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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이민단속에 LA 주민 ‘감금된 삶’…“단속차만 봐도 겁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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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이민단속에 LA 주민 ‘감금된 삶’…“단속차만 봐도 겁나”

지난달 6월 10일(현지시각) 연방 이민당국의 단속에 반대하는 시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카렌 배스 로스앤젤레스 시장이 도심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지난달 6월 10일(현지시각) 연방 이민당국의 단속에 반대하는 시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카렌 배스 로스앤젤레스 시장이 도심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추진 중인 이민단속 강화 조치로 인해 로스앤젤레스(LA) 지역 내 히스패닉계 사회 전반이 극도의 불안과 위축 상태에 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지역은 과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당시보다 더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왔다.

야후뉴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한 전면적 이민단속이 LA 시내 곳곳을 사실상 마비시켰다”며 “일상을 포기한 채 일·집·일로만 반복하는 주민들이 급증하고 있다”고 21일(현지시각) 보도했다.

◇ 빵 사러 가는 것도 무서워…단속차에 문 잠그는 상점들

야후뉴스에 따르면 최근 LA 시장 캐런 배스가 동부 LA 지역의 한 제과점을 방문했을 당시 내부에 사람이 있었음에도 문이 잠겨 있었고 배스가 시장임을 증명한 뒤에야 문을 열었다.

배스 시장은 “내 차가 단속차처럼 보여서 겁을 먹은 것 같았다”며 “도시에서 특정 차량만 봐도 시민들이 두려움을 느끼는 상황이 슬프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6월부터 이민세관단속국(ICE)을 대대적으로 동원해 LA 카운티를 포함한 남부 캘리포니아 일대에서 이민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LA타임스에 따르면 지난달에만 이 지역에서 2000명 이상이 체포됐으며 그중 다수는 범죄 전력이 없는 이들이었다.

◇ 시내 몰·식당 ‘유령도시’…시장·주지사도 우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LA 인근 벨시를 시찰하던 중 “쇼핑몰은 텅 비었고 주민들은 아예 거리로 나서지 않는다”며 “현지 자영업자들이 말하길, 코로나19 때보다 장사가 안 된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엘차풀린이라는 식당에서 일하는 둘세 마리아 카로는 “이젠 가족끼리 외출도 하지 않는다”며 “직장과 집만 오간다”고 전했다. 같은 식당 관계자 호세 프란시스코는 “이곳은 감옥처럼 느껴진다”고 덧붙였다.

주민들의 불안감은 단속 대상이 불법체류자에만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민 합법자나 미국 시민권자마저도 신분 확인 과정에서 임의로 체포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는 게 지역사회 반응이다.

◇ 시장, 정면대응 나섰지만 “더 강하게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배스 시장은 ICE가 매카서파크에 무장 병력을 투입한 7월 초, 산불 6개월 추모식 참석 일정을 취소하고 현장으로 직접 달려가 단속 책임자를 찾아 항의한 바 있다. 당시 배스는 “이게 대체 무슨 작전이냐. 당장 철수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현장을 지켜본 마이크 보닌 전 시의원은 “그녀는 연기한 게 아니라 정말 분노하고 있었다”며 “그날의 배스는 대놓고 ‘당신들이 우리 도시에 들어올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리더였다”고 말했다.

배스는 이날 식당 방문 중에도 스페인어 방송과 화상 인터뷰를 연달아 소화했고, 식당 고객들은 일제히 박수를 보내며 “Gracias, Alcaldesa(고마워요, 시장님)”를 외쳤다.

그럼에도 일부 주민은 배스의 대응이 여전히 부족하다고 비판한다. 변호사이자 활동가인 지나 자판타는 “지금 필요한 건 유감 표명이 아니라 구체적인 대응책”이라며 “지금 시장에게 필요한 건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히스패닉계 전체가 잠재적 단속 대상”…정치적 기회 vs 공포의 일상


트럼프의 이민 정책을 관장하는 톰 호먼 전 ICE 국장이 “외형만으로도 의심 사유가 된다”고 발언한 뒤 연방 판사가 LA 지역의 ‘이동 순찰 체포’를 일시적으로 금지하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배스 시장은 “내 전 남편이 멕시코계였고 내 가족 중에도 히스패닉계가 많다”며 “이런 단속이 전 히스패닉계 커뮤니티를 잠재적 표적으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단속은 범죄자, 마약밀매 조직, 갱단, 강간범과 살인자 등 위험한 인물을 체포하기 위한 것이며 피부색으로 단속하는 게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다.

야후뉴스는 “트럼프의 단속은 캘리포니아를 정면으로 겨냥했고 배스 시장은 이번 대응을 통해 2026년 재선 도전의 기반을 다지고 있다”며 “지금 LA는 트럼프식 이민 정책의 최전선”이라고 분석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