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환경 규제와 폐기물 처리 산업의 구조적 문제 부각

이번 소송은 러시아에서 폐기물 처리 계약을 맺은 글로벌 기업과 업체, 그리고 환경당국 간의 법적 분쟁이 확대되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고 지난 9일(현지시각) 러시아 매시뉴스(mashnews.ru)가 보도했다.
◇ 삼성 러시아 공장, 폐기물 처리 계약 분쟁
삼성 러시아 법인은 2021년과 2022년에 러시아 환경청이 요구한 환경 부담금(생태세)을 직접 납부한 뒤, 이 비용을 폐기물 처리 계약을 제대
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오리스 프롬에 돌려달라며 소송을 냈다. 소송 금액은 2억 1880만 루블이다. 삼성 측은 "폐기물 처리 계약을 맺었지만, 오리스 프롬이 의무를 다하지 않아 환경청 부담금이 생겼다"고 주장한다. 첫 공판은 7월 3일 모스크바 중재법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러시아 환경청은 2016년 도입된 '생산자 책임 확대(EPR)' 제도에 따라 제조사가 직접 폐기물을 처리하거나 처리업체에 맡기지 않으면 환경 부담금을 부과한다. 이 제도는 러시아에서 제품을 만들거나 수입하는 모든 법인과 개인사업자에게 적용된다. 삼성은 폐기물 처리를 오리스 프롬에 맡겼으나, 환경청은 오리스 프롬의 처리 실적을 인정하지 않고 삼성에 부담금을 부과했다.
오리스 프롬은 "환경청의 요구가 불합리하다. 2023년 불법적으로 진행된 검사 결과가 이미 취소된 적이 있다"며 맞소송을 준비 중이다. 오리스 프롬은 "환경청이 폐기물 처리 실적을 인정하지 않고 고객사에 부담금을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환경청을 상대로도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삼성 러시아 법인은 환경청을 상대로 부담금 부과가 불법임을 확인해 달라는 소송을 냈고, 2주 뒤에는 오리스 프롬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추가로 제기했다. 오리스 프롬 역시 환경청을 상대로 부담금 부과가 불법임을 확인해 달라는 소송을 진행 중이다.
◇ 러시아 폐기물 처리 산업의 구조적 문제와 환경청 규제
이번 소송은 러시아 폐기물 처리 산업의 구조적 문제와 환경청 규제의 복잡성을 뚜렷이 드러낸다. 러시아는 세계에서 7번째로 많은 폐기물이 나오는 나라로, 한 해 동안 약 7000만 톤의 고형 폐기물이 발생하며, 모스크바에서만 2500만 톤이 배출된다. 그러나 전체 폐기물의 90% 이상이 매립되거나 나대지에 버려지고, 실제로 재활용되는 비율은 10%에 그친다.
러시아 정부는 2014년 '러시아 연방법 458호'로 모든 생산업체에 폐기물 처리 의무를 부과했고, 2016년에는 '러시아 연방법 89호'를 고쳐 지역정부에 폐기물 재활용 시설 설치 의무까지 추가했다. 하지만 처리 인프라와 분리수거 인식은 여전히 부족하다. 러시아에는 현재 243개의 폐기물 처리시설, 50개의 소각장(절반은 노후화로 운영 중단)이 있지만, 현대식 재활용 공장은 거의 없고, 인프라가 부족해 일부 지역에만 처리시설과 수집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폐기물 처리시설과 소각장은 크게 부족하다.
이런 환경에서 환경청의 규제는 점점 더 강해지고, 처리업체와 제조사 사이에서 책임을 두고 분쟁이 잦다. 오리스 프롬은 "환경청이 불법적으로 검사한 결과를 근거로, 이미 취소된 사건을 다시 들춰 부담금을 부과하는 등 행정적 불합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오리스 프롬과 환경청 간 분쟁의 시작은 2023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환경청은 모스크바 주 검찰청과 협의해 오리스 프롬에 대한 불시 검사를 실시했고, 검찰은 환경청의 검사가 권한을 넘어섰다고 판단해 검사 결과를 취소했다. 오리스 프롬은 "시민 이요프라는 인물의 항의가 검사의 근거였으나, 이 인물의 실체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오리스 프롬은 이후 환경청이 자신들을 폐기물 처리업체 명단에서 배제하려 하자 이를 불법이라고 주장하며 법원에 소송을 냈고, 올해 4월 법원은 오리스 프롬의 손을 들어주었다. 환경청은 이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준비 중이다.
◇ 전문가와 업계의 평가
러시아 법률 전문가 스타니슬라프 이사코프(SSP-콘설트)는 "러시아 환경 부담금 제도는 제조사가 직접 폐기물을 처리하거나 처리업체에 맡기지 않으면 부과된다"고 설명했다. 오리스 프롬의 대표 변호사 일리야 콜로메예츠는 "환경청이 이미 취소된 검사를 근거로 부담금을 부과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업계에서는 러시아 환경 규제가 강해지는 가운데, 처리업체와 제조사 사이에서 책임을 두고 앞으로도 분쟁이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 폐기물 처리 시장은 앞으로 500억 루블(약 8500억 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보이며, 재활용 산업이 가장 크게 성장할 분야로 꼽힌다. 하지만 인프라가 부족하고 행정적 불확실성이 커서 외국 기업이 진출하거나 운영하는 데 리스크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편 오리스 프롬은 2001년 모스크바에 설립된 폐기물 처리업체로, 2024년 기준 매출 99억 루블(약 1697억 원), 순이익 3억 2100만 루블(약 55억 원)을 기록했다. 삼성 러시아 법인은 2007년 칼루가주에 설립되어 그간 텔레비전과 가전제품을 생산해왔으나, 2022년 3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으로 잠시 가동을 멈췄다. 이후 일부 생산이 재개됐으나, 현재는 주로 수출용으로만 운영되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삼성 공장이 러시아 정부에 넘어갈 수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번 소송은 단순한 계약 분쟁을 넘어 러시아 환경 규제와 폐기물 처리 산업의 구조적 문제를 뚜렷이 보여준다. 러시아는 폐기물 처리 인프라와 분리수거 인식이 부족한 가운데, 환경 규제만 강해지면서 제조사와 처리업체 사이에서 책임을 두고 분쟁이 잦다. 이번 사건은 러시아에 진출한 글로벌 기업뿐 아니라, 앞으로 러시아 폐기물 처리 시장에 관심을 가진 기업에도 중요한 참고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