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이력서가 홍수를 이루면서 미국 채용 시장이 혼란에 빠졌다.
AI로 자동 생성된 수많은 지원서가 채용담당자들의 업무 부담을 높이고 있으 이로 인해 기업과 구직자 모두 신뢰와 효율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시간 만에 400건”…AI가 만든 ‘이력서 폭탄’
미국 유타주의 인사컨설턴트 케이티 태너는 최근 원격근무가 가능한 기술직 공고를 링크드인에 게시한 직후 뜻밖의 상황에 직면했다. 하루 만에 600명이 지원했고 며칠 뒤에는 1200건을 넘겼다. 결국 공고는 조기 마감됐다. 그는 “미친 상황”이라며 “지원서가 폭주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링크드인은 최근 1년간 지원서 제출 건수가 45% 이상 증가했으며 현재 분당 평균 1만1000건의 지원서가 접수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같은 급증의 배경에는 챗GPT와 같은 AI 툴의 자동화 기능이 자리하고 있다. 사용자는 단 몇 초 만에 공고문에 나온 모든 핵심어를 포함한 이력서를 만들 수 있다.
심지어 일부는 비용을 지불해 AI 에이전트를 이용해 자동으로 구직 활동을 맡기는 방식도 사용 중이다. 업계 전문가인 홍 리는 “지원자 쓰나미가 앞으로 더 거세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AI 대 AI’ 채용 전쟁…가짜 신원 지원자도 급증
기업들은 이에 맞서 채용과정에 AI를 적극 도입하고 있다. 스콧 보트라이트 치폴레 최고경영자(CEO)는 이달 열린 콘퍼런스에서 “AI 챗봇 아바카도를 통해 채용에 걸리는 시간이 75% 단축됐다”고 밝혔다.
AI 화상면접 플랫폼인 하이어뷰는 영상 인터뷰에서 AI가 지원자의 답변을 분석해 점수를 매기는 기능을 제공하고 있으며 패턴 인식과 기억력, 감정지능 등을 평가하는 게임형 시험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지원자들이 AI를 활용해 ‘속이기’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는 ‘AI 대 AI의 싸움’이 되는 셈이다.
더불어 가짜 신원을 사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미국 법무부는 지난 1월 북한 국적자들이 가짜 신분으로 미국 IT업체에 원격 근무자로 고용됐던 사건을 발표했다. 인사 기술 분석가 에미 치바는 “최근 들어 가짜 신원을 이용한 사례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플랫폼도 대책 마련…그러나 신뢰 회복은 요원
링크드인은 최근 구직자와 채용자가 보다 정교하게 맞춤 검색을 할 수 있도록 AI 기반 에이전트를 도입했다. 지난해 10월 공개된 이 기능은 자동 메시지 작성, 후보군 선별, 대화 기반 스크리닝 등이 가능하다. 올해 1월에는 유료 회원을 대상으로 이력서와 공고 간 적합도를 미리 확인할 수 있는 기능도 제공했으며 이를 통해 ‘적합도 낮은’ 공고에 대한 지원율이 1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AI 채용이 차별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은 AI 채용을 ‘고위험군’으로 분류해 엄격히 규제하고 있으며, 미국도 일반 차별금지법을 통해 대응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다. 마이어 브라운 로펌의 마르시아 굿맨 변호사는 “모든 고용주는 차별을 원치 않지만, 실제로는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결국 진짜 실력과 진정성으로 돌아갈 것”
구직자들은 채용절차의 자동화가 오히려 성의 있는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무시한다고 느끼며 좌절하고 있다. 채용 에이전시 신디케이트블루의 알렉사 마르시아노 대표는 “지원자들은 AI가 하는 선별에 대응하기 위해 맞춤형 서류를 작성하느라 시간과 노력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 중심 진로지도를 맡고 있는 경력 코치 제레미 쉬펠링은 “학생들이 절박해질수록 유료 AI 도구에 의존하게 된다”며 “이런 상황이 당분간 이어지겠지만 결국은 양측 모두 진정성과 실력을 바탕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그때까지는 시간과 자원, 돈이 낭비되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