쑹훙빙의 화폐전쟁과 연준 FOMC 금리인하

미국에서 연준 탄생 논의가 본격적으로 인 것은 1907년부터다. 그해 미국에 금융 공황이 발생했다. 경제학에서 공황 하면 우리는 흔히 1929년 대공황을 연상한다. 1929년 대공황의 쇼크가 워낙 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전에도 공황은 수시로 이어져왔다. 특히 1907년 공황이 바로 1929년 공황의 뿌리라고 보는 경제사학자들이 적지 않다. 실제로 1907년 공황은 1929년 대공황보다 더 심각했다. 1907년 공황의 발단은 이른바 몬태나의 구리왕(Copper King) 사건이다. 당시 ‘유나이티드 구리회사(United Copper Company)’라는 기업이 있었다. 구리를 만들어 파는 기업이었다. 하인츠 등이 은행에서 융자받은 돈으로 주식을 사 모아 가격을 올린 다음 그 정점에서 매도해 차익을 먹겠다는 음모를 꾸몄다.
하인츠 등의 사기 음모는 성공하지 못했다. 주식 살 돈을 충분히 마련하지 못해 제대로 주가를 올리지 못한 것이다. 그 바람에 오히려 주가가 떨어져 버렸다. 은행 빚으로 주식을 산 하인츠 일당은 큰 손실을 입었다. 이 소문이 알려지면서 뉴욕의 은행에서 예금인출 사태가 발생했다. 구리 왕들이 돈을 제때 못 갚으면 대출을 해준 은행들이 부도날 수 있다고 보고 미리 돈을 빼가기 시작한 것이다. 잇단 예금인출로 수많은 은행들이 지급 불능에 빠졌다. 은행들에 돈을 빌려준 또 다른 은행들도 덩달아 무너졌다. 그러자 일반 사람들도 덩달아 돈을 찾기 시작했다. 은행이 일시에 마비됐다. 주식도 못 믿겠다며 마구 팔아치웠다. 주가가 폭락한 것은 물론이다. 증권거래소가 문을 닫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1907년 금융공황이다.
국가가 무너질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이때 스스로 몸을 던져 미국의 위기를 구한 인물이 바로 J.P.모건이었다. 그는 위기에 처한 투자신탁 사장과 은행장들을 모두 불렀다. 모건의 본사가 있던 월스트리트 23번지로 소집한 것. 그러고는 보유하고 있던 현금을 왕창 풀었다. 아무도 돈을 내놓으려고 하지 않던 상황에서 대단한 용기였다. 지원해준 자금을 모두 떼일 수도 있는 위험한 승부수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모건이 무제한 돈을 푼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예금인출 사태가 진정됐다.
모건의 승부수는 물론 자신이 살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금융이 모두 무너지면 금융자산이 가장 많은 모건 또한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자신의 모든 돈을 던져 금융공황을 수습한다는 것은 대단한 배짱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모건의 몸을 던지는 살신성인으로 공황이 수습됐다. 이때부터 뉴욕 증시에서 모건의 공신력은 커졌다. 중앙은행이 없던 시절 미국에서는 모든 시중은행이 각자 은행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미국 사람들은 각 시중은행들이 찍어낸 제각각의 은행권을 사용하고 있었다.
1907년 대공황 수습 이후 모건의 영향력이 세지면서 은행 화폐에도 권력 변동 현상이 생겨났다. JP모건 은행이 발행한 은행권의 공신력이 두드러지게 높아졌다. JP모건을 제외한 다른 은행이 발행한 은행권은 서서히 영향력을 잃어갔다. 결국 JP모건이 발행한 은행권이 사실상 미국의 대표 통화로 사용됐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미국은 1913년 연준을 만들기에 이른다. 나라의 기둥 같은 화폐제도를 더 이상 민간에만 맡길 수 없다는 논의가 이어지면서 마침내 미국도 중앙은행 제도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JP모건을 비롯한 민간 은행의 역할을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들을 배제할 경우 한꺼번에 돈이 빠져나갈 우려도 없지 않았다. 논의 끝에 민간 은행을 적극 끌어들이면서도 공적 성격을 강화하는 절충 방식을 구상하게 됐다. 구체적으로는 민간 은행들이 자금을 출자해 주식회사 형태로 연준을 세우되 일반 주식회사와 달리 주주들의 의결권을 일부 제한하기로 한 것이다. 특히 12명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 중 연준 의장을 포함한 7명은 대통령이 임명하면서 상원의 인준을 받도록 하는 방식으로 공공성을 높였다. 연준의 영업이익도 모두 국가에 귀속시키기로 했다.
이 같은 복잡한 지배구조 탓에 연준을 향한 오해가 끊이지 않고 있다. 특정 금융자본이 미국을 말아먹고 있다는 음모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 중국의 경제학자 쑹훙빙은 수년 전 펴낸 '화폐전쟁'이라는 책에서 유대 자본이 미국 금융을 농단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쑹훙빙은 이 '화폐전쟁'에서 글로벌 금융위기도 연준 주주들인 소수 금융재벌들의 농단이라고 갈파하기도 했다. 이는 미국의 연준 제도를 잘못 이해한 데서 오는 오해일 뿐이다. 미국 연준은 전 세계 어느 나라 중앙은행보다 강력한 독립성을 보유하고 있다. 연준에 출자한 주주 은행들로는 JP모건, 내셔널시티, 내셔널, 하노버, 체이스 그리고 케미컬은행 등이 있다. 이들은 연준 설립 과정에서 많은 돈을 투자했지만 연준의 어떠한 결정에도 관여하지 못한다.
연준은 주주는 물론 정부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정부가 출자한 기관이 아닌 만큼 국가의 감시·감독을 받을 필요도 없다. 오로지 의회가 제정한 연방은행법만 지키면 된다. 민간 은행의 돈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은 정부 간섭에 의연할 수 있는 좋은 밑바탕이 되고 있다. 미국이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으면서도 세계의 강국으로 남아있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은 달러 패권에서 나온다. 그 달러 패권은 중앙은행인 연준의 독립성에 뿌리내리고 있다. 연준이 민간 은행이 공동 출자한 주식회사라고 하여 공공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은 아주 큰 착각이다. 쑹훙빙의 오판이다.
요즘 트럼프 대통령은 틈만 나면 연준을 향해 금리인하를 압박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FOMC 회의 직전에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인플레이션은 없다”면서 “연준은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악관 행사에서 기자들과 만난 트럼프는 “모기지(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약간 내려갔지만 연준에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파월 의장을 시사하는 발언을 꺼냈다. 트럼프는 “그는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면서 “나는 그보다 금리에 대해 훨씬 더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는 정말로 금리를 활용해본 적이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도 폭스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2년 만기 국채 금리가 연방기금 금리보다 낮다”면서 “이는 연준이 금리를 인하해야 한다는 시장의 신호”라고 강조했다. 금리인하를 둘러싼 트럼프 대통령과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신경전은 연준의 독립성을 판단하는 중대한 가늠자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