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행정부, 무역협상서 '입법 보류' 요구…'자국 기업 차별·아시아 확산' 우려
한국 "공정경쟁 위해 추진" 맞서…관세·디지털 규제 얽히며 통상 갈등 고조
한국 "공정경쟁 위해 추진" 맞서…관세·디지털 규제 얽히며 통상 갈등 고조

외신들은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 행정부 고위 인사들이 한국 협상단에 이 같은 요구를 전달했다고 전했다. 플랫폼법과 관련해 한국 국회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 10건 이상의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미국은 지난 월요일 비공개 협상에서도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등을 통해 같은 요구를 거듭 전달했다. 구글과 애플, 메타 같은 미국의 거대 기술기업들과 이들을 회원사로 둔 미국 상공회의소는 한국의 입법안이 미국 기업을 차별한다며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특히 미국은 한국의 입법이 유럽연합(EU)의 디지털시장법(DMA)처럼 아시아 지역으로 규제가 퍼지는 '브뤼셀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고 보고 경계하고 있다.
◇ 美, 관세 위협에 '브뤼셀 효과' 차단까지…전방위 압박
미국의 압박에도 한국 정부는 물러서지 않고 있다. 2023년에 발의된 '플랫폼 경쟁 촉진법'을 근거로 특정 기술기업을 독점 사업자로 지정해 막대한 벌금을 물리는 입법을 계속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이 법안은 시장지배적 플랫폼 사업자의 '자사 서비스 우대'나 '다른 플랫폼 이용 제한'과 같은 불공정 행위를 금지하고, 위반 시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을 담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특정 국가를 겨냥한 법이 아니며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이 목적이라고 설명하지만, 시장 점유율 기준상 미국의 거대 기술기업이 주요 규제 대상에 포함될 수 있어 반발을 사고 있다.
미국이 무역 협상 테이블에서 반독점 규제 문제를 꺼내 든 배경에는 자국 기업 보호라는 최우선 과제가 놓여 있다. 한국의 규제가 자국 기술기업의 시장 경쟁력을 해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이를 저지하려는 것이다. 다만 국내 정보기술(IT) 업계 일각에서도 디지털경제연합 등을 중심으로 이 법안이 혁신을 막고 산업 생태계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반대 목소리가 나온다.
◇ 한국 "시장 지배력 남용 막아야"…입법 추진 강행
반면 한국 정부는 이재명 대통령의 '거대 기술기업 규제 강화' 공약에 따라 공정한 디지털 경제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플랫폼 규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거대 플랫폼의 시장 지배력 남용을 막고, 자주적 정책 결정으로 국내 소비자와 중소기업을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플랫폼 반독점 법안을 무역 협상 카드로 사용하려는 미국과 공정 경쟁 원칙을 지키려는 한국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양국 간 통상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관세·비관세 장벽 문제에 더해 디지털 규제까지 복잡하게 얽히면서 한·미 경제 관계 전반에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한국의 최종 입법 여부와 미국의 대응 수위에 따라 양국 통상 관계가 중대 갈림길에 설 전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