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초점] '2025년의 벽' 앞에 선 일본 IT…기술자 늘어도 생산성은 G7 꼴찌

글로벌이코노믹

[초점] '2025년의 벽' 앞에 선 일본 IT…기술자 늘어도 생산성은 G7 꼴찌

4년간 인력 20% 늘었지만 부가가치 5%↑ 그쳐…미국은 39%↑
고질적 수주 개발·인력 편중 한계…'AI 전환'이 생존 가를 것
일본 IT 산업이 '2025년의 벽'이라 불리는 구조적 위기 앞에 섰다. 지난 4년간 기술 인력은 20% 급증했지만, 노동 생산성은 G7(주요 7개국) 중 유일하게 하락하며 꼴찌를 기록했다. 인력에 의존하는 낡은 수주 개발 방식의 한계를 극복하고 AI 기반의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하는 것이 생존의 관건으로 떠올랐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일본 IT 산업이 '2025년의 벽'이라 불리는 구조적 위기 앞에 섰다. 지난 4년간 기술 인력은 20% 급증했지만, 노동 생산성은 G7(주요 7개국) 중 유일하게 하락하며 꼴찌를 기록했다. 인력에 의존하는 낡은 수주 개발 방식의 한계를 극복하고 AI 기반의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하는 것이 생존의 관건으로 떠올랐다. 사진=로이터
일본 정보기술(IT) 산업의 노동 생산성이 주요 7개국(G7) 가운데 유일하게 하락하며 경쟁력에 비상이 걸렸다. 기술 인력은 크게 늘었지만, 그에 맞는 부가가치를 만들지 못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원인으로 꼽힌다.

20일(현지시각) 닛케이에 따르면 2019년부터 4년간 일본 IT 산업의 노동 생산성은 13%나 하락해 G7 국가 중 가장 큰 하락 폭이자 유일한 두 자릿수 감소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미국(27%)과 영국(9%)을 포함한 G7 4개국 생산성이 상승한 점과 뚜렷이 비교된다.

산업의 노동 생산성은 기업 총매출에서 재료비 같은 외부 비용을 뺀 부가가치액을 전체 취업자 수로 나눠 구한다. 일본생산성본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분석한 내용에 따르면, 일본 IT 산업의 생산성 저하가 뚜렷하다. 일본생산성본부의 기우치 야스히로 수석연구원은 "IT 산업은 일본의 디지털 전환(DX)을 뒷받침하는 핵심 산업이어야 함에도 낮은 생산성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 인력에 기댄 낡은 사업방식 '발목'


생산성 부진의 핵심 원인으로는 효율과 확장이 어려운 노동집약적 사업 구조가 꼽힌다. 일본 특유의 수주형 시스템 통합(SI) 방식이다. 후지쯔, NEC, NTT데이터그룹 같은 대형 IT 기업들은 제조업체나 정부의 주문을 받아 맞춤형으로 시스템을 만드는 일을 주력으로 삼아왔다. 개발비는 투입 기술자 수와 개발 기간에 따라 정해진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기업들의 디지털 전환 수요가 폭발하자 IT 기업들은 인력부터 경쟁적으로 늘렸다. OECD 자료를 보면 2023년 일본 IT 기업 취업자 수는 235만 명으로 4년 전보다 20% 급증했다.

하지만 인력 증가는 수익성 확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기술자 수는 크게 늘었지만, 부가가치액은 2019년부터 4년간 5% 증가에 그쳤다. 미국(39%)과 독일(12%)의 성장세와는 격차가 크다.

클라우드 중심의 세계 IT 사업 흐름에 뒤처진 탓이다. IT 인력의 불균형한 분포 역시 생산성 저하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정보처리학추진기구에 따르면 일본 IT 기술자의 74%가 IT 기업 소속이다. 정작 기술을 써야 할 소매, 제조 등 일반 기업의 IT 인력은 26%에 지나지 않아 개발을 외부에 맡길 수밖에 없다. 반면 미국과 유럽에서는 기업들이 자체 기술자를 중심으로 표준화 기술을 '조립·활용'하는 구조로 전환해 생산성을 높이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 내 많은 기업이 낡은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시장 전체의 디지털 전환도 더뎌지고 있다.

◇ '2025년의 벽' 위기…무역적자 넘는 디지털 적자


설상가상으로 일본은 '2025년의 벽'이라 부르는 구조적인 위기와 마주했다. '2025년의 벽'은 구형 시스템 급증, 기술자 고령화에 따른 대규모 은퇴, 신규 인력난(2025년까지 약 43만 명 부족)이 복합적으로 얽힌 문제다. 최악의 경우 한 해 최대 12조 엔(약 112조 원)의 경제 손실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산업 경쟁력 약화는 심각한 '디지털 적자'를 불렀다. 클라우드 서비스 이용료 등 해외에 지출하는 비용이 급증하면서 2024년 일본의 디지털 적자는 6조7000억 엔(약 62조7321억 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같은 해 기록한 무역 적자(5조4712억 엔)마저 넘어서는 규모다.

위기감 속에서 변화의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NTT데이터G는 기업용 시스템 개발 전 과정에 생성형 인공지능(AI)을 도입해 노동자 한 명당 생산성을 20% 높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비효율적인 맞춤 개발에서 벗어나 표준화·클라우드 같은 고부가가치 방식으로 서둘러 구조를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러한 체질 개선에 실패하면 일본 IT 산업은 인력이 늘어도 생산성은 주저앉는 이중고에 빠져 국제 경쟁력 하락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