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포리자 원전 대 혼한

8일 뉴욕증시에 따르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측 공격에 대비한다면서 자포리자 원자력발전소 근처 도시 여러 곳에 대피령을 내렸다. 러시아군은 에네르호다르를 비롯한 자포리자주(州) 내 18개 도시에 대피령을 내렸다. 자포리자주 친러시아 행정부 수반 예브게니 발리츠키는 "지난 며칠간 적군은 최전선에 가까운 도시에 대한 포격을 강화했다"면서 " 그에 따라 모든 어린이와 부모, 노인, 장애인, 병원 환자를 대피시키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점령중인 우크라이나 남부 자포리자 원전은 지난해 3월 러시아 측에 점령된 후 양국 간 운영권 분쟁은 물론 주변 지역에서 포격 등 군사 활동이 끊이지 않으면서 안전 우려가 커지고 있다. 푸틴의 대피령 탓에 공포에 질린 다수 주민이 주말 내 대피에 나서면서 자포리자주 여러 곳에서는 혼란이 빚어졌다. 우크라이나의 멜리토폴 망명 시장인 이반 페도로우는 대피 차량 수천 대가 한꺼번에 떠나면서 도시를 빠져나가려면 5시간이 걸렸다고 텔레그램을 통해 밝혔다. 페도로우 시장은 당시 상황이 "말도 안 되는 공황 상태"였다면서 사재기 때문에 해당 지역의 상품과 의약품이 동이 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군이 멜리토폴시 등을 공격할 경우 전기와 물 공급이 중단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환자를 거리로 내보내는 병원도 여러 곳이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도 대피령에 이어 자포리자 원전 근처에서 곧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본격적 전투가 벌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IAEA도 자포리자 원전의 상황이 "점점 더 예측할 수 없고 잠재적으로 더 위험해지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유럽 최대의 원자력 발전소인 자포리자 원전은 작년 2월 개전 뒤 러시아에 점령됐다. 그럼에도 시설 운영은 우크라이나 원전기업이 맡고 있다. 원전 운영권을 둘러싸 다툼 속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근처에서 자주 교전을 벌였다. 자포리자 원전은 개전 뒤에도 가동돼 교전에 따른 전력공급 차단으로 원자로가 과열돼 녹아버리는 등 중대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이 우려됐다. 원자로가 멈춘 뒤에도 핵물질 적재시설이 교전 때문에 파손돼 방사성 물질이 누출될 우려는 여전한 것으로 평가된다.
러시아는 1945년 옛 소련이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 나치 정권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낸 날을 기념하는 전승절(5월 9일)을 앞두고 최근 수일간 우크라이나 여러 도시를 공습하고 있다. 러시아는 동부 격전지 바흐무트에서도 공세의 끈을 죄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가 전승절까지 바흐무트를 점령하려고 포격을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 바그너 용병부대가 탄약 부족을 이유로 이 지역에서 철수하겠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고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 지상군 사령관 올렉산드르 시르스키는 바흐무트 전선의 부대를 방문한 뒤 텔레그램을 통해 "러시아는 여전히 9일까지 바흐무트를 점령하려고 한다. 우리 임무는 이것을 막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러시아군이 중화기 포격 강도를 높였고, 더 발전된 장비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병력도 재편성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우크라이나도 일부 반격을 한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언론들은 러시아가 점령한 크림반도 전역에서 폭발이 일어났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자국 방공망이 밤사이 흑해 상공에서 우크라이나 드론 22대를 탐지해 격추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 상공으로 드론 여러 대를 보냈으며, 러시아가 방공망을 가동해 세바스토폴 상공에서 최소 1대를 추락시켰다. 러시아 전승절에 맞춰 러시아 내에서 우크라이나의 사보타주(고의 파괴 공작)·테러 공격 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가 이어지자 각 지역 도시들이 보안 조치를 강화한다고 현지 매체들이 보도했다.
러시아 서부 탐보프주는 도시 중앙에 있는 레닌 광장에서 여는 전승절 행사를 관중 없이 치르기로 했다. '우크라이나 특별 군사작전' 참가자 가족이나 명예시민 등 전승절 기념행사에 초청받은 사람들은 신분 확인에 필요한 출입증을 지참하도록 했다.
탐보프주는 또 공식 불꽃놀이 행사를 취소하고 당일 주민들이 불꽃놀이 도구를 사용하는 것도 금지했다. 전승절 당일 어린이들은 가급적 집에 머물 수 있도록 해달라고 주민들에게 요청했다. 행사장에 나오지 못하는 대다수 시민을 위해 전승절 열병식 행사를 지방정부 웹사이트나 지역 TV 채널 등에서 중계할 방침이다. 트베리주는 전승절 당일 보안 강화를 위해 무인항공기(드론) 사용 금지를 했다. 주민들에 대해서는 비행 중인 드론을 발견하면 장소와 시간, 드론 형태, 비행 방향 등을 지역 연방보안국(FSB) 등에 즉시 신고해 달라고 당부했다. 러시아 동부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시는 전승절 주요 행사가 펼쳐지는 중앙광장으로 통하는 길목 9곳에 금속탐지기를 설치·운영한다. 행사 참가 시민들이 호신용 무기나 폭발물, 불꽃이나 연기 등을 만들 수 있는 제품, 식수·주스를 제외한 모든 종류의 액체 등을 소지할 수 없도록 했다. 우크라이나가 드론으로 크렘린궁 대통령 관저에 대한 공격을 시도했다는 러시아 정부 주장이 나온 이후 보안 문제를 이유로 올해 전승절 열병식 행사를 취소한 지역은 14곳으로 늘었다. 러시아 정부는 전승절 당일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계획대로 열병식을 진행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연설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