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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티 내지 마라”…해외서 미운털 박힌 美 관광객, 조심 행동법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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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 티 내지 마라”…해외서 미운털 박힌 美 관광객, 조심 행동법 확산

지난달 15일(현지시각)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대규모 관광 반대 시위에서 참가자들이 '관광을 줄여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지난달 15일(현지시각)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대규모 관광 반대 시위에서 참가자들이 '관광을 줄여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들고 있다. 사진=로이터

여름 휴가철을 맞아 해외여행에 나서는 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티를 내지 않는 법’이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미국의 대외정책에 따른 반미 정서와 함께 스페인, 이탈리아 등 남유럽 지역에서는 이른바 ‘과잉관광’에 반발하는 시위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여행자들은 자국민이라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말투와 옷차림까지 신경 쓰는 상황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여행사와 여행객들의 말을 인용해 “최근 미국인 여행객들이 해외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미국 앨라배마주 헌츠빌에 사는 53세 여성 킴 오스본은 영국에서 열리는 록밴드 블랙사바스의 마지막 공연을 보기 위해 딸과 함께 여행을 계획하면서 “남부 사투리가 너무 티 나기 때문에 말수를 줄이고,주위를 지나치게 둘러보지 않으려 노력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 반미 정서·오버투어리즘 겹쳐…“관광객 티 내지 마라”


이 같은 경계심은 단순한 개인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란 지적이다. 미 국무부는 최근 이란 공습 이후 “해외에서 미국인을 상대로 시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여행경보를 발령했다. 여행 마케팅 기업 MMGY 글로벌이 지난 4월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미국인의 절반 이상이 “자국의 무역정책 때문에 미국인 관광객이 해외에서 환영받지 못할 수 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행사 MEI-트래블에 소속된 여행 컨설턴트 헤더 그로딘은 “미국이 세계 무대에서 가장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많은 여행객들이 인식하고 있다”며 “관세와 비자 거부 등 이슈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관광객 유입으로 인한 주거비 상승, 환경 훼손 등에 반발하는 목소리도 크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포르투갈 리스본 등 남유럽 주요 도시에서는 최근 수주 간 관광 반대 시위가 이어지고 있으며 여행사들은 “출발 전 현지 뉴스나 시위 정보를 확인하고 위험 지역은 피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 “검소한 옷차림·조용한 태도·짧은 현지어”…관광객 생존 전략


이런 분위기 속에 여행사들은 고객들에게 보수적인 복장과 조용한 행동을 주문하고 있다. 인트레피드 트래블의 리 브반스 미주 총괄은 “현지에서 미국 대학 로고나 뉴욕 양키스 모자를 쓴 외국인을 보는 것은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면서도 “의심스러울 때는 눈에 띄지 않는 색상의 옷을 입고 지역 종교시설 등을 방문할 때는 관습을 따르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또 현지인과 대화할 때 정치적 질문이 나올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 사전에 입장을 정리해둘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지난 4월 스코틀랜드를 방문한 미국 오리건주에 사는 교육컨설턴트 도로시 제맥은 “먼저 미국의 외교 정책에 대해 내 생각을 이야기하면 상대방이 긴장을 풀었다”고 말했다.

한편, 텍사스주 프리스코에 거주하는 32세의 애비 드레이크는 지난 3월 어머니와 함께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여행하면서 “굳이 미국인임을 숨기진 않았지만 소매치기나 사기 위험을 줄이기 위해 너무 관광객처럼 행동하지 않으려 했다”고 밝혔다.

◇ 여행지 선택부터 언행까지…“좋은 인상 남기는 것이 최선”


일부 여행사는 아예 남유럽 대신 발칸, 발트 해 인근 국가 등 관광객을 반기는 분위기가 있는 지역을 추천하고 있다. 유럽 전문 여행사 제이웨이 트래블의 마케팅 책임자 찰리 네빌은 “알바니아나 에스토니아 같은 지역은 미국인 관광객을 환영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로딘은 “현지 언어로 기본 인사말 정도를 익히고 작은 가게에서 와인이나 올리브유 같은 물건을 사는 것만으로도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며 “미국인을 대표한다는 마음으로 행동하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