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최대 완성차 업체 폭스바겐그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최소 100억 달러(약 13조7200억 원)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대신에 같은 규모의 관세 감면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는 미국 정부가 자국 생산 확대를 명분으로 수입차에 부과한 27.5% 관세로 인해 실적 하향 조정을 발표한 직후 나온 제안이라고 미국 경제전문지 포춘이 2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 관세 감면과 맞바꾸는 투자안…“회사별 특별 합의 가능해야”
올리버 블루메 폭스바겐그룹 최고경영자(CEO)는 전날 “미국에 대한 막대한 투자를 제공할 수 있다”며 “모든 기업이 미국에서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기업별 개별 협상이 가능해야 한다”고 밝혔다. 폭스바겐은 올해 2분기에만 미국 세관에 납부한 관세가 약 14억 달러(약 1조9200억 원)에 달한다고 공개했다.
이에 대해 쿠시 데사이 백악관 대변인은 포춘과 인터뷰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내 신규 투자를 언제나 환영한다”면서도 “관세를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국 내에서 생산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 관세 폭탄에 실적 전망 하향…“10% 관세면 수익률 5%까지 회복”
폭스바겐은 이날 연간 매출과 수익성, 현금흐름 등 2025년 실적 전망을 전면 하향 조정했다. 이 회사는 미국의 수입차 관세율 27.5%가 현행 수준으로 유지될 경우 영업이익률에서 2%포인트 손실을 예상한다고 밝혔다. 반면 관세가 10% 수준으로 낮아질 경우 수익률은 5% 수준까지 회복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폭스바겐은 올해 1분기 1억1700만 달러(약 1600억 원)의 미국 관세를 납부했지만 2분기에는 이 금액이 14억 달러(약 1조9460억 원)로 급증했다. 이는 같은 기간 GM이 관세 11억 달러(약 1조5290억 원)를 웃도는 수치다.
폭스바겐은 현재 테네시주 채터누가 공장에서 ‘아틀라스’ SUV와 ‘ID.4’ 전기차를 조립하고 있으며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블라이드우드에는 20억 달러(약 2조7400억 원)를 투자해 ‘스카우트’ 브랜드 전기차 생산기지를 건설 중이다. 다만 이 투자액이 이번 100억 달러 제안에 포함되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 “양자협정 관행화되면 무역질서 무너진다” 전문가 우려
트럼프 행정부는 외국산 승용차 수입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는 근거를 들어 관세 부과 권한을 백악관으로 이관하는 법적 허점을 활용해왔다. 그러나 이같은 방식의 개별 기업과의 양자 협상이 장기화될 경우 국제 무역질서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독일 킬 세계경제연구소 무역연구센터의 율리안 힌츠 소장은 포춘에 “규칙 기반 체제의 장점은 모든 경제주체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점이었지만 지금은 모든 기업이 개별 협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며 “이런 흐름이 굳어지면 장기적으로 번영을 해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