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연방대법원까지 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을 근거로 외국산 제품에 대규모 관세를 부과한 조치에 대해 연방법원 항소심 판사들이 강한 회의적 시각을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에 관한 미 의회의 권한을 일방적으로 침해했다는 비판이 법원 심리에서 정면으로 제기됐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각) 폴리티코에 따르면 미국 연방순회항소법원은 이날 워싱턴DC 연방항소심에서 열린 공개 변론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권한에 대한 법적 근거를 집중적으로 검토했다.
이번 소송은 지난 2~4월 사이 트럼프 대통령이 발동한 일련의 행정명령을 놓고 민주당 주 정부 11곳과 민간 기업들이 위헌 소송을 제기한 데 따른 것이다.
◇ 판사들 “IEEPA는 관세 언급조차 없어”…의회 권한 침해 지적
지미 레이나 판사(버락 오바마 대통령 지명)는 이날 공개 변론에서 “IEEPA 조문 어디에도 ‘관세’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고 지적했고, 티머시 다이크 판사(빌 클린턴 대통령 지명)는 “IEEPA가 대통령에게 의회가 수년간 정비해 온 관세 체계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바꾸는 권한까지 준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트럼프 대통령이 “경제적 위기”라는 명분으로 사실상 무제한에 가까운 관세 부과 권한을 행사한다면 미국의 기존 통상 절차가 무력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미 법무부는 “트럼프 대통령은 국가 안보와 제조업 경쟁력 약화, 무역적자 급증이 야기하는 비상사태에 대응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977년 제정된 IEEPA를 근거로 중국, 캐나다, 멕시코 등으로부터 유입되는 펜타닐 및 전구체 물질 차단, 장기화된 대외 무역적자 해소를 목적으로 ‘상호주의 관세’를 부과해왔다. 지난 4월 초부터는 모든 수입품에 10%의 기본 관세를 적용했고, 이후 일부 국가와의 협상 타결에 따라 한시적으로 인상을 유예했다.
◇ “무역적자, 비상사태 아냐”…IEEPA 요건 충족 놓고 공방
IEEPA는 대통령이 ‘비정상적이거나 예외적인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비상경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그러나 원고 측인 민주당 주 정부와 기업들은 미국의 무역적자가 수십 년간 지속된 구조적 현상이라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명분은 IEEPA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법무부 측은 “미국의 무역적자는 2019년 5590억 달러(약 77조7936억 원)에서 2024년 9030억 달러(약 125조8155억 원)로 폭증했다”며 “이로 인해 제조업 기반이 약화되고 군수 생산 능력까지 위협받고 있어 비상사태로 간주할 수 있다”고 맞섰다.
이에 대해 리처드 타란토 판사(오바마 대통령 지명)는 “원고 측이 제조업 감소와 군수 대응 능력 저하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에 대해 충분히 반박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으며, 킴벌리 무어 수석판사(조지 W. 부시 대통령 지명)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미국 안보와 제조업 기반 붕괴, 일자리 상실 등을 명확히 ‘비상 위협’으로 서술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 하급심 “권한 남용” 판결…대법원행 가능성도
앞서 뉴욕 소재 미 국제무역법원(CIT)은 지난 5월 트럼프 대통령이 IEEPA 권한을 넘어섰다며 해당 관세를 무효화하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에 불복해 연방 항소심에 항소했으며 법원은 사건의 중요성을 고려해 11명의 전원합의체로 신속 심리를 진행 중이다. 현재 재판부는 민주당 대통령이 지명한 판사 8명, 공화당 대통령 지명 3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판사는 포함돼 있지 않다.
트럼프는 현재도 IEEPA를 활용해 일본, 영국, 베트남, 유럽연합 등과 관세 협상을 벌이고 있으며 일부 국가에는 8월 1일부터 15~2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할 계획이다. 또 브라질에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에 대한 재판과 표현의 자유 억압 등을 이유로 50%의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이번 소송은 대법원까지 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