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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0년 전 작살촉 꽂힌 고래뼈…울산, 동아시아 해양문명 중심지 증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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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0년 전 작살촉 꽂힌 고래뼈…울산, 동아시아 해양문명 중심지 증명하다

국가민속문화유산 지정 눈앞…반구대암각화와 이어지는 신석기 포경의 실증 자료
고래 한 마리가 공동체를 먹여 살리던 시대, 울산 바다에 남겨진 선사인의 흔적
국보 반구대암각화에 새겨진 고래와 포경 장면. 최근 국가민속문화유산 지정을 앞둔 ‘고래뼈에 박힌 사슴뿔 작살촉’은 암각화 속 포경 기록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하는 고고학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사진=국가유산청이미지 확대보기
국보 반구대암각화에 새겨진 고래와 포경 장면. 최근 국가민속문화유산 지정을 앞둔 ‘고래뼈에 박힌 사슴뿔 작살촉’은 암각화 속 포경 기록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하는 고고학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사진=국가유산청
고래를 향해 던진 작살의 흔적이 7000년의 시간을 건너 국가민속문화유산 지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

울산박물관이 소장한 ‘골촉 박힌 고래뼈’는 단순한 동물 뼈가 아니다. 신석기인들이 실제로 고래를 사냥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희귀한 증거이자, 울산이 수천 년 전부터 동아시아 해양문화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음을 말해주는 유물이다.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위원회 민속문화유산분과는 최근 이 유물의 국가민속문화유산 지정 안건을 조건부 가결했다. 지정 명칭은 ‘고래뼈에 박힌 사슴뿔 작살촉’으로 변경될 예정이다. 울산 신항만 연결도로 부지 발굴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이 유물은 현재까지 확인된 신석기 포경 관련 자료 가운데서도 가장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증거로 평가받고 있다.

신석기 울산 앞바다에는 어떤 고래가 살았나


고래 견갑골에 박힌 사슴뿔 작살촉. 울산 황성동 유적에서 출토된 이 유물은 신석기시대 포경 활동을 입증하는 대표적 고고학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사진=울산시이미지 확대보기
고래 견갑골에 박힌 사슴뿔 작살촉. 울산 황성동 유적에서 출토된 이 유물은 신석기시대 포경 활동을 입증하는 대표적 고고학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사진=울산시
현재 발견된 고래뼈만으로 정확한 종을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학계는 뼈의 형태와 당시 동해 남부 해역의 환경을 토대로 귀신고래와 참고래류, 대형 수염고래류일 가능성을 제기해 왔다.

특히 귀신고래는 과거 동해와 대한해협을 거쳐 이동한 대표적인 회유성 고래로 알려져 있다. 현재는 한국 연안에서 거의 관찰되지 않지만 선사시대에는 한반도 연안에서 비교적 흔하게 출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구대암각화에도 귀신고래와 향고래, 참고래류로 해석되는 다양한 형태의 고래가 등장한다. 이는 수천 년 전 울산 앞바다가 오늘날보다 훨씬 풍부한 고래 회유 경로였음을 시사한다.

고래뼈에 박힌 작살촉은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당시 울산 사람들이 어떤 바다에서 어떤 동물을 상대하며 살아갔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기록인 셈이다.

한 사람이 아닌 공동체가 나선 고래사냥


반구대암각화에는 수십 척의 배와 다수의 포경 장면이 새겨져 있다.

암각화 속 고래는 50마리 이상으로 해석되며 작살을 던지는 인물과 배를 젓는 인물도 확인된다.

학계는 이러한 장면을 집단 포경의 기록으로 해석하고 있다.

수 톤에서 수십 톤에 이르는 대형 고래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여러 척의 배와 다수의 인력이 동시에 투입돼야 한다. 배를 조종하는 사람, 작살을 던지는 사람, 고래를 추적하는 사람이 유기적으로 움직여야만 성공할 수 있다.

신석기시대 포경 과정을 재구성한 자료. 반구대암각화에 새겨진 고래와 포경 장면은 집단 항해와 조직 사냥이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기록으로 평가된다. 자료=국무총리실이미지 확대보기
신석기시대 포경 과정을 재구성한 자료. 반구대암각화에 새겨진 고래와 포경 장면은 집단 항해와 조직 사냥이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기록으로 평가된다. 자료=국무총리실


고래뼈에 박힌 작살촉은 반구대암각화에 새겨진 집단 포경 장면이 실제로 존재했음을 뒷받침하는 물증으로 평가된다.

최근 연구자들은 이러한 포경 활동을 단순한 어업의 범주로 설명하지 않는다. 배를 건조하는 기술, 넓은 바다에서 고래를 추적하는 항해 능력, 여러 사람이 동시에 움직이는 조직력, 사냥 이후 자원을 분배하는 공동체 운영 능력이 함께 작동해야 가능했기 때문이다.

7000년 전 울산 연안에는 이미 집단 항해와 조직 사냥, 자원 분배 체계를 갖춘 해양 공동체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고래 한 마리가 마을의 식량창고였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에게 고래는 단순한 먹거리가 아니었다.

고래고기는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고 두꺼운 지방층은 식량과 연료로 활용됐다. 뼈는 생활도구와 건축 재료로 사용됐으며 가죽과 힘줄 역시 다양한 생활용품 제작에 이용됐다.

고고학자들은 대형 고래 한 마리가 당시 공동체가 장기간 활용할 수 있는 식량과 생활 자원을 제공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차례의 성공적인 포경은 공동체가 오랜 기간 활용할 식량과 연료, 생활 재료를 동시에 확보하는 사건이었다. 육지에서 이뤄지는 일반적인 수렵과는 규모 자체가 달랐다.

바다에서 잡은 고래는 곧 식량이었고 에너지였으며 생활 기반이었다. 울산 사람들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고래를 쫓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일본·러시아에도 있지만 울산 유물은 다르다


동북아시아에는 신석기시대 해양문화 유적이 적지 않다.

일본 홋카이도와 혼슈 북부의 조몬문화 유적에서는 고래 이용 흔적이 발견됐다. 러시아 연해주 해안 유적에서도 해양 포유류를 활용한 흔적이 보고되고 있다.

북유럽 노르웨이와 북미 알래스카의 선사 유적 역시 고래사냥 전통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작살촉이 실제 고래뼈에 박힌 상태로 발견된 사례는 매우 드물다.

대부분은 고래뼈와 사냥 도구가 각각 발견되는 수준에 머문다.

울산 유물이 국제 학계의 관심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냥 도구와 사냥 대상이 하나의 장면처럼 남아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백해 지역 암각화에는 여러 척의 배가 작살로 고래를 포획하는 장면이 남아 있으며, 학계는 이를 집단 포경의 기록으로 해석한다.

반구대암각화 역시 비슷한 형태의 포경 장면을 담고 있어 울산의 사례가 세계 선사 해양문화권의 흐름 속에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구대암각화와 만난 결정적 증거


반구대암각화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포경 기록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암각화에는 고래와 바다사냥, 배와 작살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하지만 암각화는 기록이다. 고래뼈에 박힌 작살촉은 실물이다. 반구대암각화가 신석기인의 기억을 전하는 유산이라면, 이번 유물은 당시 현장을 증명하는 고고학 자료다.

고래 흉추에 박힌 사슴뿔 작살촉을 살펴보는 모습. 울산 황성동 유적 발굴조사 과정에서 출토된 이 유물은 신석기시대 포경 활동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 고고학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고래 흉추에 박힌 사슴뿔 작살촉을 살펴보는 모습. 울산 황성동 유적 발굴조사 과정에서 출토된 이 유물은 신석기시대 포경 활동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 고고학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학계에서는 두 유물이 결합하면서 울산의 선사 해양문화 연구가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화유산위원회 역시 이 유물을 신석기시대 울산 지역의 고래잡이 기술과 생활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자, 울산이 선사시대 고래잡이 문화의 중심지였음을 입증하는 자료로 평가했다.

국가민속문화유산 지정이 최종 확정되면 울산은 반구천의 암각화 세계유산과 함께 선사 해양문명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국가유산을 갖게 된다.

반구대암각화가 남긴 그림은 오랫동안 질문이었다. 황성동에서 발견된 고래뼈는 그 질문에 대한 답에 가깝다. 7000년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마주 선 기록과 물증은 울산의 바다가 단순한 어장이 아니라 선사 해양문명의 중요한 무대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박근호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otkay8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