어간다. 소금길은 끊임없는 탐구와 실험정신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 안에서 올곧은 가치를 발견하고, 그 가치가 세상에 빛을 밝힐 수 있도록 사유하는 춤의 길을 탐색하며, 아름답게 빛나는 소금길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고현정은 춤으로 행복해지는 세상이 오기를 꿈꾸는 예술가이자 교육자다.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영국 브루넬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립발레단 정단원으로서의 경험을 토대로 대한민국발레축제, K-발레 레퍼토리, 한국현대춤작가12인전 등 무대에서 안무작을 발표해 왔다. 그녀는 인지에 관한 연구를 심화시키며 ‘탐구하는 무용’을 만들어간다. 고현정단(團)은 탐구의 나침반을 들고 소금길을 따라 무한한 깊이와 가능성을 지닌 ‘춤의 연구’ 숲을 지향한다.
고현정 안무의 창작발레 'Salt Path'는 학구적 발레의 예술성과 대중성을 확보한 한국 발레의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고현정은 작품을 만드는 시작부터 공연 당일까지 연구를 계속했다. 무용수가 처음 순서를 익히는 순간부터 익숙해지는 순간까지의 뇌파 연구, 그리고 공연 당일 무용수가 느끼는 특별한 감정을 그날, 그 공연에서 직접 실험한다. 김다애(전 Staatstheater Nuernberg soloist), 정은지(국립발레단 드미솔리스트), 김여진(Thueringer Staatsballet soloist), 정승아(국립발레단 정단원), 한세빈(국립발레단 준단원)의 주도적인 리드와 국립발레단 솔리스트 변성완을 합해 모두 43명에 이르는 무용수들은 빛나는 소금꽃이 되었다. 정석의 발레 속에 담긴 실험성이 돋보이는 공연이었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사진=잔나비와묘한계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