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초점] 중국, 티베트 고원에 '세계 최대' 48피트 망원경 건설

글로벌이코노믹

[초점] 중국, 티베트 고원에 '세계 최대' 48피트 망원경 건설

베이징은 '침묵'…미국 "기술 패권 흔들릴 수도" 민감한 반응
천체 관측 너머 '우주 감시' 가능성…미·유럽과 '거대 망원경' 경쟁
세계 최대 규모인 128피트(약 38.6m) 유럽 망원경이 칠레에 건설 중이다. 사진=게티 이미지/AFP/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세계 최대 규모인 128피트(약 38.6m) 유럽 망원경이 칠레에 건설 중이다. 사진=게티 이미지/AFP/연합뉴스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 경쟁이 지상을 넘어 우주로 확장되는 가운데, 중국이 티베트 고원에 세계 최대 규모의 광학 망원경(LOT, Large Optical Telescope)을 비밀리에 건설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26일(현지시각) 폭로했다. 중국 정부는 공식 언급을 피하지만, 미국의 최고 천문학자들은 이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 단서들을 추적하며 양국 간 보이지 않는 '망원경 전쟁'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이러한 의혹은 여러 단서에서 시작됐다. 2025년 1월 중국 국영기업 난징천문기기는 누리소통망(SNS)에 48피트(약 14.5미터) 구경 망원경의 돔 건설 사업을 2200만 달러(약 304억 원)에 따냈다고 밝혔다. 이어 4월에는 한 과학 연구소를 찾은 학생들이 연구원들에게서 해당 규모 망원경의 반사경 배열을 봤다는 글을 누리소통망에 올렸다. 여기에 난징천문광학기술연구소의 구보중 박사가 프로젝트 주도 과학자로 거론되고 있다. 그는 은퇴 전 망원경을 완성하고 싶다는 포부를 관영 매체에 밝혀 의혹을 키웠다. 다만 그는 망원경의 구체적 내용에는 입을 닫고 있다. 이 망원경은 2030년쯤 가동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경쟁 망원경 프로젝트를 이끄는 하버드대의 로버트 커슈너 명예교수는 "보통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과시가 있을 법한데 말입니다"라며 중국의 의도적 침묵에 의문을 나타냈다.

◇ 천체 관측 너머 '우주 패권' 경쟁


중국의 의도를 두고 전문가들의 분석은 엇갈린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천문대 운영을 맡은 비영리 단체의 맷 마운틴 대표는 "도대체 왜 그들은 그런 일을 하는 걸까?"라고 반문하며 두 가지 가설을 내놓는다. 첫째는 천문학 발전이 과학과 군사 목적 모두에 기여한다는 점이다. 거대 망원경은 북반구에서 가시광 및 적외선 영역의 천체를 관측하는 본연의 임무 외에도 인공위성, 우주물체 감시 등 이중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잠재적 군사·우주 기술 이점도 확보할 수 있다. 두 번째 가설은 과학 인재 양성을 위한 국가 투자라는 점이다. 마운틴 대표는 "천문학은 과학, 기술, 공학, 수학(STEM)으로 이끄는 '입문용 약물'과 같다"고 비유하며, 중국이 어린이와 청소년의 과학계 진출을 이끌어 장기 포석으로 천문학에 투자할 수 있다고 봤다.

중국의 이런 움직임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쪽은 미국이다. 커슈너 명예교수는 지난 반세기 동안 천체물리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 23명 중 18명을 배출한 미국의 압도적 위상이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중국이 망원경 터로 잡은 칭하이성 티베트 고원(해발 4500m)은 건조한 기후와 높은 고도, 적은 광공해로 최적의 천문 관측 장소다. 그는 "더 큰 망원경은 더 선명한 이미지를 뜻한다"며 생명체가 살 수 있는 '골디락스 존'의 행성을 더 많이 찾는 등 획기적인 과학적 발견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현재 허블과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의 주 반사경 직경이 각각 약 8피트와 21피트, 지상 최대 망원경들은 약 33피트다. 중국의 48피트 망원경이 완성되면 즉시 북반구 하늘의 관측 우위를 점한다.

◇ 美, 예산 발목 잡혀 '거대 망원경' 계획 차질


물론 하늘의 패권을 향한 경쟁에는 다른 주자들도 있다. 칠레에서는 유럽 남반구 천문대가 주도하는 39미터 구경의 '초거대 망원경(ELT, Extremely Large Telescope)'이 건설 중이다. 커슈너가 이끄는 '30미터 망원경(TMT)' 프로젝트는 미국, 캐나다, 일본, 인도 등이 참여해 하와이에 98피트(약 30미터) 망원경 건설을 추진한다. 약 10억 달러(약 1조3845억 원)에서 20억 달러(약 2조7690억 원)의 막대한 비용이 드는 이 거대 과학 프로젝트에 캘리포니아에 거점을 둔 컨소시엄이 칠레에 짓는 83피트 '거대 마젤란 망원경(GMT)'까지 뛰어들어, 세계 각국은 하늘을 향한 '거대한 눈'을 갖기 위한 경쟁을 벌인다.

커슈너 명예교수는 중국의 위협을 근거로 워싱턴 정계 설득에 나섰다. 중국이 티베트 고원에 망원경 터를 개발하고 남반구 관측을 위해 칠레까지 알아보고 있다는 정보를 들고 미 의회와 국립과학재단(NSF) 관계자들을 만났다. 그러나 지난 5월 트럼프 행정부가 NSF의 한 해 예산을 90억 달러(약 12조 4605억 원)에서 40억 달러(약 5조 5380억 원)로 크게 삭감하자고 제안하며 제동이 걸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NSF는 예산 요청서에서 GMT 사업만을 지지하며 TMT 프로젝트를 위축시켰다.

다행히 7월 중순, 미 상원 세출 위원회가 NSF 예산 삭감을 최소화하고 GMT와 TMT 프로젝트 모두를 지지한다고 밝혀 커슈너는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았다. 커슈너는 의회를 향해 "중국의 노력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승인해 달라고 촉구해, 우주를 둘러싼 양국의 패권 경쟁이 새 국면을 맞았음을 보여줬다. 중국 정부의 공식 발표는 없지만 예산 집행과 현장 증언 등 여러 신호로 미뤄볼 때, 해외 과학계에서는 중국의 '조용한' 초대형 망원경 건설이 상당히 진행된 것으로 보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