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옥 총예술감독, 안나경 연출·대본
이미지 확대보기이번 기념 공연은 새롭게 계승·재해석되어 무용사와 공연 예술적 측면에서 소중한 증거가 되었다. 이날 공연은 김백봉의 예술적 정체성과 독창적 춤 세계를 보여주었으며, 서울시전문예술단체 김백봉춤보전회(회장 안나경) 주최, 김백봉탄생 100주년 기념사업회(조직위원장 유옥재) 주관, 김백봉부채춤보존회·(사)김백봉춤연구회·(사)정은혜 민족무용단·춤이음무용단·KNU Dance Company 협찬, 서울특별시·서울문화재단·경희대·충남대·강원대 후원으로 이루어졌다. 공연은 전문 스태프가 결합하여 김백봉 신무용의 역사적 유산을 오늘의 공연 언어로 재구성하는 제작 체계를 소지했다.
김백봉의 예술적 업적은 전통춤의 원형을 보존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그것을 현대적 무대언어로 확장하여 한국춤의 미학적 지평을 넓힌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녀는 철저한 기본기와 정확한 신체 훈련을 바탕으로 동작 하나하나에 호흡과 시선, 내면의 의미를 부여했으며, ‘부채춤’과 ‘화관무’를 비롯한 작품을 통해 한국적 선과 리듬, 군무의 조형미를 세계적 무대에 각인시켰다. 그녀는 춤을 단순한 동작의 재현이 아니라 삶과 시대, 인간의 정서가 응축된 하나의 서사로 인식함으로써 전통과 창작, 민족성과 현대성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했다.
김백봉의 위대함은 작품의 성취만으로 완결되지 않는다. 그는 제자들에게 춤의 기술보다 먼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서로를 바라보고 교감하며 하나의 호흡으로 무대를 완성하는 태도를 가르쳤고, 자신의 예술을 독점하기보다 수많은 제자와 후학에게 아낌없이 나누며 한국춤의 미래 자산을 배양했다. 엄격한 스승으로서 완벽을 요구하면서도 제자의 가능성을 먼저 발견하고 격려했던 인간적 면모, 그리고 평생의 예술을 다음 세대에 온전히 전하고자 했던 겸손과 책임감은 그의 춤이 개인의 예술을 넘어 하나의 문화적 유산으로 자리 잡게 한 정신적 토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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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1막. 프롤로그는 춤의 우주인 은하수를 설정하고 해설은 샤막의 영상을 입은 채 플랫폼을 출발한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시작된 음악과 조명이 시간과 기억을 실은 기차처럼 관객을 춤의 우주로 이끈다. 서로 다른 기억과 호흡을 품은 움직임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합쳐지며 김백봉의 예술세계로 향하는 시간여행이 시작된다. 별빛과 영상이 어우러진 우주적 공간에서 은하수는 시간과 기억을 잇는 생명의 길이 되어 김백봉의 춤이 지닌 영원성을 환기한다. 소녀들의 움직임과 별들의 궤적이 하나로 포개지며 춤의 탄생을 우주의 생성과 소멸이라는 거대한 질서 속에 펼쳐낸다.
‘선의 유동’(초연 1958년, 책임지도·재안무 안병주, 지도 임성옥)은 겨울의 고요한 대지 위로 생명의 기운이 움트듯 움직임이 확장되며 자연의 순환과 인간의 탄생을 형상화한다. 얼음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계절의 변화는 몸의 유동성과 결합하여 생명이 지속하는 근원적 리듬을 보여준다. '장고춤Ⅰ'(타의예, 초연 1954년, 책임지도·재안무 안병주, 지도 안귀호)에서 깊고 묵직한 장고의 울림이 잠든 대지를 깨우고, 춤꾼들의 몸짓은 새로운 생명을 맞이하는 자연의 힘으로 확장된다. 김백봉의 장고춤은 장단과 춤사위의 긴밀한 결합으로 생명의 약동과 한국적 흥의 정서를 역동적으로 드러낸다.
'장고춤Ⅱ'(여인화사, 초연 1954년, 책임지도·재안무 임성옥)는 신선한 새벽 기운에서 여인들은 자연의 생명력을 몸으로 옮겨온다. 장고의 리듬과 유연한 군무는 봄의 정취와 여성적 생명력을 어우르며 풍요의 축제가 된다. '김백봉화관무'(초연 1947년, 책임지도·재안무 안병주, 지도 안귀호)는 깊은 기억의 공간에서 움직임이 되살아나며 그녀의 대표작이 현재의 무대에 다시 꽃핀다. 정제된 선과 화려한 군무는 과거와 현재, 개인과 공동체를 이음하며 한국춤의 미학적 유산을 환기한다. 해설자는 지나온 시간과 기억의 흔적을 되짚는다. 과거 유산이 현재의 몸을 통해 재생 과정으로 이어진다.
2막. 춤추는 생명유산은 축제다. ‘김백봉 무당춤_광란의 제단’(초연 1959년, 책임지도·재안무 김경회, 지도 인치서·송연교), 제의의 시간이 열리면, 무용수들의 호흡과 발걸음은 공동체의 기원과 축복을 담은 거대한 생명력으로 확장된다. 하늘과 땅, 인간과 자연이 하나의 리듬으로 결합한 춤은 축제의 절정에서 서로의 행복을 장엄하게 펼쳐낸다. ‘김백봉 산조_청명심수’(초연 1974년, 책임지도·재안무 정은혜, 지도 김정련·이금용·박정한)는 고요한 공간 속에서 한 인간의 내면적 번민과 성찰이 깊어지며 춤은 삶을 되돌아보고 마음을 정화하는 수행의 과정으로 전개된다. 산조와 기도의 정서가 어우러진 움직임은 청명한 마음에 이르는 길을 형상화하며 정은혜의 춤으로 김백봉 춤 정신을 드러낸다.
‘찬가’는 휘모리장단을 탄 해설자의 목소리와 달빛 아래의 서정으로 김백봉의 유년 시절과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불러내며 춤의 근원을 삶의 기억 속에서 찿는다. 개인의 추억은 한국춤의 정신적 뿌리와 세대 간 전승의 의미로 확장된다. '김백봉부채춤'(초연 1954년, 책임지도·재안무 안병주)은 부채가 꽃처럼 피어나고 우주가 열리듯 무대는 화려한 색과 선의 향연으로 변하며 아름다움이 절정에 이른다. 안병주(경희대 무용과 교수)가 직접 출연하여 모친 김백봉 선생에게 받은 사랑과 삶의 기쁨을 품은 춤은 부채의 개폐와 군무의 조화를 통해 생명의 순환과 새로운 시작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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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확대보기김백봉의 춤은 한 시대의 명작에 머무르지 않고 세대를 거듭하며 새롭게 살아나는 ‘현재형의 전통’이다. 그녀의 춤에는 아름다운 몸짓만이 아니라 고난을 견디며 예술을 일구어온 한 인간의 삶과 한국춤을 세계의 보편적 언어로 승화시키고자 했던 치열한 장인정신이 함께 흐른다. 그러므로 김백봉의 예술적 유산을 계승한다는 것은 그의 작품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통을 존중하되 시대와 끊임없이 대화하고, 사람을 품으며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는 그녀의 정신까지 이어가는 것이며, 그 지점에서 김백봉은 한국무용사의 한 인물이며 한국 공연예술사의 문화유산이 된다.
3막. 춤의 사람은 ‘해후’한다. 진양조의 깊은 울림 속에서 무대는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고 스승과 제자, 과거와 현재가 다시 만나는 의식의 공간으로 변모한다. 김백봉의 춤과 제자들의 몸이 한데 포개지면서 세대를 넘어 이어지는 예술의 생명과 스승의 정신이 하나의 춤으로 승화된다. 시간여행을 마친 기차가 다시 플랫폼으로 돌아오지만, 김백봉의 춤은 끝나지 않고 새로운 세대의 몸에서 다시 시작될 가능성으로 남는다. 시간열차의 출발과 귀환이 순환을 이루는 가운데 공연은 춤을 단순한 과거의 유산이 아닌 오늘과 미래를 이어가는 살아 있는 예술로 완결한다.
이번 공연은 우주와 자연, 기억과 생명, 스승과 제자의 시간을 하나의 거대한 춤의 서사로 조직한 헌정의 무대였다. ‘은하수’에서 출발한 시간여행은 별과 계절, 대지와 인간의 움직임을 거쳐 ‘선의 유동’에서 '김백봉부채춤'으로 이어지며 김백봉 춤의 미학적 핵심인 선·리듬·호흡·군무·제의성을 입체적으로 드러내었다. 장고의 울림과 부채의 곡선, 절제된 선과 역동적인 군무는 생명의 탄생과 순환, 공동체의 염원과 인간 내면의 수행을 춤으로 형상화하여, 김백봉의 예술이 왜 한 시대의 유산을 넘어 오늘에도 살아 움직이는 문화적 기억인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마지막 장(場)의 ‘해후’와 ‘귀환’은 스승과 제자, 과거와 현재가 하나의 몸으로 만나는 장면으로 수렴되면서, 춤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몸에서 다시 시작된다는 김백봉 예술의 계승 철학을 선명하게 각인하였다. 결국 이 공연은 김백봉 선생의 상징·제의·원형을 담은 명작 나열의 기념 무대가 아니라, 선생의 춤에 깃든 한민족의 끈질긴 생명력과 예술 정신을 오늘의 무대언어로 되살려 전통을 기억이 아닌 현재형의 창조적 유산으로 전환한 ‘신무용의 르네상스’가 되었다. 이 공연에 참여한 모든 예술가와 관객들은 새로운 문화 형성의 주최자로서 새로운 원년을 맞이했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사진=김백봉춤보전회©옥상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