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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AI기업, 웃돈 주고 중국용 아닌 고성능 칩 '암시장' 기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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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AI기업, 웃돈 주고 중국용 아닌 고성능 칩 '암시장' 기웃

화웨이의 자체 AI칩 어센드 910B의 제품 이미지.  사진=화웨이이미지 확대보기
화웨이의 자체 AI칩 어센드 910B의 제품 이미지. 사진=화웨이
중국의 인공지능(AI) 업계가 갈수록 높아지는 AI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지만, 정작 필요한 AI 반도체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그나마 대기업들은 자국산 AI 칩으로 대체하고 있지만 물량이 턱없이 부족한데다, 그마저도 구하지 못한 기업들은 몇 배에 달하는 웃돈을 주고서라도 암시장에서 AI 구동이 가능한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찾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시아 주변국 컴퓨터 부품 시장에도 전매상 ‘기승’

엔비디아는 지난해 말 미국의 추가 규제로 지금껏 중국에 수출하던 모든 AI 칩과 개인용 고성능 GPU ‘RTX 4090’의 수출이 막혔다. 이에 신형 중국향 AI 칩 H20과, 다소 성능을 낮춘 ‘RTX 4090D’ GPU를 지난 1월 중국에 출시했다.
하지만 H20은 중국 자체 개발 AI 칩과 비슷한 성능으로 가격 대비 메리트가 떨어져 현지 기업들이 외면하고 있다. 4090D도 성능이 원본인 4090보다 약 5% 정도 떨어지지만, 원래 목표인 일반 소비자는 물론 AI 관련 기업들도 찾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IT매체 마이드라이버스(快科技)는 “엔비디아가 중국용 특별 모델 RTX 4090D를 출시했지만, 결국 원본에서 성능을 낮춘 ‘거세 버전’이고 가격도 저렴하지 않다”며 “실제로 필요한 이들은 여전히 (기존) RTX 4090을 선호한다”고 지적했다.

홍콩의 한 AI 스타트업 공동창업자는 마이드라이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RTX 4090 판매 금지로 사업 지속이 불가능하다”며 “합법적인 경로로는 도저히 구할 수 없어 결국 암시장에서 비싸게 사야 할 판이다”라고 호소했다.

그 여파는 주변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닛케이아시아, 테크스팟 등 외신들은 최근 중국 암시장에서 엔비디아 4090 GPU 수요가 급증하자 한국과 일본, 베트남, 싱가포르, 대만 등 주변 아시아 국가들의 현지 시장에서 4090 제품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으며, 이들의 소매 가격도 60% 이상 급등했다고 보도했다.

외신에 따르면, 최근 대만의 유명 컴퓨터 쇼핑센터 광화상창(光華商場)에 현금 뭉치를 들고 다니며 각 소매점에 남아있는 4090 GPU 재고들을 모조리 사들이는 전매상들이 급증했으며, 베트남과 싱가포르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마이드라이버스는 “일부 대만 판매점들은 사전 설치된 완제품 컴퓨터를 구매해야만 4090을 살 수 있도록 제한을 뒀지만, 한 전매상이 20대나 되는 해당 컴퓨터를 총 65만 위안(약 1억2000만원)에 한꺼번에 구매했다”며 “이 전매상은 이들 컴퓨터에서 4090만 떼어다 중국에 되팔면 오히려 이익이 남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닛케이아시아는 이러한 RTX 4090의 ‘활발한 거래’는 미국의 규제가 암시장을 통해 고성능 AI 칩·GPU가 중국으로 유입되는 것까지는 막지 못하고 있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중국 최대 전자부품 시장인 선전시 화창베이에서 전문업자를 통해 주문하면 4090 GPU의 경우 보통 3~4일 이내, H100이나 H800 등 고성능 AI 칩마저 단품 기준 1주일 안팎에 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AI 기업들이 암시장까지 기웃거리며 엔비디아 AI 칩과 고성능 GPU 확보에 혈안인 것은 이들이 지금껏 엔비디아 제품으로만 AI 개발을 진행하면서 경쟁사 제품으로 갈아타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AI 칩이나 GPU가 하나라도 더 많을수록 AI 개발 시간을 단축하고 성능을 높일 수 있어 회사의 ‘경쟁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게다가 화웨이의 ‘어센드 910B’를 비롯한 중국 자체 개발 AI 칩이 중국 기업들의 높아진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고 있는데다, 자체 제조도 어렵고 수율(반도체의 양품 생산 비율)도 매우 낮아 수요 대비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

미국은 암시장까지는 막지 못해도 일반 B2B 시장에서 고성능 AI 칩 유출을 철저히 틀어막고 있다. 최근 미국에 본사를 둔 중국계 자율주행 트럭회사 투심플(TuSimple)이 호주 자회사에 엔비디아 A100 칩 24개를 수출하려다 미 상무부의 수출금지 및 추가 조사를 받게 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결국 미국의 수출 규제가 계속되고, 중국의 자체 AI 칩 개발과 생산이 늦어질수록 암시장을 기웃거리는 중국 AI 기업들의 발걸음도 더욱 바빠질 전망이다.


최용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pch@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