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23억 달러 보조금에 LG·삼성SDI·SK온 등 한국 배터리 생태계도 ‘함박웃음’ 기대

이 현상은 2008~2010년 옥상 태양광 붐과 맞먹는 ‘제2의 에너지 혁명’으로 평가된다고 지난 23일(현지시각) 가디언이 호주 배터리 설치 현황과 전망을 전했다.
◇ 정부 보조금 시작 뒤 배터리 설치 급증
호주 연방 정부가 7월 1일부터 가정용 배터리 설치 비용의 30%를 보조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하자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크게 늘었다. 청정에너지 규제기관(CER) 집계에 따르면 개시 후 3주 동안 1만1536개의 배터리가 설치됐다. 하루 평균 1000건 이상이 설치된 셈이다.
태양광 분석업체인 SunWiz의 워릭 존스턴 전무는 “이번 배터리 확산은 과거 옥상 태양광 설치가 급증하던 시기와 비슷한 양상”이라며 “2024년까지 약 7만 5000개가 설치됐지만, 이번 지원책으로 설치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고 말했다.
에너지 효율 위원회 최고경영자 루크 멘젤도 “정부 지원 발표 뒤 배터리에 대한 관심이 전례 없이 높아졌다”고 전했다.
설치되는 배터리 평균 용량은 17킬로와트시(kWh)로, 기존 10~12kWh보다 크게 확대됐다. 적격 배터리는 5kWh부터 100kWh까지이며, 정부 지원은 최대 50kWh분에 한한다. 주로 정전 시 사용이 가능한 백업 전력 목적이 많다.
◇ 5년 이내 1만MW 설치 가능…석탄 발전 용량 절반 수준
에너지 시장 분석 업체 Green Energy Markets의 트리스탄 에디스 분석국장은 “이대로 설치가 이어지면 5년 안에 1만MW(메가와트) 주택용 배터리 용량이 쌓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호주 전체 석탄 발전 용량 약 2만MW의 절반에 달하는 수치다.
그는 “가정에 배터리가 늘면 낮에 태양광으로 생산한 전기를 저녁 시간에 쓸 수 있어 전력 수요가 컸던 피크 시간대에 가동되는 가스 터빈 부담도 줄인다”고 덧붙였다.
뉴사우스웨일스 주민들은 배터리를 연결해 전기를 모아 전력망에 공급하는 ‘가상 발전소’ 사업에 참여해 추가 수입도 얻고 있다.
◇ “태양광 후 두 번째 에너지 혁명”…배터리 가격도 점차 하락 전망
SunWiz의 존스턴 전무는 “이번 배터리 확대는 태양광에 이어 가정의 에너지 자립을 앞당기는 두 번째 혁명”이라고 평가했다.
청정에너지 위원회 소속의 콘 흐리스토둘리디스 분산에너지 책임자는 “지난 4년간 18만 5000개의 가정용 배터리가 설치됐으며 올해 말까지 30만 개를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한편, 호주 정부는 23억 달러 선행 예산 외에 2030~2031년까지 12억 달러(약 1조 6400억 원)를 추가로 지원할 계획이나, 급증하는 수요로 예산이 당초 예상보다 빨리 소진될 가능성도 있다. 다만 배터리 가격은 꾸준히 낮아져 보조금액은 향후 점차 조정될 전망이다.
평균 배터리 가격은 kWh당 1000~1200호주 달러(약 90만~108만 원)이지만, 정부 보조금을 받으면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 태양광과 배터리를 따로 구매하는 사례도 늘고 있으며, 기존 태양광 보유 가구에서 배터리만 추가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
호주 연방 에너지 장관 크리스 보웬은 “1만 명 이상이 가정용 배터리를 설치해 전기 요금을 최대 90%까지 줄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호주 가정용 배터리 설치 급증은 정부 지원과 국민의 에너지 비용 절감 요구가 맞물려 청정에너지 확대와 탈석탄 정책에 힘을 싣고 있다. 앞으로 5년 내 배터리 용량이 석탄 발전 용량 절반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은 호주 에너지 전환의 새 국면을 보여준다.
◇ 한국 기업들 수혜 예상
이런 흐름으로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 배터리 원·부자재부터 완제품까지 생상하는 한국기업들이 호주 가정용 배터리 붐의·간접적 수혜자로 떠오르고 있다.
우선 LG에너지솔루션은 ‘RESU(Residential Energy Storage Unit)’ 브랜드로 호주 가정용 배터리 시장에 직접 진출해 주택용 ESS(에너지저장장치) 완제품을 판매·설치하고 있다. 빅토리아주 멀그레이브에 현지 법인(LG Energy Solution Australia)을 두고, 9.6kWh부터 16kWh·32kWh까지 모듈화한 제품군을 공급 중이다.
설치 편의성(초슬림), 안전성(전기차 배터리 기술 적용), 에너지 효율(높은 충방전 사이클) 등을 강점으로 내세워 태양광 보급 확대에 걸맞은 저장 솔루션으로 호주 소비자에게 인지도를 쌓아가고 있다.
삼성SDI는 직접 가정용 배터리를 판매하기보다는 배터리용 음극재(Anode Active Material)와 NCM(니켈·코발트·망간) 원소재를 호주 광산업체에 공급하는 방식으로 진출 중이다. 2020년부터 호주 노보닉스(NOVONIX)에 음극재를 공급하며, 향후 가정용·상업용 ESS용 셀 모듈 사업으로 확대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SK온은 ESS용 배터리 셀보다는 원재료(리튬)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2024년 호주 레이크리소스(Lake Resources)와 10년간 리튬 장기 공급 계약(MOU)을 맺고, 북미 ESS 공장에 투입할 배터리 원료를 호주에서 안정적으로 조달하기로 했다.
이외에도 코캄(Kokam) 등 시스템 통합(SI) 기업이나 BluSigma(배터리 모듈·팩), 에코프로비엠·포스코케미칼(양·음극재), 엔켐(전해질) 등 배터리 소재·부품사를 중심으로 호주 ESS 시장 공략이 점차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호주 가정용 배터리 붐은 완제품 제조사뿐 아니라 원·부자재 공급사, 시스템 통합사까지 한국 배터리 생태계 전반에 기회로 작용할 전망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