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승률 40% 넘어...자본 통제와 긴축적 통화 정책 여파

6일(현지시각) 미국 경제 매체 CNBC에 따르면, 루블화는 올해 들어 현재까지 40% 이상 상승하며 2025년 세계에서 가장 수익률이 높은 통화가 됐다. 이는 지난 2년간의 급격한 통화가치 하락을 뒤집은 것으로 시장의 이목을 끌고 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 루블화 강세에 대해 외국인 투자자들의 신뢰 회복 때문이라기보다 자본 통제와 긴축적 통화정책의 영향이라는 답을 내놨다. 여기에 미국 달러화의 전방위적인 약세는 덤이다.
웰스파고의 브렌던 맥케나 이코노미스트 겸 외환 전략가는 CNBC와의 인터뷰에서 "루블화 상승의 배경에 러시아 중앙은행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 자본 통제 및 외환 규제 강화, 러시아-우크라이나 간의 평화협상 진전 시도 등의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고물가 억제를 위해 기준금리를 21%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높은 차입 비용이 러시아 기업들의 수입 활동을 위축시키고, 이에 따라 외화 수요도 줄었다고 분석했다.
르네상스 캐피털의 안드레이 멜라셴코 이코노미스트는 "소비 부진에다 루블화 공급이 충분한 상황에서, 러시아 수입업체의 외화 수요가 줄어들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외화 수요 감소로 은행들이 달러화나 중국 위안화를 사기 위해 루블을 매도할 필요가 줄어들면서 루블화 가치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러시아 수출업체들은 루블화로 수출 대금을 지급받아야 하며, 달러로 받은 대금도 루블로 환전해야 하기 때문에 루블화 수요가 늘고 있다. 반면 수입업체들은 외국산 상품 구매를 줄이며 루블을 달러로 바꿀 필요성이 줄어든 상황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루블화가 올해 강세를 보이는 또 다른 핵심 요인은 러시아 수출업체들, 특히 석유 산업에서 외화 수익을 루블로 환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정부는 대형 수출업체들이 외화 수익의 일정 부분을 국내로 송환해 현지 시장에서 루블로 환전할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CBR)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러시아 주요 수출업체들의 외화 매도 규모는 총 425억 달러로, 직전 4개월 대비 약 6% 증가했다.
존스홉킨스대 스티브 행키 응용경제학 교수는 중앙은행의 통화량 축소도 루블화 강세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2023년 8월에는 CBR의 통화 공급 증가율이 연 23.9%에 달했으나, 올해 1월 이후에는 -1.19% 수준으로 감소세로 전환했다"고 설명했다.
웰스파고의 매케나 이코노미스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 이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평화 협상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시장에 일부 낙관론이 형성됐다"고 밝혔다. 그는 "자본 통제 조치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경제의 국제사회 재편입 기대가 루블화 표시 자산으로의 자금 유입을 유도하면서 통화 가치 강세를 어느 정도 뒷받침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그렇지만 최근의 루블화 강세 흐름이 지속되기는 어렵다고 봤다. 러시아 수출 경제의 핵심 축인 유가가 올해 들어 큰 폭으로 하락하면서 외화 유입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르네상스 캐피털의 멜라셴코는 "현재 루블은 고점에 근접해 있으며 조만간 약세로 전환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유가가 크게 하락한 만큼, 수출 수익 감소와 외화 매도세 축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최근 별다른 성과 없이 진행되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평화 협상이 합의점을 찾아도 루블화의 추가 강세를 촉발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웰스파고의 매케나는 "실질적인 평화 합의가 이뤄지면 그동안 루블화 강세 요인이었던 외환 규제 등 통제가 해제되면서 루블화 가치가 오히려 약세로 돌아설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정전이나 평화협상이 성사될 경우 루블이 빠르게 하락할 수 있으며, 이와 동시에 자본 통제가 완전히 해제되고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신속히 인하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수정 기자 soojung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