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주의 타파 명분 아래 사라진 독립 공간
민감한 상담·업무 협의까지 공개된 장소에서 진행
현장 의견 빠진 보여주기식 행정이라는 비판도
민감한 상담·업무 협의까지 공개된 장소에서 진행
현장 의견 빠진 보여주기식 행정이라는 비판도
이미지 확대보기면장만을 위한 독립된 공간을 없애 권위적인 조직문화를 개선하겠다는 취지는 그럴듯하다. 그러나 행정 공간은 단순히 문을 열어 놓는다고 해서 주민에게 더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다. 주민의 사생활을 보호하면서 고충을 듣고, 직원들과 중요한 현안을 논의하며, 외부 방문객을 응대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독립 공간도 필요하다.
사진 속 면사무소 내부에는 직원들의 업무용 책상과 각종 사무기기, 민원인 응접용 소파와 탁자가 한 공간에 뒤섞여 있다. 직원이 일하는 바로 옆에서 면담과 방문객 응대가 이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외형만 보면 벽과 문을 없앤 ‘열린 공간’이지만, 실제 이용자에게는 업무와 상담의 경계가 사라진 불편한 공간이 될 수 있다.
특히 주민이 면장을 찾아오는 이유는 단순한 인사나 일상적인 문의에만 머물지 않는다. 복지 지원이나 경제적 어려움, 가족 문제, 이웃 간 갈등, 각종 민원처럼 다른 사람에게 쉽게 공개하기 어려운 사연을 털어놓아야 할 때도 있다. 그런데 직원과 방문객의 시선이 닿고 대화 내용까지 들릴 수 있는 장소에서 주민이 자신의 고충을 솔직하게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이미지 확대보기‘소통을 위해 면장실을 없앴다’는 설명과 달리, 주민이 정작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꺼내지 못한다면 그것을 열린 행정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물리적인 문을 없앤 대신 주민의 마음에 더 높은 문턱을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직원들의 불편도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면장과 직원이 업무를 협의하는 과정에서는 인사와 복무, 민원 처리 방향, 지역 갈등, 각종 계약과 사업 추진 등 외부에 즉시 공개하기 어려운 내용이 오갈 수 있다. 모든 대화를 개방된 공간에서 진행할 수는 없다. 별도의 회의나 면담 장소가 충분하지 않다면 직원들은 목소리를 낮추거나 적절한 장소를 찾아 이동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오히려 업무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면장을 찾아온 방문객이 응접 공간에 머무는 동안 바로 옆 직원들은 전화 민원을 처리하고 서류를 검토해야 한다. 대화 소음과 사람들의 이동이 반복되면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고, 민원인의 시선에 업무 자료가 노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주민 편의를 내세운 공간 개편이 직원들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고 행정 서비스의 질까지 떨어뜨린다면 정책의 목적과 결과가 완전히 뒤바뀐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변화가 실제 이용자인 직원과 주민의 의견을 충분히 듣고 추진됐느냐는 점이다. 면장실을 없애는 결정은 상징성이 크고 홍보하기도 쉽다. 하지만 공간을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들의 불편을 외면한 채 ‘권위주의 해소’라는 명분만 강조한다면 보여주기식 행정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면장실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권위적인 행정이 되는 것도 아니며, 면장실을 없앤다고 소통이 저절로 강화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방의 유무가 아니라 면장이 얼마나 자주 주민을 만나고,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책임 있게 문제를 해결하느냐다. 문 하나를 철거하는 일보다 주민의 말에 귀 기울이는 행정 자세를 만드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
행정기관의 공간은 공무원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한 장소여서는 안 된다. 동시에 명분을 보여주기 위해 직원의 업무 여건과 주민의 사생활을 희생하는 공간이 돼서도 안 된다. 개방성과 소통 못지않게 상담의 독립성, 업무의 집중도, 개인정보 보호가 균형 있게 보장돼야 한다.
이미지 확대보기현재의 구조가 직원과 주민 모두에게 불편을 주고 있다면 행정기관은 이를 고집할 것이 아니라 즉시 실태를 살펴야 한다. 직원과 주민을 대상으로 의견을 수렴하고, 독립된 상담실이나 소규모 회의 공간을 마련하는 등 현실적인 보완책을 찾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면장실을 다시 설치하되 주민 상담과 업무 협의를 위한 공용 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
혁신은 기존 공간을 무조건 없애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 현장에서 겪는 불편을 찾아 해결하고, 행정 서비스를 더 안전하고 편리하게 만드는 것이 진짜 혁신이다. 직원도 불편하고 주민도 불편한 ‘면장실 없는 면사무소’라면 이제는 누구를 위한 변화였는지 분명하게 답해야 한다.
조성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sc913@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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