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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지금] 지진 피난처 자판기 손괴 사건, ‘선의 vs 범죄’로 팽팽히 맞서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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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지금] 지진 피난처 자판기 손괴 사건, ‘선의 vs 범죄’로 팽팽히 맞서는 이유

이시카와현 아나미즈 고등학교 내에서 손괴된 자판기 모습. 사진=sns X갈무리이미지 확대보기
이시카와현 아나미즈 고등학교 내에서 손괴된 자판기 모습. 사진=sns X갈무리
노토반도 지진이 강타한 날 현지에서 발생한 자판기 손괴 사건 하나가 일본에서 화제다.

22일 지지통신과 요미우리 등 일본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지난 3일 밤 지진이 일어난 이시카와현 아나미즈 고등학교 내 자판기가 파손되고 음료들이 사라진 사건이 발생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지진 발생 약 1시간 후인 오후 3시 30분경 약 300여 명이 대피한 교내에서 남녀 두 명은 ‘긴급한 상황’이라고 말한 뒤 자판기를 공구로 부수고 음료를 나눠줬다.

이 학교에 설치된 자판기는 재난 발생 시 열쇠로 문을 열고 무료로 상품을 꺼낼 수 있는 '재난지원형' 자판기다. 재난지원형 자판기는 일본에서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개발·보급되기 시작했으며, 주로 재난 시 대피처나 의료 시설, 공공시설 등에 설치되어왔다.
하지만 학교 건물 1층에 설치되어 있던 콜라 자판기는 열쇠가 아닌 공구로 강제로 문이 열렸으며, 내부도 대파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교무실 근처 현관 부근에 나란히 놓여있던 자판기도 전면 커버가 깨졌으며 내부 음료가 사라졌다.

이에 대해 아나미즈 고등학교장은 "학교 측에서 자판기를 부숴도 된다는 허가는 내주지 않았다"라며 "열쇠는 교무실에서 보관 및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학교 측에 연락했다면 정상적으로 (문을 열어) 보급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형법상 재물손괴 및 절도로 판단해야 할지 여부를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현지에서는 옹호와 반대 여론이 팽팽히 갈리고 있다. 선의에 의한 행동이더라도 분명히 문제가 될 수 있다라는 의견과, 단순 절도가 아닌 인명을 최우선으로 한 선의의 행동이라는 것이다.
츠지토 노리오 킨키대 형법 교수는 "자판기를 보유하고 관리하는 사업장의 허가를 받지 않고 파괴한 것은 명백히 재물손괴에 해당된다”라고 말했다.

또 형법 제246조에는 긴급피난이 성립될 경우 처벌받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에 대해 츠지토 교수는 “자판기 안의 음료를 지금 당장 마셔야 할 정도로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 아니라면 적용하기 어렵다. 지진 발생 직후라 매우 곤란한 상황이었겠지만, 긴급성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쿠니사키 노부에 위기관리 어드바이저는 “아무리 피해지역이라 하더라도 허가 없이 남의 물건을 부수는 행위는 범죄라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한 곳에서 발생하면 연쇄적으로 발생해 치안 악화를 초래할 수 있으며, 선의의 행동이라 하더라도 오히려 이재민들의 불안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긴급성’을 얼마나 잘 소명할 수 있는가에 따라 해당 사건의 처벌 여부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이용수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iscrait@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