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약 4년 전에 미국과 중국이 무역 전쟁을 시작하면서 세계화의 흐름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두 나라가 서로 관세 장벽을 높이면서 '디커플링'이 가속화됐다. 지난 2020년 봄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이 시작됐고, 각국은 바이러스 유입을 막기 위한 봉쇄에 나섰다.
글로벌 경제의 '탈세계화' 또는 '반세계화' 흐름은 신흥국뿐 아니라 선진국을 강타하고 있다. 선진국도 지난 30여 년 동안 잊고 살았던 '궁핍의 시대'에 다시 직면했다고 전문가들이 지적했다.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에서 물가가 천정부지로 올랐고, 필요한 상품을 사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미국에서 '분유 대란'이 발생해 신생아 부모들이 패닉에 빠진 게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미국의 분유 대란 사태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공급 부족 상태에서 미국 최대 분유 제조사인 애보트 래버러토리스의 미시간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이 박테리아에 오염됐을 가능성이 제기돼 이 공장을 폐쇄하면서 더 악화했다.
신흥국은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여파로 극심한 식량난과 에너지난에 직면했다. 영국의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 최신 호는 "코로나19 대유행, 기후 변화 등으로 약화된 글로벌 식량 공급 시스템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결정타를 날렸다"면서 "세계는 지금 대규모 기아 위기로 넘어가는 티핑 포인트에 이르렀다"고 보도했다.
우크라이나의 곡물과 식용유 수출은 사실상 중단됐다. 러시아의 식량 수출에도 비상이 걸렸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세계 곡물 수출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밀 28%, 보리 29%, 옥수수 15%, 해바라기유 75%에 달한다. 밀 가격은 올해 들어 53%가 뛰었고, 세계 2위 밀 수출국인 인도가 밀 수출 중단 결정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식량 위기로 인해 현재 지구촌에서 2억5000만 명 가량이 기근의 위기에 직면했고, 수억 명이 빈곤층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세계 최대 밀 수입국인 이집트의 모하메드 마이트 재무장관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초래한 식량 위기 때문에 전 세계에서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수천만 명이 기아에 허덕일 수 있고, 식량 위기가 몇 년간 지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주요 7개국(G7)은 지난주 유엔과 함께 '식량 안보를 위한 세계동맹(Global Alliance for Food Security)'이라는 기구를 발족시켰다. 이 기구는 가난한 국가들이 기아를 피할 수 있도록 식량과 비료, 에너지, 금융을 지원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로베르트 하벡 독일 부총리 겸 경제 기후 보호부 장관은 23일(현지시간)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 연설에서 "우리는 현재 4개의 위기에 동시에 직면해 있다"면서 "인플레이션 위기, 에너지 위기, 식량 위기, 기후 위기가 그것이고, 이 4개의 위기가 서로 긴밀하게 연계돼 있다"고 말했다.
다보스포럼은 30년간 이어진 세계화 시대가 막을 내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포럼에서 탈 세계화의 흐름 속에 지역과 국가에 기반한 새로운 형태의 공급망이 등장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