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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트럼프 관세 압박 속 중국 이웃 국가들 딜레마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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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트럼프 관세 압박 속 중국 이웃 국가들 딜레마 심화

미중 선택 강요받는 동남아...자국 산업 보호 고심
수출 활로 막힌 중국 상품 유입에 현지 기업 '비명'
동남아 소규모 사업체는 초저가 중국 제품의 공세에 맞서 생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동남아 소규모 사업체는 초저가 중국 제품의 공세에 맞서 생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고율 관세 부과로 중국과 인접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딜레마에 빠졌다고 BBC가 지난 18(현지시각) 보도했다. 이들 국가는 세계 양대 경제 대국인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무역의 균형을 유지해 왔으나, 강화된 미국의 관세 압박 속에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첫 임기 중 중국에 관세를 부과했을 당시, 베트남의 사업가 하오 레 씨는 이를 기회로 삼았다. 그가 운영하는 SHDC 일렉트로닉스는 하이즈엉의 산업단지에 위치하며, 매달 200만 달러(284900만 원) 상당의 전자제품 액세서리를 미국에 수출하며 성장했다. 그러나 트럼프가 베트남 제품에 대해 최대 46%의 관세 부과를 검토하면서(현재 7월 초까지 보류), 레 씨는 "우리 사업에는 치명적일 것"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그는 베트남 내수 시장에 대해 "우리는 중국 제품과 경쟁할 수 없다. 많은 베트남 기업이 자국 시장에서 고전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2016년 트럼프 관세는 미국으로 향하려던 값싼 중국산 수입품을 동남아시아로 대거 유입시켜 현지 제조업체에 타격을 줬다. 동시에 일부 기업에는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는 글로벌 공급망에 편입될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 2.0' 시대의 관세는 이러한 기회마저 차단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되며, 반도체, 전기차 등 신산업 육성에 나선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고성장 국가들에게는 악재가 되고 있다.

◇ 미·중 사이에 낀 동남아의 고심


이들 국가는 세계 양대 경제 대국인 중국과 미국 사이에 낀 처지다. 중국은 강력한 이웃이자 최대 교역국이며, 미국은 핵심 수출 시장이자 베이징을 희생시켜 거래를 모색할 수 있는 국가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최근 베트남, 말레이시아, 순방한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중요성이 더해졌다. 세 나라는 시 주석을 환대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두고 이들이 미국을 "골탕먹이려고" 공모하는 증거라고 비난했다.

백악관은 향후 소규모 국가들과의 협상에서 대중국 거래 제한을 압박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중국과 동남아시아 간 막대한 자금 흐름을 고려할 때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2024년 중국 수출액 35000억 달러(4985조 원) 16%가 동남아시아로 향했으며, 중국은 '일대일로' 구상에 따라 이 지역에 철도, , 항만 건설을 지원해왔다.

말레이시아의 텡쿠 자프룰 아지즈(Tengku Datuk Seri Zafrul Abdul Aziz) 투자통상산업부 장관은 시 주석 방문 전 BBC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선택할 수 없으며, 결코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며 "만약 그것이 우리의 이익에 반한다고 느끼는 문제라면,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 미국 시장 사수 위한 각국의 노력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발표 후 동남아 정부들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트럼프가 "매우 생산적인 통화"였다고 언급한 베트남 지도자 또럼(Tô Lâm)과의 통화에서 또럼은 미국 제품 관세 전면 철폐를 제안했다. 삼성, 인텔, 폭스콘 등 글로벌 기업 생산 기지가 있는 베트남에 미국 시장은 매우 중요하다.

태국 정부 대표단도 미국 수입 및 투자 확대를 제시하며 대미 관세 36% 부과 가능성에 대응하기 위해 워싱턴을 방문한다. 프라윳 찬 오차(Prayuth Chan-o-cha) 총리는 "우리는 미국 정부에 태국이 단순한 수출국이 아니라 미국이 장기적으로 의존할 수 있는 동맹이자 경제 파트너임을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아세안은 트럼프 관세에 대한 보복 대신 미국에 대한 경제적, 정치적 중요성을 강조하는 쪽을 택했다.

자프룰 장관은 BBC"우리는 미국의 우려를 이해한다""그렇기 때문에 특히 말레이시아를 포함한 아세안이 그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동남아는 중국과 미국의 무역 및 투자 양쪽에서 이익을 얻으며 수출 주도 경제를 이끌어왔으나, 트럼프의 관세 보류 조치는 이러한 상황을 흔들 수 있다.

예컨대 말레이시아는 최근 몇 년간 미국 등의 반도체 기업 투자를 유치했다. 미국이 중국에 대한 첨단 기술 판매를 제한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지난해 중국은 말레이시아에서 180억 달러(256410억 원) 상당의 반도체를 수입했는데, 이 칩은 아이폰 등 중국산 전자 제품에 사용돼 주로 미국으로 수출된다. 트럼프가 제안한 말레이시아에 대한 24% 관세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미국 시장 접근을 막을 수 있다. 자프룰 장관은 "이것이 계속된다면 기업들은 투자 약속을 재고해야 할 것"이라며 "이는 말레이시아 경제뿐 아니라 세계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니켈 매장량이 풍부하고 전기차 공급망을 노리는 인도네시아는 32%, 중국 동맹국인 캄보디아는 49%의 관세에 직면할 수 있다. 이 지역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인 캄보디아는 미국 관세를 회피하려는 중국 기업들의 환적 허브로 기능하며 성장했다. 현재 캄보디아 의류 공장의 90%를 중국 기업이 소유·운영하며 주로 미국으로 수출한다.

중국 자동차 업체들이 동남아 시장을 공략하고 우회하여 미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동남아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중국 자동차 업체들이 동남아 시장을 공략하고 우회하여 미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동남아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중국산 저가 공세에 현지 기업 '비명'


이 불확실한 시기에 시진핑 주석은 단합하여 미국의 '괴롭힘'에 저항하자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동남아 국가들도 중국과 무역 갈등을 겪고 있어 쉬운 과제는 아니다. 인도네시아의 잠옷 브랜드 헬로포피 주인 이스마 사비트리 씨는 중국에 대한 145% 관세로 미국 수출길이 막힌 중국 경쟁사들이 더 저렴한 가격으로 동남아 시장에 몰려들까 걱정했다. 그는 "우리 같은 소규모 사업체는 압박을 느낀다""초저가 중국 제품의 공세에 맞서 생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고 토로했다. 그의 파자마 인기 상품은 7.1달러(1113)인데, 비슷한 중국산 디자인은 절반 가격에 팔린다고 한다.

싱가포르 ISEAS 유소프 이샤크 연구소의 응우옌 칵 장 초빙 연구원은 "동남아시아는 지리적으로 가깝고 무역 체제가 개방되어 있으며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덤핑 지역이 되었다""정치적으로 많은 국가들이 베이징과 맞서는 것을 꺼려하며, 이는 또 다른 취약점을 추가한다"고 분석했다.

값싼 중국산 제품은 소비자들에게 환영받지만, 수천 개의 현지 기업은 가격 경쟁력을 잃었다. 태국의 한 싱크탱크 추정에 따르면 지난 2년간 매달 100개 이상의 태국 공장이 문을 닫았다. 같은 기간 인도네시아에서는 약 60개의 의류 제조업체가 폐업하며 약 25만 명의 섬유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한때 역내 최대였던 스리텍스도 문을 닫았다. 스리텍스에서 30년간 근무하다 2월 해고된 무지아티(50) 씨는 BBC"뉴스를 보면 수입 제품이 국내 시장을 범람시켜 우리 시장을 망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어쩌면 운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누구에게 불평할 수 있나?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 보호주의 강화와 기회 포착 움직임


동남아 정부들은 현지 산업 보호를 위해 보호주의 조치로 대응했다. 지난해 인도네시아는 일부 중국 제품에 200% 관세 부과를 검토하고 중국 상인들에게 인기 있는 테무 사이트를 차단했다. 태국은 수입품 검사를 강화하고 소액 상품에 추가 세금을 부과했다. 올해 베트남은 중국 철강 제품에 대해 두 차례 임시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으며, 트럼프 관세 발표 후에는 자국 경유 대미 수출 중국 제품 단속을 강화할 방침이다.

중국은 미국으로 향하던 수출품이 다른 시장으로 몰려 교역 상대국들을 "정말로 소외시키고 악화시킬" 것을 우려한다. 전 이코노미스트 베이징 지국장 데이비드 레니는 BBC 뉴아워에 "만약 중국 수출품의 거대한 물결이 이들 시장을 휩쓸고 고용과 일자리를 해치게 된다면... 이는 중국 지도부에게 엄청난 외교적, 지정학적 골칫거리"라고 평가했다.

중국은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를 제외한 동남아 국가들과 항상 원만한 관계를 맺은 것은 아니다. 남중국해 영토 분쟁은 필리핀과의 관계를 악화시켰고 베트남, 말레이시아와도 문제지만 무역이 균형추 역할을 해왔다. 전문가들은 이제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싱가포르 국립대학교의 충 자이안 부교수는 "동남아시아는 정말 중국을 화나게 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야 했다""이제 이것이 상황을 복잡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중국의 손실은 동남아시아의 이득이 될 수도 있다. 베트남의 하오 레 씨는 중국 외 새로운 전자 제품 공급업체를 찾는 미국 고객들의 문의가 급증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미국 구매자들이 공급업체를 바꾸는 데 몇 달이 걸렸지만, 오늘날에는 그런 결정이 며칠 안에 이루어진다"는 설명이다. 광대한 고무 농장과 세계 최대 의료용 고무 장갑 제조업체를 보유한 말레이시아는 세계 고무 장갑 시장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며 중국으로부터 더 큰 점유율을 가져올 태세다.

말레이시아 고무장갑 제조업체 협회 운 김 훙(Oon Kim Hung) 회장은 동남아 국가들이 여전히 10%의 기본 관세에 직면해 있는 것은 나쁜 소식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보류된 관세가 발효되더라도 고객들은 말레이시아 장갑에 추가 24%를 지불하는 것이 중국산에 부과될 145%보다 훨씬 나을 것이라고 그는 내다봤다. 그는 "우리가 기뻐서 펄쩍 뛰는 상황까지는 아니지만, 이는 우리 제조업체뿐만 아니라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소재 업체들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