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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중국, '물량 공세'로 중남미 영향력 확대…미·서방 무관심 틈새 공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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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중국, '물량 공세'로 중남미 영향력 확대…미·서방 무관심 틈새 공략

미국과 서방 국가들이 라틴 아메리카에 대해 무관심한 동안에 중국이 잠식하며 좌파 물결이 일렁이고 있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미국과 서방 국가들이 라틴 아메리카에 대해 무관심한 동안에 중국이 잠식하며 좌파 물결이 일렁이고 있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
서방이 라틴 아메리카를 대체로 무시하거나 자신들의 가치나 이념을 일방적으로 따르도록 강요하는 동안 중국은 상대적으로 서방에 비해 조건 없이 이 지역 통치자들에게 엄청난 특혜를 제공하면서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만약 미국과 유럽이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중남미에서 결국 중요한 시기에 우방을 잃게 될 수 있다.
미중 갈등이 증폭되면서 중남미 문제는 워싱턴ㆍ서방에서 주요 의제가 되고 있다. UN에서 펼쳐지는 표 대결에서 중남미는 중립 내지는 친서방 노선을 지지하지 않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서방은 중국과 러시아라는 권위주의 정권과의 뜨거운 갈등 구조에서 라틴 아메리카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최근 이 지역의 좌익 선거 승리 물결과 함께 이런 흐름을 방치할 경우 자유주의 진영에게는 또 다른 지정학적 부담이 될 수 있다.

라틴 아메리카의 정치적 격변은 서방의 효과적인 참여를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 지역은 오랫동안 부패, 불평등, 신뢰의 위기에 시달려왔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코로나는 이런 흐름을 방해하고 경제적 불안과 정치적 불안정을 촉발하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의 전통적인 정당 체제는 이제 붕괴되었고, 포퓰리즘과 양극화가 다시 확산되고 있다.

남미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6개국 중 5개국은 쿠바나 베네수엘라 정권과는 매우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좌파 정부가 이끌고 있다. 페루의 지도자 페드로 카스티요는 자칭 마르크스주의자다. 한때 중남미에서 자유시장 정책 보루였던 칠레에서는 좌파 활동가 가브리엘 보릭(Gabriel Boric)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다.
오랫동안 라틴 아메리카 정치의 전조로 여겨져 온 콜롬비아는 좌익 게릴라 출신 구스타보 페트로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그리고 이 지역에서 가장 인구가 많고 경제 규모가 가장 큰 브라질은 10월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좌익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서구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지난 3월 유엔 총회에서 중남미 5개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규탄을 거부했다. 볼리비아, 쿠바,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베네수엘라가 참여했다.

이외 많은 라틴 아메리카 정부들도 러시아에 제재를 가하는 데 서방과 합류하는 것을 거부했다. 이것은 이 지역이 비동맹의 냉전 스타일을 되풀이할 것이라는 추측을 부채질하고 있다.

더욱이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과 루이스 아르체 볼리비아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라틴 아메리카 지도자들은 쿠바, 베네수엘라, 니카라과가 제외되면 지난달 열린 미주정상회담을 보이콧 하겠다고 약속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큰 당혹감을 느꼈고 중남미의 변화가 예상 밖으로 심각한 상태라는 것을 목도했다. 더욱이 볼리비아,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온두라스는 국가나 정부의 수반이 아닌 장관을 보냈다. 그것은 재앙이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미국이나 서방의 영향력이 퇴보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였다.

중남미 지도자들은 바이든에게 전임자 트럼프에 대한 적대감은 보이지 않았지만 미국이 정권 교체 후 시도한 지역 참여 정책이 효과가 없었음을 보여준다.

유럽 역시 마찬가지다. 아직 비준되지 않은 중남미 경제협력체 메르코수르 국가들과의 자유무역협정에 “원칙적으로” 동의한 이후 변화가 별로 없었다.

효과적인 코로나 외교를 추구하는 데 실패했고, 러시아 에너지에서 벗어나야 하는 시급한 상황을 포함하여 우크라이나 전쟁, 내부 초인플레이션 극복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어 중남미 국가와의 협력은 후순위로 밀려나 있다.

한편, 중국은 중남미 교두보를 계속 확장하고 있다. 2002년부터 2021년까지 중국과 이 지역의 총 교역액은 180억 달러에서 거의 4490억 달러로 급증했다. 이 속도라면 2035년까지 7000억 달러를 초과할 수 있다.

이러한 교역은 부분적으로 칠레, 코스타리카, 페루와의 자유 무역 협정에 의해 추진되었다. 중국은 또한 에콰도르와의 거래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일대일로 이니셔티브에 21개의 라틴 아메리카 국가가 참여하고 있다.

중국은 조건 없이 무역과 투자의 모든 특혜를 제공함으로써 이러한 성공을 달성했다.

미국은 라틴 아메리카에 대해 많은 규칙과 조건을 전제로 제시하는 반면에 중국은 요구 조건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중남미 국가들의 자존심을 살려준다. 향후 종종 숨겨진 조항이 밝혀질 때쯤이면 중국은 이 지역에서 확고한 발판을 마련한 상태가 된다.

서구는 냉전 시대보다 더 중남미를 잃을 여유가 없다. 연료 및 식품의 주요 생산지인 이 지역은 공급망의 주요한 거점이기 때문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규칙 기반 국제 질서를 활성화하려면 서방이 중남미 지역에서 파트너 및 동맹국을 넓혀야 한다.

서방이 중남미에서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시간, 헌신,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미국과 유럽은 기후변화, 공중보건, 이민 등 상호간 관심 분야에서 협력을 모색해야 한다.

좌파 성향 정부인 스페인이 차기 EU 이사회 의장직을 수임한 것은 중남미 와의 진척을 시작할 수 있는 중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미국과 서방의 중남미와의 관계 회복은 중국ㆍ러시아라는 권위주의 정권과의 경쟁에 놓여 있다. 양극화된 지정학적 경쟁에서 중남미를 자유주의 진영에 가담하도록 견인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지금 냉전 이후 가장 힘겨운 상황에 놓여 있다. 잦은 정권교체는 자유주의 진영의 세계 대전략 수립을 어렵게 한 반면 권위주의 정권들은 장기 집권을 통해 대전략을 꾸준히 추진해 당장에는 과거 열위를 뒤집어 가는 것으로 보여진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