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편, 과학기술과 혁신이 국가안보는 물론 기업의 경쟁력에서 핵심 요소로 작용하면서, 국제적인 두뇌 유치 경쟁의 새로운 전선도 열리고 있다.
고급 반도체 인력 유출 차단 노력
미국 상무부는 2022년에 미국 시민권자 및 영주권자가 중국 반도체 기업 및 관련 기업에 근무하려면 상무부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조치를 도입했다. 이는 미국인이나 미국 시민권자가 중국 반도체 산업에 근무하는 것을 막는 것으로, 중국의 첨단 반도체 기술개발을 억제하고, 미국의 반도체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행됐다.
이로 인해, 한국과 대만, 일본 등의 반도체 인력들이 중국 취업이나 진출을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한국의 경우, 한국산업기술진흥원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제조사들과 소재·부품·장비 기업 등 반도체 산업에는 총 17만9885명의 인력이 근무 중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 중에 반도체 연구개발과 기술, 생산 등 필수 업무에 종사하는 산업기술 인력은 9만9285명으로, 인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꾸준히 늘고 있다.
한국 정부는 미·중 기술 경쟁 확대와 중국의 고급 인재 유치에 경각심을 갖고, 반도체, 배터리, 유기 EL 패널 등 12개 산업 분야에서 기술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출입국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대만의 경우,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인 TSMC는 2022년에만 8000명 이상의 반도체 기술 인력을 신규로 고용할 정도로 고급 인력 수요가 많다.
2019년 기준으로 대만 반도체 기술자 3000명이 중국에서 일했는데, 이는 중국 내 반도체 기술자 총 4만명 중 7.5%에 해당하는 수치로, 최근에는 미국과 중국의 대립과 중국의 엄격한 ‘제로 코로나’ 정책 때문에 중국 본토 반도체 업체에서 일했던 대만 인력들이 대거 이탈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만도 중국 현지로 고급 인력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강력한 조치를 하고 있다.
대만의 법무부 조사국은 22년에 반도체 인재를 획득하려는 혐의로 대만 내 중국 기업 8개사를 수색했다. 대만의 최첨단 반도체는 세계 IT 공급망의 생명선이 되고 있으며, 이것은 중국 기술 확보에서 핵심 공격 목표가 되고 있다.
중국의 사활을 건 고급 인력 유치
미국 규제를 피해 반도체 기술 확보를 갈망하는 중국은 대만, 한국, 일본 등에서 첨단 기술 보유자를 유치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중국이 당장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던 7나노 공정에 성공한 것도 TSMC에 20년 이상 근무한 양 징 박사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중국은 첨단 반도체 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한국과 대만의 우수한 반도체 인재를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고액 연봉과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며, 인력회사 등을 통해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기업도 중국 진출을 통해 인재 유치에 나서고 있다.
중국 정부는 자국의 인력회사를 통해 한국, 대만, 일본의 인력회사과 협력하여 석·박사 출신 내지 업계에서 10~20년 이상 근무한 고급 기술 인재를 유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이 인력회사를 통해 한국, 대만, 일본의 인재를 유치하는 규모는 정확하게 집계되지 않지만, 업계는 약 1000~2000명 정도가 될 것으로 본다.
반도체 외에도 중국의 배터리 기업인 CATL은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성공해 양산에 나서고 있는데, 이는 일본의 배터리 기술자가 큰 역할을 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CATL의 전고체 배터리 개발 책임자인 야마구치 히데오 박사다. 그는 일본의 소니에서 30년 이상 근무하며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이런 성과에 자극을 받은 중국은 향후에도 고급 인력의 필요성 때문에 인력회사 등을 통해 한국, 대만, 일본 인재를 교묘하게 유치하려고 할 것이다.
한편, 최근 중국은 삼성전자에서 중국 업체로 전직한 기술자를 활용, 첨단 반도체 기술을 불·편법 이용해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 발견됐다.
이에 검찰은 삼성전자 전 상무를 체포했다. 그는 삼성 반도체 공장의 도면 정보를 부정하게 꺼내 중국 자금으로 공장을 건설하려고 한 혐의가 있었다.
이런 기술 유출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검찰에 따르면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안건과 인지된 건수는 22년에 33건으로 전년의 2배를 초과했다.
고급 인재 유치는 중국만의 문제는 아냐
최근 고급 두뇌 유치 경쟁에 중동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도 참여하고 있다. 석유 시대 이후를 대비하는 이 나라는 기술 혁신 입국으로의 전환을 도모해 고급 두뇌를 전 세계에서 긁어모으고 있다.
그간 이 나라는 인접 아프리카나 동남아 국가에서 저숙련 노동력을 유입해 활용해 왔다. 이들의 규모는 전체 사우디 근로자의 약 30% 수준을 차지할 정도다. 그러나 이제 고급 인력 유치에 방점을 두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고급 두뇌가 혁신을 주도하고 이 나라가 지향하는 미래 첨단 산업국가로의 전환을 도울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자국에서 배출되는 인재만으로는 화석연료 이후 시대를 만들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사우디 국민의 평균 연봉보다 2~3배 높은 수준의 연봉, 연구와 개발 예산 제공, 비자 발급 간소화, 무료 주택, 의료비, 교육비 등을 지원하는 등으로 2023년 기준, 첨단 분야 고급 인력 약 50만명을 유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도 반도체 인력 부족으로 해외 이민을 늘리려고 하고 있다. 특히, 기술, 과학, 수학 등 이공계 인력에 대한 유학이나 취업을 확대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바야흐로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은 연구개발 분양 및 생산 제조 공정에 고급, 고숙련 근로자를 확보하는 데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