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신현정의 '초고령 日 엿보기']대학을 떠나 세상이라는 교실로 간 신미화 교수

글로벌이코노믹

[신현정의 '초고령 日 엿보기']대학을 떠나 세상이라는 교실로 간 신미화 교수

일본에서 정년 이후에도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질문은 '왜 일본인은 은퇴하지 않는가'이다. 일본의 모든 고령자가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모두 일하고 싶어서 일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일본을 다니다 보면 일흔을 넘어서도 일터로 향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지역사회에서 자기 역할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난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그 질문의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일본인이 아니라 일본에서 평생을 살아온 한국인을 통해서다.

신미화 교수(67)는 게이오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일본 이바라키 그리스도교대학 경영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했다. 일본에서 40년 가까이 살았다. 지바현에 사는 그는 정년 뒤에는 대학을 떠났지만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대학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나와 일본의 시니어 일자리와 고령친화 비즈니스 현장을 찾아다니고, 사람을 만나고, 글을 쓰고, 유튜브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연로한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한국과 일본을 오가면서도 취재와 강연, 콘텐츠 제작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일본의 고령사회를 바라보는 흥미로운 '창'이다. 한국인의 시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일본 사회 내부에서 수십 년을 살아왔고, 이제는 본인도 정년 이후의 삶을 직접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그와 긴 인터뷰를 통해 일본 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창문을 열어봤다.

신미화 이바리키 그리스도교대학 경영학부 교수. 신 교수는 정년 후 일본의 시니어 일자리와 고령 친화 비즈니스를 취재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신현정 중부대 교수이미지 확대보기
신미화 이바리키 그리스도교대학 경영학부 교수. 신 교수는 정년 후 일본의 시니어 일자리와 고령 친화 비즈니스를 취재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신현정 중부대 교수

일본인은 왜 은퇴하지 않는 걸까요?

"정년은 직업이 사라지는 날이 아닙니다"는 답이 돌아왔다. 신 교수에게도 대학 정년은 찾아왔다. 수십 년간 자기를 설명해 준 '교수'라는 직함을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정년을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조직에 있을 때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직함으로 자기를 설명합니다. 교수, 사장, 부장, 공무원 같은 명함이 곧 '나'라고 생각하기 쉽지요."

그가 정년을 앞두고 자신에게 던진 질문은 단순했다. '교수라는 명함을 떼어낸 뒤 나는 누구인가'였다. 그리고 한 가지 질문이 더 따라왔다. '세상에 생짜배기 나로 던져졌을 때 나는 무엇으로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을까'였다.

그에게 이 고민은 정년이 임박해서 갑자기 시작된 게 아니었다. 재직 중 몇 년 동안 계속 생각해 온 문제였다. 결국 그가 내린 결론은 정년을 '역할의 소멸'이 아니라 '역할을 스스로 만드는 시기'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정년은 직업이 사라지는 날이 아니라, 조직이 정해준 역할에서 벗어나 스스로 자신의 역할을 설계하기 시작하는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 강의실에서 유튜브라는 새로운 교실로


처음부터 유튜버가 되겠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그는 학문적 연구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좋은 연구가 논문이나 책으로 출판된 뒤 대학도서관 서가에 머무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있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대학 강의실 안에만 가두지 말고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해 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

대상은 대학생만이 아니었다. 은퇴를 준비하는 50~60대, 이미 정년을 맞은 시니어들에게 실제 삶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특히 2024년 말 한국이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그의 관심은 더욱 선명해졌다. 일본은 이미 한국보다 훨씬 앞서 초고령사회를 경험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앞서 늙어본 나라'의 성공과 실패를 직접 들여다보면 한국이 배울 것이 있지 않을까.

신 교수는 책상에서 일어나 현장으로 향했다. 여섯 명의 시니어 여성이 함께 운영하는 피자가게, 정년을 없애고 시니어 인재를 활용하는 기업, 폐교를 요양과 상업·지역교류가 결합된 복합 커뮤니티로 바꾼 지역…. 직접 사람을 찾아가 만나고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유튜브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 됐다.

유튜브, 지식을 사회와 연결하는 새로운 통로


교수 시절의 지식이 강의실에서 학생에게 전달됐다면, 이제 그의 교실은 일본과 한국의 현장이 됐고 학생은 불특정 다수의 시청자와 독자가 됐다.

교수 시절과 지금 가운데 어느 때가 더 재미있느냐고 묻자 뜻밖의 비유가 돌아왔다. "대학에 있을 때의 저는 슈퍼에 말끔하게 진열된 생선과 같았습니다."

대학에 있으면 학생이 있고 연구실이 있고 강의실이 있다. 조직이 연구하고 가르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 "그런데 지금의 저는 망망대해에서 힘차게 퍼덕이는 살아 있는 물고기와 같습니다."

이제는 취재할 곳도 자신이 찾아야 한다. 인터뷰하고 싶은 사람에게 직접 연락하고, 거절당하면 다른 문을 두드려야 한다. 인터뷰가 성사되면 상대방의 책과 기사, 기업의 역사까지 공부해야 한다. 글을 쓰고 사진과 영상을 정리해 콘텐츠로 만드는 것도 자기 몫이다.

힘들지만 자유롭다. "지금처럼 정답이 정해지지 않은 곳에서 새로운 질문을 발견하는 삶이 더 재미있습니다."

정년 이후 그는 더 이상 대학이 제공하는 안전한 수조 안에 있지 않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수조를 벗어나면서 더 넓은 세상을 헤엄치기 시작했다.

신미화 교수가 환하게 웃으며 강연하고 있다. 사진=신현정 중부대 교수이미지 확대보기
신미화 교수가 환하게 웃으며 강연하고 있다. 사진=신현정 중부대 교수


일본인은 왜 은퇴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그가 오랫동안 일본에서 살고, 최근 수년간 일본의 시니어들을 직접 만나면서 발견한 답은 무엇일까. 돈일까. 건강 때문일까. 외로움 때문일까.

신 교수는 "모두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만난 많은 일본 시니어는 돈 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건강을 유지하고 싶다,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고 싶다, 사회에서 자기의 역할을 잃고 싶지 않다는 욕구가 상당히 큽니다."

특히 정년 이후에는 회사가 사라진 자리를 지역사회가 대신한다. 봉사활동, 주민단체, NPO, 실버인재센터, 취미 모임, 작은 일자리 등을 통해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진다.

그가 중요하게 보는 것은 바로 '사회와 만나는 접점'이다. 일한다는 것은 단지 돈을 버는 행위만이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 씻고 옷을 입고 집 밖으로 나갈 이유가 생긴다. 누군가를 만나고, 대화를 나누고, 내가 해야 할 일이 생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아직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감각을 갖게 된다.

"내 이름을 불러주는 곳은 병원뿐이다"


신 교수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는 두 사람이 있다. 대학의 새 건물이 완공되었을 때 과거 경영대학장을 지낸 두 사람을 초대한 적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70대 중반이었다.

그러나 정년 이후의 삶은 완전히 달랐다. 한 사람은 정년 후 특별한 활동 없이 지냈고, 다른 한 사람은 고등학교 이사와 여러 협회 활동을 하며 일주일에 나흘 정도 계속 밖으로 나가 활동하고 있었다.

먼저 아내를 떠나보내고 혼자 살고 있던 전직 학장은 이런 말을 했다."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갈 곳이 없고, 해야 할 일도 없다. 이제 내 이름을 불러주는 곳은 병원뿐이다"

신 교수는 그 말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돈만이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 갈 곳이 있고, 해야 할 일이 있고,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고, 내 이름을 불러주는 곳이 필요하다. 일이어도 좋고 봉사여도 좋다. 공부나 취미 모임이어도 상관없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나는 아직 사회의 일부다'는 감각이 필요합니다."

신 교수가 생각하는 일본의 ‘은퇴하지 않는 삶’은 결국 여기에 닿아 있었다.

오래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사회를 연결하는 끈을 쉽게 놓지 않는 것


그 끈에 일과 돈, 건강과 인간관계, 사회적 역할이 함께 매달려 있는 것이다. 물론 질문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정년 이후에도 일하는 일본의 고령자를 보며 '역시 일본인은 대단하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단순한 해석이다. 일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생활비 때문에 일해야 하는 노인도 있기 때문이다.

신 교수 역시 이 점을 경계한다."'평생현역'이라는 말을 아름답게 포장하다 보면 생활비가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일하는 고령자의 현실을 가릴 수 있습니다."

반대편에도 함정이 있다. 노년의 노동을 모두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일'로 해석하는 것 역시 현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실제 삶에서는 돈, 건강, 관계, 역할이라는 동기가 뒤섞여 있다. 수입도 필요하지만 사람을 만나고 싶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싶으며, 여전히 사회에 필요한 존재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신 교수는 좋은 노후를 판단하는 기준을 '일하는가, 일하지 않는가'에 두지 않는다.

"좋은 노후의 기준은 '일을 하는가'가 아니라 '내가 선택할 수 있는가'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건강과 능력에 따라 일의 시간을 선택할 수 있고, 일을 그만둘 수도 있고, 다시 배우거나 다른 분야로 이동할 수도 있는 사회. 그것이 평생현역보다 더 중요한 조건이라는 이야기다.

배움은 노년의 '새로운 역할'로 들어가는 입구


그렇다면 정년 이후 새로운 역할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신 교수는 그 출발점 가운데 하나로 배움을 꼽는다.

그가 대표적인 사례로 이야기한 사람은 1935년생 와카미야 마사코다. 은행에서 퇴직한 뒤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했고 80대에 프로그래밍을 독학해 고령자를 위한 게임 앱을 만들었다. 이후 국제무대에서 강연하고 일본의 디지털 정책에도 참여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활동을 줄여야 할 나이라고 생각하는 80대 이후가 오히려 그의 가장 창조적인 시기가 된 것이다.

신 교수 자신도 AI를 배우고 있다. 그는 시니어가 젊은 사람과 똑같은 속도로 기술을 익힐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더 중요한 것은 평생 축적한 경험과 새로운 기술을 결합하는 것이다.

"60대의 경력, 70대의 인간관계, 80대의 삶의 경험은 젊은 세대가 단기간에 가질 수 없는 자산입니다."

그래서 고령사회의 평생교육 역시 단순한 취미와 여가 프로그램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배움이 새로운 일과 사회참여, 창업과 세대 간 협력으로 이어져야 한다.

일본에는 회사와 완전한 은퇴 사이의 '중간지대'가 있다


오랫동안 일본과 한국을 오간 신 교수가 발견한 한일 간의 중요한 차이도 여기에 있다.

두 나라 모두 정년 이후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막막해하는 것은 비슷하다. 지금의 베이비붐 세대는 부모 세대와 전혀 다른 장수 시대를 처음 살아가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에는 회사와 완전한 은퇴 사이의 '중간지대'가 상대적으로 다양하다.

실버인재센터가 있고, NPO가 있고, 지역 봉사와 주민활동이 있다. 재취업할 수도 있고 취미를 매개로 새로운 커뮤니티에 들어갈 수도 있다.

회사에서 나오자마자 곧바로 ‘은퇴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기에게 맞는 역할을 찾아갈 수 있는 여러 징검다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신 교수는 한국에도 바로 이 선택지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말한다.

흥미롭게도 일본 시니어들의 '은퇴하지 않는 삶'을 취재하는 신 교수 자신도 그중 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대학에서는 정년을 맞았지만 그의 일은 오히려 더 다양해졌다. 일본의 시니어 일자리와 고령친화 비즈니스, 지역사회 통합돌봄, AI와 로봇이 고령자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취재하고, 한국과 일본의 기업·지자체·연구자와 현장을 연결한다.

과거 실패한 창업에도 AI를 활용해 다시 도전해 보고 싶다고 한다. 그가 정년을 앞둔 60~70대에게 권하는 것도 거창한 인생 2막의 설계가 아니다.

"작은 것부터 많이 해보십시오. 배우고, 여행하고, 봉사하고, 일해보고, 글도 써보고, 새로운 사람도 만나보십시오, 해보지 않고서는 무엇이 자기에게 맞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만난 91세 미용연구가의 말을 들려주었다.

"저에게 은퇴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인생이 왜 정년 이후부터 내리막길이어야 합니까. 저는 죽을 때까지 오르막길을 걷다가 죽을 겁니다"

신 교수 역시 그렇게 살고 싶다고 했다.

10년 뒤 무엇을 하고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궁금한 것을 찾아다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배우고, 무언가를 만들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은퇴하지 않는다는 것의 진짜 의미


인터뷰를 마치고 나니 처음의 질문을 조금 바꾸어야 할 것 같았다. '왜 일본인은 은퇴하지 않는가'가 아니라 '사람은 왜 사회와 연결을 놓지 않으려 하는가'로말이다.

일본의 거리에서 만난 일하는 노인들과 신미화 교수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것은 '몇 살까지 일하는가'라는 숫자가 아니었다.갈 곳이 있다는 것,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 배울 것이 있다는 것, 그리고 아직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어쩌면 우리가 은퇴라고 부르는 것은 직장을 떠나는 것이지, 사회에서 물러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신미화 교수는 일본의 노년을 설명하는 관찰자이면서 동시에 자기의 삶으로 그 질문에 답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대학이라는 조직을 떠난 뒤 그는 교수라는 명함 대신 취재자와 콘텐츠 제작자라는 새로운 역할을 만들었고,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또 다른 일을 시작하고 있다.

물론 모든 노인이 계속 일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쉬고 싶은 사람에게는 쉴 자유가 있어야 하고, 일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일할 기회가 있어야 한다. 배우고 싶은 사람에게는 배울 곳이,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은 사람에게는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결국 초고령사회에서 중요한 질문은 '몇 살까지 일하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정년 이후에도 어떻게 자기 삶의 역할을 선택할 수 있게 할 것인가'인지 모른다.

신 교수와의 인터뷰를 마치며 그가 전해준 91세 미용연구가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왜 정년 이후부터 인생이 내리막길이어야 합니까" . 일본의 ‘은퇴하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여정에서 내가 찾고 싶은 답도 어쩌면 바로 여기에 있는 듯하다. 정년은 역할이 끝나는 나이가 아니라 내 역할을 선택하기 시작하는 나이일 수 있다.

도쿄= 신현정 중부대 교수(교육학) 릿쿄대학 객원 교원

신현정 중부대 교수/릿쿄대학 객원교원이미지 확대보기
신현정 중부대 교수/릿쿄대학 객원교원



신현정 중부대 교수(교육학) 릿쿄대학 객원 교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