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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한국 감독들, 세계 자본주의 위기 공감 이끌며 콘텐츠 강국 부상…트럼프 '외국 영화 관세' 발언에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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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한국 감독들, 세계 자본주의 위기 공감 이끌며 콘텐츠 강국 부상…트럼프 '외국 영화 관세' 발언에 우려도

봉준호 감독.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봉준호 감독. 사진=로이터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가운데 이들 콘텐츠가 자본주의의 병폐를 비판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전 세계 관객의 공감을 얻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외국산 영화에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시사하면서 한국 콘텐츠 산업에 미칠 영향도 주목되고 있다.

미국 시사 매체 뉴라인스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필두로 ‘오징어 게임’ ‘미나리’ ‘버닝’ 등 한국 영화와 드라마들이 노동 착취, 계급 불평등, 사회적 고립 등 글로벌 자본주의의 병리 현상을 날카롭게 묘사해 세계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고 6일(이하 현지 시각) 보도했다.

봉 감독의 ‘기생충’은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최초의 외국어 영화로 서울의 가난한 김씨 가족이 부유한 박씨 집안에 위장 취업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한국 사회의 계급 고착과 중산층 붕괴를 그렸다. 미국 내에서도 이 작품은 “재산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높아지는 현실에 깊은 울림을 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혜승 미국 콜로라도주립대 교수는 이 매체와 한 인터뷰에서 “최근 20년간 한국 사회의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MZ세대를 중심으로 ‘금수저’ ‘흙수저’ 같은 계층 은유가 통용되고 있다”면서 “이 같은 인식은 '기생충' '버닝' '부산행' 같은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됐다”고 말했다.

최근 개봉한 봉 감독의 신작 ‘미키 17’ 역시 이 흐름을 잇는다. 3D 프린터로 되살아나는 소모품 노동자로 전락한 주인공이 반복적으로 죽음을 맞이하며 착취당하는 이야기는 현실 속 ‘아마존 창고 노동자’와 ‘자회사 파견 직원’에 대한 은유로 해석된다. 교수 출신 정치인 역할의 악역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유사한 어조와 몸짓을 보이며 “노동자 착취의 정치적 배경”을 암시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오징어 게임’은 부채와 실업에 시달리는 참가자들이 목숨을 걸고 어린이 놀이를 하며 상금을 노리는 구조를 통해 “극한의 공정함”을 내세운 신자유주의 경쟁의 허구를 폭로했다. 극 중 “여기선 모두가 평등하다”는 대사는 한국 사회의 불공정한 기회 구조에 대한 아이러니한 반문으로 읽힌다.

하지만 이처럼 세계 무대에서 존재감을 키운 한국 콘텐츠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일 “미국 영화 산업이 외국산 제작물로 침식당하고 있다”면서 “외국 영화에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2020년에도 ‘기생충’의 오스카 수상에 대해 “무슨 일이냐. 왜 한국 영화가 상을 받느냐”고 불만을 표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아누팜 찬더 미국 조지타운대 로스쿨 교수는 “1988년 제정된 버먼 수정안에 따라 책, 영화, 음악 등은 국가 안보 명분으로도 규제를 받을 수 없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법적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지적했다.

뉴라인스는 “봉준호, 박찬욱, 황동혁 등 1980년대 민주화운동 세대의 감독들이 자본주의 비판을 핵심 주제로 한 작품들로 세계 대중문화의 주류에 진입하고 있다”면서 “그들의 비판은 좌절보다는 변화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미키 17’은 ‘설국열차’에서 좌절된 혁명의 실패를 넘어 독재자를 처단하고 민주 정부를 수립하는 해방의 서사로 이어진다.

뉴라인스는 “오늘날 한국 사회는 더 이상 전통적인 ‘한(恨)’의 정서를 따르지 않는다”면서 “이제는 억울함을 표현하고, 부조리를 고발하며, 때로는 체제를 바꾸려는 주체적인 시민성이 한국 영화에 반영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