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90% 생산…스스로 키운 경쟁자와 미·중 갈등에 '발목'
"앞으로 5년간 탈중국 불가능"…정부 지원 업은 공급망에 발 묶여
"앞으로 5년간 탈중국 불가능"…정부 지원 업은 공급망에 발 묶여

미국과 중국 사이의 무역 긴장과 관세 부과는 애플의 비용 부담을 크게 늘리며 현실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 애플의 팀 쿡 최고경영자(CEO)는 "이전 분기 관세 때문에 8억 달러(약 1조1073억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했고, 다음 분기에는 11억 달러(약 1조5228억 원)가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애플이 막대한 자본과 기술을 투입해 키워낸 중국의 공급망 생태계는 이제 화웨이 같은 강력한 경쟁자를 길러내는 토양이 됐다. 이들 중국 기업은 애플의 공급망과 기술을 이용해 고성능 경쟁 제품을 내놓으며 애플을 위협하고 있다. 화웨이의 폴더블폰 '메이트 XT'는 아이폰보다 높은 가격에도 매력적인 기능으로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고, 업계에서는 애플이 이 기술 수준을 따라잡기까지 최소 2027년은 돼야 할 것으로 내다본다. 한때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시장을 이끌었던 애플이 스스로 키운 경쟁자에게 거센 추격을 받는 처지가 된 것이다.
◇ '달걀 한 바구니에'…자체 공장에서 계약생산으로 전환
언론인 패트릭 맥기는 그의 책 'Apple in China'에서 애플이 '모든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는' 위험한 선택을 한 배경을 파헤쳤다. 그는 200명이 넘는 전·현직 애플 관계자들을 취재해 애플 공급망 전략의 변화를 깊이 추적했다.
애플은 과거 여러 지역에 생산기지를 나누어 두었지만, 디자인 같은 핵심 역량에 집중해야 한다는 경영 이론이 떠오르면서 제조를 외부에 맡기는 계약생산 방식으로 바꿨다. 초기에는 미국 안의 공장을 이용했으나 이내 대만 기업 폭스콘의 뛰어난 능력과 중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에 힘입어 중국 중심의 생산 체계를 구축했다.
애플의 조달 전략은 업계에서 독특하기로 이름나 있다. 패트릭 맥기는 "아이폰이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20% 미만으로 업계 전체 이익의 80%를 넘게 가져간다"고 짚으며 "다른 어떤 시장에도 이처럼 막강한 지배력을 가진 소수 주자는 없다"고 분석했다.
이 독점적 이익 구조의 배경에 대해 맥기는 "흔히 애플의 상표 매력 덕분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절반만 맞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는 애플이 공급업체를 강하게 통제하며 아주 적은 이윤만 남겨주었다고 설명한다. 공급업체들은 당장의 이익은 적더라도 애플과 협력하며 최첨단 제조 기술을 배우고, 이를 발판 삼아 다른 스마트폰 제조사와의 계약에서 더 높은 이익을 얻는 전략을 택했다. 이 방식을 가장 먼저 알아채고 적극적으로 이용한 기업이 바로 폭스콘이다.
애플의 공급망은 경쟁사들과 근본부터 다르다. 해마다 수십 종의 모델을 소량 생산하는 경쟁사들과 달리 애플은 소수의 주력 모델을 대량 생산한다. 맥기는 "애플의 제품군은 아주 간소했다"면서 "애플은 고급 모델을 수제품처럼 마무리하며 대량 생산했다. 이를 위해 이전에 없던 새로운 제조 공정을 직접 고안해야 했고, 이 과정에서 공급업체와 아주 긴밀하게 협력했다"고 말했다.
애플의 통제는 공급업체가 쓸 설비를 직접 설계하고 구매하는 데까지 미쳤다. 나아가 "노동자 임금과 기숙사 비용부터 자재명세서(BOM), 기계 비용까지 공급업체 운영 비용의 모든 세부 정보를 요구했다"고 맥기는 밝혔다. 때로는 애플이 직접 부품을 조달하며 "공급업체 자신보다 그들의 운영 비용을 더 자세히 아는 때도 많았다"고 한다. 이렇듯 긴밀한 협력은 애플을 중국 기술과 생산 산업 집적지에 깊이 통합시켰다.
◇ 中 정부의 전폭적 지원, '차이나 집중'의 숨은 동력
애플과 폭스콘의 집중 전략 뒤에는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중국 정부는 생산 기반 시설 지원, 노동력 동원, 규제 완화 등 여러 방면으로 폭스콘과 공급업체를 도왔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몇 해가 걸릴 공장 설립 허가가 중국에서는 단 몇 달 만에 나왔다. 정부는 공장터를 거저 주고 도로 같은 기반 시설을 깔아주었으며, 초기에는 공작기계까지 대신 사주기도 했다. 모자라는 노동력은 가난한 지역에서 사람을 데려와 해결했다. 노동과 환경 규제는 고도의 제조업 기반을 세운다는 목표 아래 뒤로 밀렸다.
380조 원이 넘는 큰 규모의 투자를 통해 만든 애플의 중국 의존 구조는 미·중 갈등과 중국 기업과의 경쟁 심화라는 중대한 위험으로 작용하고 있다. 패트릭 맥기는 애플이 중국이라는 덫에 단단히 걸렸다고 진단한다. 중국 정부가 자국 제조업체를 우대하며 애플의 다각화 시도를 어렵게 하므로 탈출은 더욱 쉽지 않다. 핵심 기술을 보유한 공급망 산업 집적지가 중국 외 지역에는 사실상 전무하다. 다른 곳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려 해도 중국 정부가 전력 공급 제한이나 원자재 통제 같은 방식으로 제동을 걸 수 있다. 전문가들 역시 "앞으로 5년 안에 애플이 중국 의존도를 뚜렷하게 낮추기는 어렵다"고 본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