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사기 조직이 노린 표적, 부유하고 디지털에 익숙한 특성이 약점

파이낸셜타임스가 지난달 26일(현지시각)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국제 사기방지연합과 페드자이의 조사 결과 2023년 싱가포르 사기 피해자 한 사람당 평균 손실액이 4031달러(약 552만 원)으로 전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이는 2위인 스위스의 3767달러(약 516만 원), 3위 오스트리아의 3484달러(약 477만 원)보다 높은 수준이다. 2024년에는 손실액이 줄어 6위로 순위가 내려갔지만, 여전히 약 2000달러(약 2000달러(약 274만 원)의 높은 피해액을 유지했다. 같은 기간 미국이 약 4000달러(약 548만 원)으로 1위를 차지했다.
◇ 연간 11억 달러 피해, 신고율은 3분의 1에 불과
싱가포르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사기 때문에 생긴 총 손실액은 11억 싱가포르달러(약 1조 1700억 원)에 이르러 전년보다 70% 늘었다. 신고한 사기 사건은 5만 1501건으로 전년보다 10% 증가했다. 국제 사기방지연합은 실제 피해 규모가 훨씬 클 것으로 추정한다며, 싱가포르 피해자의 3분의 2 이상이 자신의 경험을 신고하지 않는 것으로 분석했다고 밝혔다.
대부분 사기 사건은 2000싱가포르달러(약 213만 원) 미만의 손실을 기록했지만, 수천 명이 평생 모은 돈을 은행 직원이나 공무원으로 가장한 사기꾼에게 넘겨주기도 했다. 인터폴 금융범죄 담당 부국장 닉 코트는 "동남아시아의 방대한 콜센터가 이러한 활동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며 "이 지역을 로맨스, 사칭, 피싱 사기의 온상"이라고 말했다.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에서 운영하는 거대한 사기 조직 본거지들이 주로 싱가포르를 표적으로 삼고 있으며, 이들 본거지에서는 인신매매 피해자들이 강제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일반적인 사기 수법으로는 전자상거래 사기, 취업 사기, 로맨스 사기, 정부 공무원 사칭 사기, 악성코드 지원 사기, 비즈니스 이메일 침해 사기 등이 있다.
일례로 78세 배우인 로렌스 팡은 데이트 웹사이트에서 만난 필리핀 여성 미카에게 속아 거의 4만 싱가포르달러(약 4267만 원)의 암호화폐를 전자상거래 벤처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입었다. 팡은 "내 나이 또래의 많은 사람처럼, 나는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메시지를 받는 데 익숙하다"며 "하지만 이건 훨씬 더 교묘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 인공지능·딥페이크 활용한 고도화한 수법 등장
최근에는 사기꾼들이 인공지능과 딥페이크 비디오를 활용한 더욱 정교한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싱가포르 통화청은 지난 3월 인공지능 도구를 사용해 규제 공무원을 사칭하고 피해자에게 기업 은행계좌에서 돈을 이체하도록 지시하는 사기꾼들에게 경고했다. 당국에 따르면 싱가포르 대부분 피해자들은 메타가 소유한 페이스북, 왓츠앱, 인스타그램을 통해 사기꾼들과 접촉한다.
싱가포르 최대 은행 중 하나인 OCBC의 법률 및 컴플라이언스 책임자인 로레타 유엔은 "은행에 문의할 때쯤이면 피해자들은 이미 너무 심한 충격에 빠져 있어 특히 로맨스, 투자, 정부 사칭 사기의 경우 그들이 송금하는 것을 막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범죄자가 훔친 자금을 싱가포르 은행 시스템에서 이체하는 데는 일반적으로 약 30분이 걸리는 것으로 파악했다.
사기가 너무 만연해져서 싱가포르 정부는 가해자에게 체벌을 하는 것에 대해 논의하기까지 했다. 싱가포르 은행협회의 사기 위원회 위원장인 로레타 유엔은 "우리는 채찍질이 강력한 억제 수단이라고 믿는다"며 "그것은 억제 요인인 동시에 응보의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싱가포르인들이 사기에 특히 취약한 이유에 대해 자산 회수 전문가는 "그들은 부유하고 순진하다"고 분석했다. 온라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자연스럽게 권위에 순응하는 도시국가 거주자들의 특성이 사기꾼들에게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정부 관료를 사칭한 사례만 1500건 이상 보고했으며, 일부 사기꾼들은 사기방지센터의 경찰관으로 가장하여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기도 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