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버지는 이러려고 싸운 게 아니다'…키이우에 울려 퍼진 청년들의 외침

이 조치로 주요 도시 키이우, 리비우, 오데사, 드니프로 등에서 2000명을 넘는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등 대규모 항의 시위가 이어졌다. 파이낸셜타임즈(FT), CNN, 뉴욕타임스, 국내외 주요 매체가 이를 실시간으로 보도했다.
◇ 젤렌스키 권력 강화 시도, 반부패 기관 독립성 훼손 지적 받아
젤렌스키 대통령은 2019년 취임 후 여러 차례 정부 개편을 통해 권력을 강화해왔다. 이번 법안은 NABU와 SAPO를 대통령 직속의 검찰총장 루슬란 크라브첸코가 통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NABU 설립 취지는 부패 의혹에 독립적이고 투명하게 대응하는 데 있지만, 이번 법안은 기관의 독립권을 크게 제한한다는 점에서 반대가 많다.
NABU 국장 세멘 크리보노스는 최근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법안이 우리 기관의 독립성을 크게 훼손한다는 점을 대통령에게 분명히 알렸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측근에 대한 부패 조사가 진행되던 상황에서 나온 조치라, 대통령 권력 강화 의도로 해석된다.
한 정부 고문은 "이번 조치는 권력자가 반대 의견을 억누르고, 민주주의 원칙을 위협한다"며 "러시아와 맞서 싸우는 와중에 민주주의를 지키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나"라고 말했다.
◇ 시민사회·군인 포함 수천 명 시위, 서방 정상도 우려 전달
법안 서명 직후 키예프에서는 2000명이 넘는 시민과 군 전역자, 전투 부상 군인 등이 참여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대는 대통령에게 법안 거부권 행사를 촉구하며 '부끄럽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주최 측은 앞으로 수도 외에도 리비우, 오데사, 드니프로에서도 추가 시위를 계획 중이다.
서방 동맹도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같은 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유럽 이사회 의장 안토니우 코스타가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반부패 기관 독립을 보호하라고 촉구했다. G7 각국 대사들도 크라브첸코 검찰총장과 우크라이나 정보국장 바실 말류크와 만나 이번 결정 재검토를 요청했다.
서방 고위 외교관들은 "우크라이나 내부 문제를 공개적으로 지적하기 어렵다. 러시아가 이를 선전 도구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며 "젤렌스키 대통령의 이번 결정은 서방에 충격을 주고 있다"고 전했다.
◇ 6년간 쌓아온 반부패 개혁 후퇴 우려 커져
젤렌스키 대통령은 6년 전 취임 당시 국민에게 부패 근절을 약속하고 NABU 등 반부패 기관 설립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번 조치가 시행되면, 지난 10년간 이어온 부패 척결 노력과 독립적 사정 활동이 크게 약화될 수 있다.
국제투명성기구(TI) 우크라이나 사무소는 24일 “젤렌스키와 소속 의원들이 10년간 이어온 반부패 개혁 성과를 위협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현지 군인들도 “내부 갈등이 지속되면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군 사기가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우크라이나 군사정보국장 키릴로 부다노브도 텔레그램에 "내부 분열은 국가 패배를 부른다. 지혜와 책임감을 발휘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이번 법안은 대통령 측근인 체르니쇼프 전 부총리가 부패 혐의로 기소된 가운데 추진됐으며, 대통령 소속 정당에서 비상 소집령이 떨어져 많은 국회의원이 곧바로 의회로 복귀했고, 이 과정에서 친러시아 성향 의원과 야권, 티모셴코 전 총리 정당 등이 힘을 실어주며 법안이 통과됐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4일 새벽 현지 방송 연설에서 "러시아의 영향력 없이 반부패 기구들이 운영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NABU 국장이 법안이 기관 독립성을 훼손한다는 우려를 전달하자, 대통령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의회에 새로운 법안을 곧 내놓겠다고 밝혔다. 새 법안은 반부패 기관 독립을 보장하면서도 러시아의 간섭을 없애는 내용을 담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사태는 전쟁 중이지만 우크라이나 내부 권력 다툼이 민주주의 원칙과 국제적 신뢰를 위태롭게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앞으로 서방과 우크라이나 정부 간 협의 과정에서 어떻게 이 상황이 전개될지에 따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