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테크·은행 주도로 연간 1.1조 달러 돌파 전망…견고한 실적이 배경
단기 주가 부양 vs 장기 성장 저해 '양날의 검'…버핏·핑크는 '경고등'
단기 주가 부양 vs 장기 성장 저해 '양날의 검'…버핏·핑크는 '경고등'

비리니 어소시에이츠(Birinyi Associates)의 집계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이 올해 발표한 자사주 매입 계획 규모는 현재까지 9836억 달러(약 1364조 원)에 달한다. 이는 1982년 데이터 집계 이래 연초 기준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이 추세라면 2025년 연간 총 매입액은 1조1000억 달러(약 1526조 원)를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매입 열기는 최근 더욱 거세졌다. 견고한 기업 실적과 무역 협상 타결 등의 호재가 겹쳤던 지난 7월 한 달 동안 발표된 자사주 매입 규모는 1656억 달러(약 229조 원)로, 이전 7월 최고 기록인 2006년의 877억 달러(약 121조 원)를 훌쩍 뛰어넘었다. 시장이 약세를 보였던 올해 초에도 매수세는 강력했다. S&P 다우존스 인다이시즈(S&P Dow Jones Indices)에 따르면 S&P500 기업들은 올해 1분기(1~3월)에만 2935억 달러(약 407조 원) 규모의 자사주를 사들였는데, 이는 분기 기준 사상 최고치이자 직전 분기(2024년 4분기) 대비 21% 증가한 수치다.
◇ 빅테크와 대형 은행이 매입 주도
자사주 매입은 소수의 대기업이 주도하는 양상이다. 상위 20개 기업이 전체 매입액의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특히 인공지능(AI) 붐의 수혜로 막대한 현금을 축적한 빅테크 기업들이 앞장서고 있다. 애플(Apple)은 지난 5월 최대 1000억 달러(약 138조 원)규모의 자사주 매입 계획을 약속했으며, 구글(Google)의 모회사 알파벳(Alphabet) 역시 700억 달러(약 97조 원)규모의 매입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대형 은행들도 가세했다. JP모건 체이스(JPMorgan Chase)는 500억 달러(약 69조 원),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는 400억 달러(약 55조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밝혔으며, 모건 스탠리(Morgan Stanley)도 200억 달러(약 27조 원)의 매입을 재승인하며 행렬에 동참했다.
◇ 넘치는 현금과 불확실성이 낳은 현상
자사주 매입 급증의 배경에는 우선 견고한 이익 성장과 감세 정책으로 두둑해진 기업들의 현금 보유고가 있다. 제프리 예일 루빈(Jeffrey Yale Rubin) 비리니 어소시에이츠 대표는 "상황은 모두가 생각하는 것보다 좋다"며 "기업들은 현금이 넘쳐나며, 실적이 개선되기 전부터도 재무 상태는 건전했다"고 분석했다.
동시에 무역 전쟁을 둘러싼 불확실성도 자사주 매입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많은 기업이 공장 증설 같은 장기 투자 계획을 보류하면서, 당장 유입되는 현금을 활용할 가장 매력적인 수단으로 자사주 매입을 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로건 캐피털 매니지먼트(Logan Capital Management)의 빌 피츠패트릭(Bill Fitzpatrick) 상무이사는 은행들의 대규모 매입을 근거로 "자사주 매입은 현재 소비자의 재정 상태가 상당히 양호하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 '양날의 검' 된 자사주 매입, 평가는 극과 극
자사주 매입은 유통 주식 수를 줄여 주당순이익(EPS)을 높이고 주가를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어 통상 기업과 투자자 모두에게 환영받는다.
하지만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회의론자들은 이미 주식 가치가 높게 평가된 상황에서 자사주 매입이 시장을 인위적으로 부양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기업들이 주가가 쌀 때가 아닌 비쌀 때 매입하는 경향이 있어 자금의 비효율적 사용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기업들이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인한 실적 타격을 감추기 위해 자사주 매입을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한다.
◇ '투자의 귀재' 버핏은 관망…월가 거물들도 '우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Warren Buffett)과 같은 거물급 투자자들은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 그의 회사 버크셔 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는 4분기 연속 자사주를 매입하지 않았으며, 6월 말 기준 현금 보유액은 사상 최대인 3440억 달러(약 477조 원)에 달한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의 래리 핑크(Larry Fink) 회장 역시 연례 서한을 통해 "자사주 매입이 단기 수익을 줄 수는 있지만, 장기 성장 투자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자사주 매입 열풍은 증시를 떠받치는 핵심 동력이 될 전망이다. 팩트셋(FactSet)에 따르면 2분기 실적을 발표한 S&P 500 기업 91% 중 82%가 시장 예상치를 웃도는 호실적을 기록했다. 빌 피츠패트릭은 "이는 시장 전반에 좋은 징조"라고 말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