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SJ에 따르면 최근 미국에서 소비자들은 물가 상승이 관세 때문인지, 인플레이션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히 기업들의 이윤 확대 전략 때문인지 판단하기 어려워하는 분위기다.
이같은 ‘무역전쟁발 안개’ 속에서 소비자들의 구매 결정도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필라델피아에 거주하는 59세의 엔지니어 피터 블랫은 최근 한 취미용품 매장에서 중국산 원격조종 자동차를 189.99달러(약 26만1000원)에 집어 들었을 때 매장 직원이 "이건 관세 이전 가격"이라며 새 가격표를 붙이려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는 “이 제품은 몇 달 전부터 있던 것이어서 관세 영향을 받을 리 없다고 생각해 그냥 계산대로 갔다”며 결국 원래 가격에 구매했다고 설명했다.
WSJ는 “관세가 실제 가격에 얼마만큼 영향을 줬는지 소비자가 직접 파악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며 “이 때문에 기업들도 가격 인상의 이유를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대중국 무역협상이 타결됐다고 발표하면서 최대 145%에 달했던 관세율을 55%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밝혔지만 일부 품목에 대해서는 여전히 30% 수준의 제2차 관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동시에 미 연방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국가들을 상대로 부과한 대규모 관세도 현재로선 계속 유지해도 된다고 판결했다.
이같은 상황은 소비자들의 불신을 더욱 키우고 있다.
미국 컨설팅회사 커니가 지난 5월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가격 인상 원인을 묻는 질문에 소비자의 약 75%가 ‘관세’를 꼽았고, 같은 비율이 ‘전반적인 인플레이션’을 지목했다. ‘브랜드나 소매업체의 탐욕’이라고 답한 소비자도 29%에 달했다.
실제 일부 기업은 관세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주방용품 브랜드 메이드 인 쿠크웨어는 가격을 인상한 반면, 다른 브랜드 헤리티지 스틸은 “아직 가격을 올리진 않았지만 관세로 인해 원가가 25~50%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관세와 가격의 상관관계를 명확히 밝히는 기업도 있지만 그런 설명이 소비자에게 위안이 되지는 않는다. 미시간주 프랭클린에 사는 디지털 마케터 코트니 스미스는 지난달 인스타그램 광고를 통해 자동 다림질 기계를 179달러(약 24만6000원)에 구입하려 했으나 결제 직전 522달러(약 71만7000원)가 청구되는 것을 확인하고 구매를 취소했다. 제품 가격 외에 약 300달러(약 41만2000원)가 ‘관세 및 배송료’ 항목으로 청구됐기 때문이다.
기기를 제조한 스캐노버스의 윌리엄 프리스 최고경영자(CEO)는 “기기가 중국에서 생산돼 당시 기준으로 145% 관세가 적용됐다”며 “게다가 배송료에도 관세가 부과됐다”고 설명했다.
일부 온라인 판매업체는 아예 관세 항목을 명시해 소비자에게 전달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온라인 DVD 전문점 디아볼릭DVD는 지난 4월부터 일부 수입 상품에 대해 10%의 관세 수수료를 따로 부과했지만 관세가 부과되지 않은 상품에도 수수료가 붙은 사실이 뒤늦게 확인되자 구매자 전원에게 스토어 크레딧을 제공했다.
오하이오주 그래빌에 사는 31세의 낚시 애호가 브렌던 그래페오는 팟캐스트 '태클 토크'를 통해 관세로 낚싯대와 릴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이야기를 접한 뒤 실제로 일부 장비 가격이 기존 100~200달러(약 13만7000~27만5000원)에서 20~30달러(약 2만7000~~4만1000원) 정도 오른 것을 목격했다.
그래페오는 “관세가 기업의 원가를 올리는 것은 이해하지만 관세를 핑계 삼아 기본 가격 자체를 높이려는 움직임도 분명 있다”며 “한 번 오른 가격은 관세가 철회되더라도 다시 내려갈 가능성이 낮다”고 말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