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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일라이 릴리·노보 노디스크, 차세대 '경구용 비만약' 주도권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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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일라이 릴리·노보 노디스크, 차세대 '경구용 비만약' 주도권 경쟁

릴리, 편의성 앞세워 효능 열세 극복 시도…직접 비교 임상 결과에 주목
2030년 160억 달러 시장 선점 경쟁…주사제 이어 '알약 전쟁' 본격화
2030년 160억 달러 규모로 전망되는 경구용 비만 치료제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일라이 릴리와 노보 노디스크의 경쟁이 본격화됐다. 효능에서 앞선 노보 노디스크와 편의성을 내세운 릴리의 경쟁 결과에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미지=GPT4o이미지 확대보기
2030년 160억 달러 규모로 전망되는 경구용 비만 치료제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일라이 릴리와 노보 노디스크의 경쟁이 본격화됐다. 효능에서 앞선 노보 노디스크와 편의성을 내세운 릴리의 경쟁 결과에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미지=GPT4o
글로벌 제약사 일라이 릴리와 노보 노디스크가 비만 치료제 시장 주도권을 잡기 위해 새로운 무대인 경구용 치료제 시장으로 향하고 있다. 주사제 시장을 양분해 온 두 거인이 차세대 성장 동력인 '먹는 비만 치료제' 출시를 예고하며, 시장 판도를 바꿀 경쟁을 눈앞에 뒀다고 미 경제방송 CNBC가 지난 12일(현지시각) 보도했다.

2026년 미국 출시가 예상되는 경구용 치료제는 기존 주사제에 거부감을 느끼던 환자들의 치료 문턱을 크게 낮출 전망이다. 하지만 최근 릴리의 치료제가 예상보다 낮은 체중 감량 효과를 보이면서, 두 약물의 효능을 직접 비교하는 임상시험 결과가 앞으로 시장의 방향을 가를 최대 변수로 떠올랐다.

'알약' 비만약 시대 개막…릴리-노보, 정면충돌 예고


일라이 릴리와 노보 노디스크는 내년 미국 시장에 경구용 비만 치료제 출시를 목표로 막바지 준비에 한창이다. 현재 비만 치료 시장의 주류인 주 1회 주사제 GLP-1 계열 약물의 치료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 매일 먹는 알약은 새로운 시장을 열 '게임 체인저'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최근 릴리의 경구용 치료제 후보물질 '오르포글리프론'의 후기 임상시험 결과가 월가의 기대치를 밑돌면서 경쟁 구도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어졌다. 이 결과는 경구용 약물의 시장 수용성과 두 경쟁사 사이의 우위 다툼에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이런 상황에서 두 약물의 우열을 가릴 직접 데이터가 곧 공개된다. 일라이 릴리의 댄 스코브론스키 최고과학책임자(CSO)는 CNBC 인터뷰에서 "오르포글리프론과 노보 노디스크의 '경구용 세마글루타이드'를 직접 비교하는 임상시험 결과가 몇 달 안에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이 연구는 본래 제2형 당뇨병 환자의 혈당 강하 효과를 주로 살피지만, 체중 감량 효과도 함께 측정해 두 약물의 효능을 직접 비교할 중요한 잣대가 될 전망이다.

스코브론스키 최고과학책임자는 "오르포글리프론이 경구용 세마글루타이드와 비교해 좋은 성과를 낼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없었다면 이번 3상 직접 비교 임상시험을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각기 다른 임상시험 결과를 단순 비교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현재까지 공개된 데이터만 보면 노보 노디스크의 약물이 체중 감량 효과가 더 높고, 부작용 탓에 복용을 중단한 비율도 더 낮다. 이에 노보 노디스크의 마르틴 홀스트 랑게 최고과학책임자는 "데이터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며 우위를 자신했다.

효능의 노보 vs 편의성의 릴리…알약의 '결정적 차이'


두 회사가 개발하는 경구용 치료제는 성분과 특성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릴리의 오르포글리프론은 완전히 새로운 저분자 화합물(small molecule) 의약품인 반면, 노보 노디스크의 경구용 세마글루타이드는 기존 주사제 '위고비'와 동일한 성분의 펩타이드 기반 치료제다.

효능 면에서는 주사제가 여전히 압도적이다. 체중의 20% 이상을 줄이는 릴리의 '젭바운드'는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비만 치료제로 꼽힌다. 두 회사의 경구용 치료제는 모두 젭바운드에는 미치지 못한다. 최고 용량 기준으로 오르포글리프론은 약 12%, 경구용 세마글루타이드는 약 17%의 체중 감량 효과를 보였다. 더 낮은 효과를 감수하고 알약의 편의성을 택할 환자가 얼마나 될지가 시장 성패의 관건이다.

월가 "2030년 160억 달러 시장"…관건은 생산·가격 경쟁력


그런데도 월가는 경구용 치료제의 잠재력을 높게 평가한다. 2030년 약 800억 달러(약 110조 원) 규모로 커질 GLP-1 비만 치료제 시장에서 경구용 약물이 약 20%, 금액으로는 160억 달러(약 22조 원)에 이르는 거대 시장을 만들 것으로 내다본다.

스코브론스키 최고과학책임자는 멀리 보아 경구용 약물이 주사제를 넘어 비만 치료의 핵심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대부분의 환자는 최대 감량치보다 안정적인 공급과 복용 편의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며 오르포글리프론의 장점을 내세웠다. 오르포글리프론은 저분자 화합물이라 대량 생산이 쉽고, 복용 후 30분 동안 음식과 물 섭취를 금해야 하는 경구용 세마글루타이드와 달리 음식물 섭취에 제약이 없다. 반면 노보 노디스크는 '위고비'와 '오젬픽'으로 쌓은 막강한 브랜드 힘과 풍부한 임상 데이터가 강점이지만, 펩타이드 기반이라 제조가 까다롭고 원가가 높다는 단점이 있다.

BMO 캐피털 마켓의 에반 시거먼 분석가는 "오르포글리프론은 생산이 쉽고 음식 제한이 없어 강점이 있지만, 마이크 두스타르 신임 최고경영자가 이끄는 노보 노디스크가 결코 안주하지 않고 성공적인 출시를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릴리의 임상 결과 발표 뒤, 시장은 기대감을 다소 낮췄다. 이밸류에이트에 따르면, 시장 분석가들은 올해 5월부터 9월까지 오르포글리프론의 2032년 예상 매출을 평균 45억 달러가량 낮춰 145억 6000만 달러로 잡았다.

스코브론스키 최고과학책임자는 "우리는 과학을 예측하는 데는 성공했다. 주사제와 비슷한 안전성, 내약성, 효능을 갖춘 경구용 약물을 만들겠다고 약속했고, 이를 지켰다"며 "이제 시장이 어떻게 반응할지 지켜볼 차례"라고 말했다. 효과 중심의 주사제와 편의성 중심의 경구제가 함께 쓰이며 환자 맞춤형 치료 시장이 열릴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 과학의 성공이 시장의 성공으로 이어질지는 소비자와 의료계의 선택에 달렸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