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마포사 대통령은 전날 21일 백악관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마주했다. 남아공 외교부에 따르면 이번 회담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악화된 미·남아공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취지로 추진됐다. 그러나 정작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대부분의 시간을 ‘백인 농장주들이 조직적으로 살해되고 토지를 빼앗기고 있다’는 잘못된 주장 제시에 할애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는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에서 라마포사 대통령을 마주한 자리에서 준비해 온 영상과 기사들을 꺼내 들며 이같은 주장을 펼쳤다”고 전했다. 남아공 경찰청 공식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 해 동안 발생한 전국 살인 사건은 총 2만6232건이며 이 가운데 농장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은 44건, 피해자가 실제 농장주인 경우는 8명에 불과하다. 남아공 내 폭력 범죄 피해자의 대다수는 흑인 빈민층이다.
남아공 여론은 라마포사의 대응을 ‘침착했다’고 평가하면서도, 굳이 이런 모욕적 상황을 감수하면서까지 미국을 방문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회의론도 제기됐다.
남아공 매체 데일리 매버릭의 백인 칼럼니스트 레베카 데이비스는 “라마포사는 ‘젤렌스키처럼 굴지 말라’는 메시지를 수없이 받은 상태에서 미국에 갔다”며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냉정을 유지했다”고 평가했다. 데이비스는 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지난 2월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 중 격앙된 언사를 쏟아낸 일을 빗대며 이같이 밝혔다.
그러나 남아공 시민들 사이에선 비판적 시각도 있다. 요하네스버그 시내에서 만난 40세 노점상 조합원 소벨로 모사는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우린 이 나라에 백인 학살 따윈 없다는 걸 안다”며 “그런데도 그런 말을 듣고도 참고 있으려고 미국까지 갈 필요가 있었느냐”고 말했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이번 방문에 인기 백인 골프 선수들을 대표단에 포함시키며 설득 전략을 짰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을 거론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백인 학살’이라는 자신만의 의제에 집중했다는 지적이다.
크리스핀 피리 남아공 외교부 대변인은 “대통령은 원래 싸우는 성격이 아니다. 차분하고 사실 중심적으로 접근한다”며 “두 대통령이 대화를 나눈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지 대학생 쿠다콰시 음그와리리는 “트럼프는 사실을 확인할 시간조차 없는 순진한 사람 같다”며 “지금은 미국 내부 문제만으로도 바쁠 텐데 왜 이런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