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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보다 상속…세계 각국 '부의 대물림'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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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보다 상속…세계 각국 '부의 대물림' 본격화

향후 20~30년간 5조 2000억 달러 상속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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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달러 지폐. 사진=로이터
최근 억만장자들의 부가 창업보다 상속을 통해 더 많이 획득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억만장자들의 노령화로 상속을 통해 ‘대규모 부의 이전’이 본격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글로벌 금융 기업 UBS의 2023년도 '억만장자 야망' 보고서에 따르면 새로 자수성가한 억만장자 84명이 번 돈은 1407억 달러(약 183조 6100억 원)인데 비해, 53명의 상속인은 총 1508억 달러(약 196조 7900억 원)를 물려받았다. 상속으로 받은 돈이 약 100억 달러가 더 많다.
보고서에서 상속인은 억만장자의 배우자, 자녀, 손자, 손녀, 파트너로 정의된다. 미국과 유럽에서 상속을 통해 억만장자가 된 사람은 2021년 52명에서 2022년 53명으로 증가했다.

반면, 새로 자수성가한 억만장자는 2021년 81명에서 2022년 84명으로 늘었지만 금액상으로는 소폭 증가했다. 창업보다 상속을 통한 부의 이전 금액이 더 높은 것은 이 보고서가 2015년 발표된 이후 처음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향후 20~30년 동안 약 5조 2000억 달러(약 26경 7525조 원) 상당의 부가 다음 세대로 전달될 예정이다. 이는 인도의 한해 국내총생산(GDP)과 맞먹는 규모다.

2022년 5월에서 2023년 4월 초까지 12개월 동안 억만장자의 수가 7% 증가하면서 전반적으로 억만장자의 부가 회복되고 있었지만, 정점을 찍었던 2021년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시아에서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한·중·일 모두 2020년 이후 부의 대물림이 신규 창업으로 인한 부의 증가보다 더 많았다.

한국의 경우,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자산 100억 원 이상을 보유한 사람의 수는 5만 2000명에서 6만 2000명으로 18% 증가했다. 이 중 신규로 100억 원 이상 자산을 보유한 사람은 1만 5000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4만 7000명은 이미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들이었다.

중국도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억만장자의 수는 173명에서 229명으로 32% 증가했다. 이 중 신규 창업으로 억만장자가 된 사람은 40명에 불과했다.

일본은 2020년부터 2022년까지 100억 엔 이상의 자산 보유자 수는 38만 2000명에서 44만 6000명으로 15% 증가했다. 하지만 새로 100억 엔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사람은 2만 5000명에 불과했다. 이는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아시아에서 훨씬 상속이 많다는 것을 숫자로 보여준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의 부의 이전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 UBS가 억만장자 고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부와 유산에 대한 세대 간 견해차가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자의 68%는 자산과 사업에 대해 “선조가 성취한 것을 지속하고 성장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답했다. 또 60%가 “미래 세대도 축적된 부로부터 혜택을 받기를 원한다”라고 응답했다.

이는 억만장자의 부모 세대가 자산과 사업을 성장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동시에, 자녀 세대는 축적된 부로부터 혜택을 받기를 원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또 이러한 결과는 자녀 세대의 사업 열정이 부모 세대만큼 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암시하고 있다. 이는 자녀 세대가 사업에 대한 열정이 부족하거나, 다른 분야에서 성공하거나, 부모 세대의 성공을 즐기고 싶다는 것을 어느 정도 반영한다.

미래 세대들은 자신만의 아이디어와 야망을 갖고 있으며, 가족의 유산을 이어가려면 부를 재편하고 재배치해야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의식하고 있었다.

자산과 사업의 위험 선호도에서도 세대 간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세대는 부채와 채권 투자를 선호하는 데 반해, 상속자들은 사모 펀드에 대한 투자를 선호했다. 이는 1세대가 부채와 채권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하는 투자 성향을 보이지만, 상속자들은 더 많은 수익을 추구함을 암시한다.

최근 전 세계적인 금리 상승으로 채권 투자 매력이 감소한 것도 위험 선호도 차이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자선 활동에서도 세대 차이는 분명하다. 1세대 억만장자들은 대규모 기부 등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자신들의 핵심 목표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상속자들은 자신이 벌지도 않은 돈을 기부하는 것을 주저하는 것으로 보였다.

상속자들은 친환경 에너지 기업에 투자하거나, 이러한 성격의 기업을 창업함으로써 상업적 목적과 이타적 목적 모두를 충족하는 동시에 환경적,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특히 가족 기업에서 벗어나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있는 상속자들도 늘고 있다. 이는 상속자들이 부와 권력을 기반으로 신규 사업을 시작하거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려는 열망을 표출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 상속인 중 57%가 가족 사업에서 일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43%만 최고 경영진 수준에서 일하고 있었다.

한편, 이러한 변화는 억만장자 사회의 구조와 역학에 큰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예상되는 동시에, 미래의 비즈니스가 어떻게 전개될지를 예측하는 데 도움이 된다.

향후 20~30년 동안 5조 달러가 넘는 돈이 어디로 흘러갈지 사전에 이해하는 것은 미래 사업의 전망과 투자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