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발명품은 전자 회사 샤프에 100만 달러에 팔렸다. 현재 그의 재산은 123억 달러(16조 2100억 원)로 추정된다. 그는 UC 버클리를 졸업한 후 소프트뱅크를 설립했다.
오늘날 이 회사는 로봇 공학, 인공위성, 인공지능, 컴퓨터를 이용한 인체 기능 향상 등 거의 모든 주요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그의 성장은 신화가 됐다. 신화에는 항상 알려지지 않은 뒷얘기가 있기 마련이다. 여기 당신이 미처 몰랐던 손정의에 관한 9가지 비밀을 소개한다.
1. 그는 일본 국적을 가진 한국인 3세다
손정의는 1957년 일본 규슈 섬의 도스에서 한국인 이민자 후손으로 태어났다.
소프트뱅크의 최고경영자는 네 형제 중 둘째였다. 그들의 아버지는 어업, 농장, 식당, 그리고 파친코 게임장에서 일했다. 한국 이민자들에 대한 만연한 차별로 인해 그의 가족은 일본인 성(야스모토)을 가져야 했다.
그런데도 차별은 그치지 않았다. 자서전에 따르면 손정의는 초등학교시절 일본인 반 친구들에게 돌로 얻어맞았다. 한국인이라는 이유에서다.
2. 미국 유학을 조언한 맥도날드 일본 창업자 덴 후지타
10대 시절 그는 당시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기업가 중 한 명을 만나고 싶어 했다. 맥도날드 재팬의 설립자인 덴 후지타씨다.
하지만 이 부유한 기업가가 10대 소년을 만나줄 리 없었다. 그런데도 어린 손정의는 후지타의 비서에게 줄기차게 전화를 걸었다. 돌아온 건 짧은 문장의 거절 의사와 비싼 전화 요금 청구서였다.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직접 도쿄로 날아가 무작정 후지타의 사무실을 찾아갔다. 마침내 그를 만났다. 손정의는 후지타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나를 바라볼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당신은 그저 하던 일을 하세요. 나는 3분 동안 당신을 쳐다보기만 하겠습니다.”
후지타는 배짱 좋은 소년 손정의와 15분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소년은 앞으로 어떤 사업을 해야 하느냐고 그에게 물었다. 후지타는 "현재 잘나가는 사업은 쳐다보지도 말라"고 조언해주었다. 미래 산업에 관심을 가져라. 대사업가의 한 마디 충고였다. 그것은 바로 컴퓨터 산업이었다.
3. 16살에 공부를 위해 샌프란시스코로 떠났다
그는 16살 때 가족들에게 해외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어머니는 울었다.
손정의의 어머니는 “왜 가족을 떠나 미국으로 가려는 거냐? 그 나라는 야만인들의 무리가 사는 곳이다”고 아들을 만류했다.
"어머니는 정말 슬퍼했다. 아버지는 나를 알기 때문에 몇 주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아버지는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만약 가족들이 허락을 하지 않았더라면 결국 나는 도망을 쳤을 것이다."
손정의는 오클랜드로 날아가 국제 학생들이 영어를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는 홀리네임즈 칼리지에 등록했다.
그는 고등학교 수업을 듣기 위해 처음 몇 달 동안 영어를 익혀야만 했다. 손정의는 9월 세라몬테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여기서 그는 대학 준비 시험을 바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하며 교과서에 있는 모든 것을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우겼다. 결국 2주 만에 고등학교 과정을 모두 끝냈다.
손정의는 버클리에 있는 캘리포니아 대학에 들어가 컴퓨터 과학과 경제학을 공부했다.
4. 그는 다국어 번역기를 디자인해 100만 달러에 팔았다
컴퓨터에 중독된 19살 대학생은 UC 버클리의 몇몇 교수들의 도움을 받아 다국어 번역기 장치를 디자인했다.
그는 특허를 신청했고 샤프에 이 특허를 팔아서 거의 100만 달러를 벌었다. 이 시절 손정의의 ‘발명 아이디어 노트’에는 250개의 발명품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손정의는 “그것이 전부가 아었다. 버클리에 있을 때 컴퓨터 게임 프로젝트도 시도했다"고 밝혔다.
일본에서 가져온 게임기 소프트웨어를 개조해 식당, 칵테일 라운지, 기숙사, 카페테리아 등에 설치했다. 그것으로 손정의는 100만 달러를 추가로 벌었다.

5. 미국에서 사업가로 출발할까 고려
그는 미국의 기업가적인 분위기를 좋아했다. 그는 미국이 일본에 비해 기업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적다고 믿었다. 게다가 그는 일본 은행들이 훨씬 보수적이어서 그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본 특유의 문화 때문에 최고의 직원들을 영입하는 것도 어려울 것이라고 보았다.
"일본은 평생 고용 국가이기 때문에 젊은 인재들이 대기업이나 정부를 위해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경제학과 컴퓨터 과학 졸업생은 매우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손정의는 "아무런 증거나 근거도 없었지만, 나는 나 자신을 믿었다. 언젠가 매우 큰 회사, 세계적인 사업, 그리고 매우 성공적인 회사를 갖게 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고 젊은 시절을 회고했다.
"그렇게 되려면 기업의 본부를 일본에 두는 쪽이 유리하다."
본사가 일본에 있으면 직원들의 충성도를 유지하는 데 용이하다고 보았다. 그는 충성심이 강할수록 그들이 더 오래 한 자리에 머물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의 창의력이 미국인들에 비해 다소 부족할 수 있지만, 노력하면 따라잡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6. 일본으로 돌아와 소프트뱅크 출범: 그는 자신의 사업이 독특하기를 원했다
그는 40개의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아내의 아버지가 의사였고 병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병원 체인을 세우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고안해냈다.
하지만 1년 반 동안이나 그는 단 한 푼의 소득도 없이 사업 계획을 짜고 자료를 조사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그저 생각하고, 생각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공부하는 데 모든 시간을 보냈다. 나는 하루의 대부분을 도서관과 서점에서 지냈다. 책을 샀고, 앞으로 50년 동안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준비하기 위해 모든 종류의 자료를 읽었다."
그는 또 어떤 아이디어를 추구해야 할지 결정하기 위해 약 25개의 성공 척도를 사업 목표에 대입했다. 그가 고려한 한 가지 요소는 그가 다음 50년 동안 특정 사업과 사랑에 빠져야 한다는 것이다.
소프트뱅크는 소프트웨어 및 컴퓨터 잡지 출판사로 출발했다. 1980년대 후반 손정의는 "유선 전화 사용자들이 가장 저렴한 요금으로 사업자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일본의 오랜 전화 서비스 독점을 무너뜨렸다.
7. 2000년대 초 닷컴 붕괴 동안 700억 달러를 잃었다
CEO 손정의는 1994년 소프트뱅크를 상장하여 회사의 가치를 미화 30억 달러로 평가했다. 5년 후 손정의는 닷컴 버블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 중 한 명으로 선정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의 순자산은 100억 달러에 달했고 단 3일이지만 한 때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됐다.
그러나 영광은 봄날처럼 짧았다. 닷컴 버블이 붕괴되었을 때, 손정의는 역사상 가장 높은 재정적 손실인 700억 달러를 날렸다.
인사이더에 따르면 2004년까지 소프트뱅크의 주가는 최고점보다 무려 98%나 하락했다.
8. 소프트뱅크의 높은 연봉을 받지 않는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소프트뱅크의 최고 경영진 중 6명은 2018년에 총 8300만 달러의 보수를 받았지만 CEO 손정의의 급여는 약 210만 달러 늘어났을 뿐이다.
임원 검색 회사의 노리코 와타나베는 블룸버그에 "일본의 임원 급여 범위가 증가했지만 수십억 엔의 보상은 여전히 소수의 글로벌 기업에 불과했다. 그런 가운데도 손정의는 예외였다"고 말했다.
9. 빌 게이츠, 래리 엘리슨, 루퍼트 머독과의 개인적인 관계
빌 게이츠는 도쿄를 방문할 때마다 시오도메에 있는 손 회장의 26층짜리 사무실을 첫 방문지로 삼는다. 엘리슨은 스티브 잡스를 만났던 실리콘밸리 자택으로 손정의를 초대했다.
부자들은 부자들끼리 통한다. 더구나 손정의 같은 자수성가 부자는 누구에게나 영감을 주기 마련이다. 빌 게이츠가 손정의를 자주 찾는 이유다. 마찬가지로 손정의는 늘 빌 게이츠의 사무실 문을 노크한다.
이수미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texan509@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