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 격화 속 보복조치 연이어...애플·보잉 등 '수십 년 공든 탑' 흔들
자국 기업 육성·기술 자립 외치는 중국...美 기업에겐 '가시밭길' 예고
자국 기업 육성·기술 자립 외치는 중국...美 기업에겐 '가시밭길' 예고

과거 워싱턴 정가에서는 미국 정치인들이 중국 내 미국 기업들의 '로비스트'로 오해받을 정도였다. 미국 은행, 항공, 외식 프랜차이즈 등의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의 항공기 제조업체 보잉은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 직후 중국으로부터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재 중국에 진출한 상당수 미국 기업 임원들은 자국 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시작된 고율 관세 부과와 중국 정부의 보복 조치로 인해 수년간 쌓아온 상업적 성공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고 우려한다. 특히 지난 4월 15일 중국 항공 규제 당국이 항공사들에게 보잉 항공기 인수를 중단하라고 지시한 것은 상하이와 베이징의 미국 기업 최고경영자들에게 미·중 경제 관계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 '애국 소비' 확산과 거세지는 자국 경쟁…돌파구 찾기 '안간힘'
과거 중국은 값싼 노동력과 급성장하는 시장을 바탕으로 미국 기업들에 막대한 수익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시진핑 주석의 지도 아래 중국 정부는 자국 기업 육성과 기술 자립을 강조하며 외국 기업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나가고 있다.
중국 정부는 중국산 제품에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외국 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등 자국 기업에 유리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며, 중국 기업들의 기술력 향상과 가격 경쟁력 강화로 시장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또한 미·중 관계 악화로 미국의 대중국 제재나 중국의 보복 조치 등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불확실성 역시 미국 기업들의 경영 환경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많은 미국 기업들은 여전히 중국 시장에 남아있다. 거대한 시장 규모와 성장 잠재력을 쉽게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와 같은 호황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팀 쿡 애플 CEO는 지난달 중국을 방문해 중국 고위 관리들을 만났다. 그는 "애플은 중국 시장에 대한 약속을 지킬 것이며,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동시에 공급망 다변화 노력도 인정하면서 중국 외 다른 국가에서 생산 확대를 시사했다. 이는 애플이 중국 시장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보잉의 경우 중국은 한때 가장 큰 고객 중 하나였으나, 최근 몇 년간 중국 항공사들은 유럽 에어버스사 항공기 구매를 늘리고 있다. 이번 중국 정부의 보잉 항공기 인수 중단 조치는 보잉에 상당한 타격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나이키나 스타벅스와 같은 소비재 기업들도 중국 소비자들의 애국주의 성향 강화와 중국 정부의 반부패 캠페인으로 인한 고급 소비재 시장 위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물론 일부 기술 우위 기업이나 중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기업들은 여전히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중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의 앞날이 밝지만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미국 정부 역시 이러한 상황을 우려하며 중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미국 기업들에 중국 시장 의존도를 줄일 것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시장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미국 기업들이 단기간에 중국 시장에서 철수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은 변화하는 경영 환경에 발맞춰 끊임없이 혁신하고 전략을 수정해야 할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중국 정부의 정책 변화를 면밀히 살피고 경쟁력 강화, 공급망 다변화 등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기회를 모색해야 하지만, 과거와 같은 손쉬운 성공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