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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유럽 '이지 머니' 시대 종료…글로벌 금융시장 재편 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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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유럽 '이지 머니' 시대 종료…글로벌 금융시장 재편 가속

수익률 좇아 자금 이동…은행예금 9주 연속 감소
중소은행 유동성 위기감…연준 5월 회의가 분수령

실리콘밸리은행 파산과 UBS의 크레디트스위스 인수를 계기로 이지 머니 시대가 끝났다는 평가다. 고객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있는 실리콘밸리은행 본사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실리콘밸리은행 파산과 UBS의 크레디트스위스 인수를 계기로 이지 머니 시대가 끝났다는 평가다. 고객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에 있는 실리콘밸리은행 본사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로이터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과 스위스 UBS의 크레디트스위스(CS) 인수를 계기로 미국과 유럽 등의 주요 국가에서 ‘이지 머니(easy money)’ 시대가 완전히 끝났다는 게 월가의 진단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유럽중앙은행(ECB)은 글로벌 금융 혼란 속에서도 기준금리를 각각 0.25%, 0.5% 포인트 올려 물가 통제를 위한 긴축 통화 정책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고한 의지를 드러냈다.
지난달 10일 SVB 파산 이후 약 3주간 계속된 글로벌 금융 혼란 사태는 이제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4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하지만 금융 혼란 사태가 절대로 마무리된 것이 아니고, 그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지적했다.

특히 이지 머니 시대 종결에 따른 금융 시장의 재편 작업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연준을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은 금융 시장 혼란과 고물가 사이에서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

이지 머니는 자금 공급이 수요에원활해 자금 조달이 쉬운 상태를 뜻한다. 중앙은행이 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금리를 인하하고, 국채 또는 유가증권의 매입을 통해 시장에 유동성을 확대하면서 지급준비율을 내려 싼 자금을 공급했었다.

그러나 2021년 말부터 연준, ECB, 호주 중앙은행 등 주요 선진국들이 앞다퉈 금리를 올리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선진국들이 2021년 말 이후 현재까지 올린 금리 인상 폭의 합계가 3300bp(1bp는 0.01%)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SVB 파산 이후 은행권은 여전히 태풍의 눈으로 남아있다. 미국의 일부 지역 은행이나 중소 은행에서 대형 은행이나 머니마켓펀드(MMF)로 줄지어 이동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중소 은행의 자금 유출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
연준이 지난달 31일 발표한 미국 상업은행 대차대조표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22일 기준 중소 은행의 예금 잔액은 전주보다 58억 달러(약 7조5980억원) 증가한 5조3860억 달러(약 7055조6600억원)로 집계됐다.

대형 은행과 미국 외 은행을 포함한 전체로 보면 3월 16~22일 주간 예금 잔액은 전주 대비 0.7% 줄어 9주 연속 감소세를 기록했다.

은행에서 예금이 줄어드는 가장 큰 이유는 수익률이 높은 금융상품으로 자금이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머니마켓펀드(MMF)이다. 미국투자신탁협회(ICI)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기준 MMF 잔액은 5조1980억 달러(약 6809조3800억원)로 3주 연속 상승했다.

뱅크레이트닷컴과 크레인 등에 따르면 현재 미국 은행 예금 계좌의 평균 이자율은 0.2%에 불과하지만, MMF의 수익률은 연 4%를 웃돌고 있다.

MMF에 자금이 몰리면서 미국 중소 은행에 여전히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예금이 MMF로 유출되면 유동성 위기가 불거진다. 예금주가 떠나지 않게 하려면 은행은 이자율을 올려야 하고, 그렇게 하면 자금 조달 비용이 커져 은행의 수익성이 낮아진다.

중소 은행이 늘어난 자금 조달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무리한 투자와 대출에 손을 대면 부실화 위험이 커진다. 중소 은행의 상업용 부동산 담보 대출 문제도 여전히 뇌관으로 남아있다.

미국 상업용 부동산 담보 대출의 80%에 가까운 2조3000억 달러중소 은행 대출이다.

로이터는 시애틀, 새너제이 등 미국 서부 일부 대도시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고 있어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캐피털이코노믹스는 미국 상업용 부동산(CRE) 가격이 지난해 중반에 비해 4~5%가량 하락했고, 앞으로 18~20%가량 추가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로이터는 “연준이 금융 혼란의 확산을 조기에 차단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판단하고 있다”면서 “연준은 이제 추가적인 긴축 통화 정책이 경제 전반에 미칠 충격에 다시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전했다. 로이터는 “오는 5월 2, 3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가 미국의 경제 진로를 결정하는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