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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칩4 동맹’ 참여 딜레마…한국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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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칩4 동맹’ 참여 딜레마…한국의 선택은?

美 8월 말까지 참여 여부 결정 요청에, 中 “상업적 자살행위” 비판
글로벌 반도체 팹리스 고객 양국에 몰려 있어 어느 한쪽 선택 못 해
정부, 여론 수렴 통해 투자 촉진‧해외 시장 진출에 초점 맞춰 결정

삼성전자 직원들이 지난 25일 경기도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V1라인(EUV 전용)에서 개최한 차세대 트랜지스터 GAA(Gate All Around) 기술을 적용한 3나노 파운드리 제품 출하식에서 웨이퍼와 첫 양산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삼성전자 직원들이 지난 25일 경기도 삼성전자 화성캠퍼스 V1라인(EUV 전용)에서 개최한 차세대 트랜지스터 GAA(Gate All Around) 기술을 적용한 3나노 파운드리 제품 출하식에서 웨이퍼와 첫 양산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산업을 막기 위해 주도하고 있는 반도체 공급망 동맹 ‘칩4(CHIP4)’ 참여 여부를 놓고 한국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국내 반도체 업계는 양국이 자사의 최대 수출 시장이라는 점에서 어느 쪽에 치우치지 않는 ‘원만한 중간자’로 자리매김하길 원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한국을 비롯해 대만, 일본이 참여 여부를 요청하면서 관계가 꼬이고 있다.
특히, 존 바이든 미국 정부는 이들 국가 정부에 8월말까지 결정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고, 이에 대해 중국 정부는 “상업적 자살 행위”라는 과격한 표현까지 써가며 한국을 비판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26일 글로벌이코노믹과의 전화 통화에서 “(칩4 가입) 문제에 대해 정부와 회사 고위층이 논의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한국이 이번 미‧중 반도체 분쟁의 키 플레이어(Key Player)가 된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어떤 결정을 하건 한쪽 시장을 확실히 얻겠지만 다른 시장은 타격이 불가피 하기 때문에 걱정이 많은 게 사실이다”라며, “우리를 포함한 여러 기업이 정부에 다양한 의견을 개진한 것으로 알고 있고, 의견을 청취한 정부도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고 들었다. 최대한 국내 기업의 사정을 반영해 줄 것으로 희망한다”라고 전했다.

국내 반도체 산업 사정상 미국과 중국 어느 쪽에도 선뜻 편을 들기 곤란한 상황이다. 한국은 메모리반도체 부문 세계 1, 2위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통해 반도체 일관생산공정을 모두 보유한 ‘IDM(통합 설계 및 제조업체)’ 부문에서는 높은 경쟁력을 갖고 있으나, 개발과 설계만 한 뒤 제품 생산은 아웃소싱하는 ‘팹리스(Fabless)’ 부문은 매우 취약하다. 시장조사기관 옴디아(OMDIA)에 따르면, 한국의 글로벌 팹리스 시장 점유율은 1.5%로, 미국의 58%, 대만 20.7%에 비해 상당히 작고, 16.7%를 점유한 중국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존재감이 희박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팹리스 기업들로부터 주문을 받아 반도체를 생산하는 파운드리(Foundry) 사업을 키우고 있는데, 파운드리 생산을 책임져 줄 메이저 팹리스 고객 기업들이 미국과 중국에 포진해 있다.

한‧중 교역 구조가 바뀌어 반도체와 배터리, 디스플레이 등 정보통신기술(ICT) 완제품 생산에 들어가는 중간재의 대중 수입이 증가하면서 대중 무역적자가 본격화한 것도 칩4 참여를 주저하는 또 다른 원인이 되고 있다. 즉, 우리 수출의 중국 의존도가 높아진다는 것인데, 칩4로 인해 중국과의 교역 관계가 악화하여 중간재 수입에 제한이 따를 경우 국내 생산활동이 중단될 수 있다는 최악의 상황에 몰릴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까지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중국 기업들이 한국산 반도체를 많이 쓰고 있어 반도체 공급이 끊기면 엄청난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미국의 견제로 반도체 산업을 키우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국은 자국에서 공장을 운용하고 있는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이탈을 두려워 하고 있다. 현재의 거센 비판에는 이런 불안감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정부는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 결정한 뒤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일단 정부는 미국의 제안에 호응하되. 참여 요건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칩4의 성격을 명백히 규정함으로써 중국의 반발을 무마하는 자세로 최대한 실리를 얻겠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 외교부 당국자는 지난 25일 기자들과 만나 미국의 칩4 참여에 대해 “투자 촉진, 우리의 해외 시장 진출 측면에 초점을 맞춰 결정하겠다”면서, “공급망 교란이 가져오는 여파가 크기 때문에 공급망 안정을 위해 어떤 게 최선인지를 다양하게 검토하고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중국을 의식해 칩4가 가입국가 만의 이익이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함께하는 ‘동맹’으로 해석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조태용 주미 한국대사도 정부의 방침에 부응하는 발언을 했다. 조 대사는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주재 한국 특파원들과 간담회에서 “한국이 호응하되 이를 중국 등 특정국 견제 보다는 반도체 중심 국가 간 협의체로 운영하자”는 뜻을 미국 측에 전달했다고 전했다.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