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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한국, 화석연료 의존에 '기후 악당' 오명…기술강국 명성 무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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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한국, 화석연료 의존에 '기후 악당' 오명…기술강국 명성 무색

재생에너지 비중 OECD 4분의 1…국가 독점·관료주의가 전환 가로막아
정권 따라 널뛰는 정책…미래세대는 법정으로 향한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 대한민국의 기후위기 대응 성적표는 초라하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만 4640달러로 세계 평균(1만 4210달러)을 크게 웃돌지만, 기후 환경에 미치는 부담은 정반대다.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5억 7742만 톤으로 세계 10위, 1인당 배출량은 11.16톤으로 세계 평균(4.7톤)의 두 배를 넘는다. 사진=삼척 블루파워 홈페이지이미지 확대보기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 대한민국의 기후위기 대응 성적표는 초라하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만 4640달러로 세계 평균(1만 4210달러)을 크게 웃돌지만, 기후 환경에 미치는 부담은 정반대다.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5억 7742만 톤으로 세계 10위, 1인당 배출량은 11.16톤으로 세계 평균(4.7톤)의 두 배를 넘는다. 사진=삼척 블루파워 홈페이지
영국 일간 가디언이 16일(현지시각) 대한민국을 '화석연료에 갇힌 기술 강국'이라 짚으며 기후위기 대응의 모순을 지적했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의 위상과 달리 기후위기 대응 성적표는 초라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만 4640달러로 세계 평균(1만 4210달러)을 크게 웃돌지만, 연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5억 7742만 톤(세계 10위), 1인당 배출량은 11.16톤으로 세계 평균(4.7톤)의 두 배를 넘는다.

정부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2018년 대비 40% 감축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지만, 현실의 에너지원은 여전히 화석연료에 묶여있다. 국내 전력의 60%를 석탄과 가스에 의존하는 동안 재생에너지 비중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34%)의 4분의 1 수준인 9%에 그친다. 전문가들은 한국전력 중심의 독점적 에너지 구조와 경직된 관료주의, 정권에 따라 급변하는 정책이 탈탄소 전환의 발목을 잡는다고 지적한다.

지난 1월, 동해안의 작은 도시 삼척에 2.1기가와트(GW)급 석탄화력발전소 '삼척블루파워'가 가동을 시작했다. K팝 그룹의 앨범 촬영으로 이름을 알린 맹방해변을 굽어보는 이 발전소는 한 해 130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뿜어낼 전망이다. 수명은 국가의 탄소중립 목표 시점인 2050년을 훌쩍 넘길 수 있다. 발전소 건설을 막고자 삼척으로 이주한 '청년기후긴급행동' 강은빈 대표는 "기후 비상사태로 화석연료 확대의 즉각적인 중단이 요구되는 속에서도 한국은 석탄발전소를 짓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삼척의 사례는 예외가 아니다. 세계 10대 기후 악당 국가로 꼽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 독점과 관행, 정치가 묶은 '탈탄소의 족쇄'

기후 대응 실패의 핵심에는 한국전력공사(한전)의 독점 구조가 있다. 한전이 송전·배전·소매를 독점하고, 한국남동·남부·동서·서부·중부발전 등 6개 발전 자회사가 석탄, 가스, 원자력 등 발전 시장 대부분을 장악하는 구조는 청정에너지 전환의 큰 걸림돌이다. 재생에너지 사업자들은 풍력발전소 하나를 짓는 데 평균 28개의 인허가를 받으려 여러 부처를 거쳐야 하는 '관료주의 미로'에 갇혀 사업이 수년간 지연되거나 비용 문제로 좌초하기 일쑤다. 2025년 인허가 간소화 법안이 통과됐지만, 실제 시행은 2026년부터다.

송전망 부족 문제도 심각하다. 지난 20년간 전력 수요는 98% 폭증했지만 송전망은 26% 늘어나는 데 그쳤다. 경남 밀양에서는 송전탑 건설을 둘러싸고 6년간 격렬한 갈등이 벌어졌고, 현재 전국적으로 10여 개 송전망 사업이 주민 반대로 멈춰 서 있다. 2025년 2월 '국가기간전력망설비 확충 특별법'이 통과됐지만, 시민단체들은 환경영향평가나 공청회 절차가 약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당진환경운동연합 김정진 활동가는 "갈등이 되풀이되는 까닭은 그 전기가 지역에서 쓰이지도 않으면서 우리 목소리는 전혀 듣지 않은 채 지역에 피해만 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960년대에 만들어져 2년마다 고치는 '전력수급기본계획' 역시 석탄과 원자력 같은 중앙집중식 대규모 발전에 맞춰져 있어 분산형 전원인 재생에너지와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이처럼 낡은 계획이 개선되지 못하는 배경에는 고질적인 정치 불안정성도 자리한다. 5년 단임의 정권에 따라 에너지 정책이 급변하는 '정치적 변덕'이 문제라고 외신은 지적했다. 2017년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을 선언했지만, 2022년 들어선 윤석열 정부는 이를 완전히 뒤집었다. 이런 정책 널뛰기는 장기 안목이 필수인 재생에너지 계획의 근간을 흔든다.

그 결과는 혹독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연료비가 급등했지만, 정부는 정치적 부담에 전기요금을 억제했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한전의 몫이 됐고, 2024년 부채는 205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액수로 불어났다. 2015년 도입한 '배출권거래제(K-ETS)'는 오염 유발자에게 책임을 묻는 대신 오히려 보상책이 됐다는 비판을 받는다. 대기업에 배출권을 공짜로 나눠준 결과, 시민단체 '플랜 1.5'의 분석에 따르면, 국내 10대 오염 유발 기업은 2015년부터 2022년까지 남는 탄소배출권을 팔아 4750억 원이 넘는 이익을 챙겼다.

철강·석유화학·조선·반도체 같은 에너지 다소비 산업 중심의 경제 구조는 에너지 전환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서울대학교 박상인 교수는 "중화학 공업에 대한 구조 의존은 국가 경제 구조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어 막대한 양의 안정적이고 값싼 전력을 필요로 한다"고 설명한다. 문제는 국내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은 해외 화석연료 사업의 주요 자금줄 노릇도 한다. 한국 조선업이 세계 LNG 운반선 시장을 이끄는 가운데, 공공 금융기관이 투자를 결정한 모잠비크의 '코랄 노르테 가스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이 사업 하나에서만 전 과정에 걸쳐 4억 8900만 톤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될 전망이다. 기후솔루션(SFOC) 오동재 팀장은 "국내에서는 기후 목표를 채택하면서 해외에서는 기후 파괴에 돈을 대는 위선"이라고 비판했다. 세계 최대 연기금 중 하나인 국민연금공단(NPS) 역시 2021년 '탈석탄'을 선언했지만, 국내 자산에 대한 투자 회수 일정은 2030년까지 미뤘다.

◇ 위기의 현실, 법정으로 향하는 미래세대

기후재앙이 현실이 되면서 변화를 바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2023년 홍수로 46명이 목숨을 잃었고, 올해 3월에는 서울 면적의 80%에 달하는 4만 8000헥타르의 산림이 불타 31명이 숨졌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이를 "경험해보지 못한 기후 위기"라고 말했다.

미래세대는 이제 법으로 기성세대에 책임을 묻는다. 지난 2월 11살 김유현 군 등 청소년들은 포스코의 노후 석탄 고로 개보수 계획을 막아달라며 세계 최초로 소송을 냈다. 김 군은 "기후변화로 봄과 가을이 사라지고, 아이들이 밖에서 마음껏 놀 기회도 함께 사라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앞서 2024년 헌법재판소는 정부의 소극적인 기후 정책이 미래세대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판결했다. 최근에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건설 계획 역시 법적 도전을 받고 있다.

자녀와 함께 시위에 나섰던 '정치하는 엄마들' 김정덕 활동가는 "어른들은 늘 '포스코 덕분에 우리 지역이 먹고산다'고 말했다"며 "제 아이가 건강한 환경과 경제 생존이라는 거짓된 양자택일 속에서 자라게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는 신규 석탄발전소 허가를 금지하고 낡은 시설을 폐쇄하는 한편, 남은 발전소는 탄소포집·저장(CCS) 기술 등을 써서 청정연료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또 2024년부터 최신 IPCC 가이드라인을 적용해 온실가스를 셈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평가는 다르다. 박상인 교수는 "현재의 계획으로는 2030년 배출 목표에 6~7%가량 미달할 것"이라며 "재생에너지 확대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 터나 시기가 없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해상풍력을 대규모로 늘리고 2035년까지 석탄 발전을 완전히 없애면 발전 부문 배출량을 82%까지 줄일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다시 삼척의 해변. 강은빈 대표는 거대한 발전소를 바라보며 말했다. "착취와 약탈 대신 분권과 자치가 자리 잡는 사회를 꿈꿉니다. 많은 전기나 돈 없이도 모두가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생활 방식과 정책을 퍼뜨리는 데 이바지하고 싶습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