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초점] '라벨갈이'에 '제3국 환적'까지…中 핵심광물 수출통제, 사실상 무력화

글로벌이코노믹

[초점] '라벨갈이'에 '제3국 환적'까지…中 핵심광물 수출통제, 사실상 무력화

美, 태국·멕시코서 안티모니 수입 3년치 넘겨…中 수출량은 되레 급증 '환적' 명백
중국계 현지법인 동원, '미술용품' 위장…가격 올라도 공급망 유지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페드로에 위치한 로스앤젤레스 항구에서 2025년 5월 1일, 선박이 하역되는 동안 미국 국기가 컨테이너 옆에서 펄럭이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페드로에 위치한 로스앤젤레스 항구에서 2025년 5월 1일, 선박이 하역되는 동안 미국 국기가 컨테이너 옆에서 펄럭이고 있다. 사진=로이터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이 깊어지는 가운데, 중국의 핵심 광물 수출 통제 조치가 사실상 무력화하고 있다. 안티모니, 갈륨 등 첨단산업에 꼭 필요한 광물의 세계 공급을 주도하는 중국이 수출 금지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미국이 태국과 멕시코 등 다른 나라를 통해 이를 우회 수입하는 정황이 세관과 선적 기록에서 포착됐다고 로이터통신이 지난 9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중국은 미국의 반도체 산업 규제에 맞서 지난해 12월 3일부터 배터리, 반도체, 군사 기술에 꼭 필요한 소재인 안티모니, 갈륨, 저마늄의 대미 수출을 전면 금지했다. 하지만 이런 조치에도 미국의 관련 광물 수입량은 금수 이전 수준을 회복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 중국계 기업이 얽힌 사실도 드러났다.

◇ '태국·멕시코' 경유, 노골적인 우회 정황


무역 데이터는 뚜렷한 우회 경로를 보여준다. 미국 세관에 따르면 미국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태국과 멕시코에서 수입한 산화 안티모니는 3834톤(t)으로, 이전 3년 치를 합친 양을 웃돈다.

중국 세관 데이터를 보면, 2023년까지 중국 안티모니 수출 상위 10위권에 들지 못했던 태국과 멕시코가 올해 들어서는 상위 3대 수출 시장으로 떠올랐다. 두 나라 모두 의미 있는 양의 안티모니를 직접 채굴하지 않으며, 각각 제련소 한 곳만 보유하고 있다는 점은 '환적' 정황을 짙게 한다.

우회 수입 방식은 업계 관계자의 증언으로 더욱 구체화한다. 미국 갤런트 메탈스의 리바이 파커 최고경영자(CEO)는 "중국 내 구매 대리인이 생산자로부터 물품을 확보하면, 해운 회사가 화물 라벨을 철, 아연, 미술용품 등으로 바꿔 붙인 뒤 다른 아시아 국가를 거쳐 배송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 과정이 완벽하지 않고 비용도 많이 들지만, 한 달에 약 200kg의 갈륨을 이런 방식으로 들여온다고 덧붙였다. 이 과정에서 운송비와 위험이 늘어 광물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중국계 기업이 우회 무역에 깊이 관여한 사례도 확인됐다. 중국 안티모니 생산업체 '영선 케미칼스'의 태국 자회사인 '타이 유니펫 인더스트리스'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5월까지 3366톤(t)의 안티모니 제품을 태국에서 미국으로 선적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배 늘어난 물량을 기록했다. 이 화물의 최종 구매자는 텍사스에 있는 '영선 앤 에센'으로, 이 회사는 중국의 금수 조치 이전 '영선 케미칼스'에서 직접 물품을 수입했다.

◇ 中 당국 단속 착수했지만…실효성엔 의문


현재 미국 법으로 중국산 광물을 제3국을 통해 수입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으며, 중국 기업 역시 미국 외 국가로는 따로 허가만 있으면 수출할 수 있다는 제도의 맹점이 있다. 중국 당국 역시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 중국 상무부는 "일부 해외 단체들이 국내 위법자들과 결탁해 수출 제한을 피하고 있다"고 발표하며 지난 5월부터 환적과 밀수 단속 활동을 시작했다. 법무법인 화이트 앤 케이스의 제임스 샤오 파트너는 "중국 법에 따라 심각한 위반은 밀수로 여겨져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으며, 최종 사용자를 확인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한 판매자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 시장에서 관련 광물 가격이 사상 최고치로 치솟으면서 위험을 감수한 밀거래는 계속되고 있다. 미국의 관련 광물 수입량은 수출 금지 이전 수준을 회복하거나 넘어설 전망이지만, 가격은 크게 올랐다. 디지털 선적 심사 플랫폼 퍼블리칸의 람 벤 시온 최고경영자는 "우회 무역의 패턴이 일관되게 나타난다"며 "중국 기업들이 규제를 피하는 데 매우 창의적"이라고 평가했다. 국제 공급망의 복잡성과 높은 이윤 때문에 중국의 단속 강화에도 우회 거래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벤 시온 최고경영자는 "중국이 모든 정책을 마련했어도, 그 집행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며 중국 당국의 통제력에 근본적인 도전이 제기됐음을 내비쳤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