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갈등 심화로 연금개혁 좌절 반복…한국 국민연금에 주는 교훈

고령자 복지비 급증으로 재정 악화
경제협력개발기구 자료를 보면 2001년 이후 프랑스와 영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65세 이상 고령자 복지 및 의료비 지출 증가폭이 다른 선진국을 크게 웃돌았다. 프랑스는 3.0%포인트, 영국은 2.5%포인트 늘어난 반면 다른 나라들의 평균 증가폭은 1.5%포인트에 그쳤다.
특히 영국은 2000년 이후 65세 이상 고령자를 위한 보건·의료비 지출이 두 배로 급증했으나 이에 맞는 세수 증가는 없어 인프라 투자를 위축시키고 국가 부채를 늘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분석했다.
영국 정부가 도입한 '트리플록' 제도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는 국가연금이 해마다 물가상승률, 임금상승률, 2.5% 중 가장 높은 수치만큼 오르도록 보장하는 제도다. 쉽게 말해 물가나 임금이 올라도, 전혀 오르지 않아도 최소한 2.5%는 연금을 올려준다는 뜻이다. 이런 구조 때문에 연금 지출이 늘어나는 속도가 고령자 수가 늘어나는 속도보다 훨씬 빨라지게 된다.
프랑스, 연금 수령자 소득이 현역세대 초과
룩셈부르크 소득연구 분석 결과 1970년 이후 프랑스와 영국에서 연금 수령자들의 실질 중위소득 증가율이 현역세대를 크게 앞질렀다. 프랑스는 65세 이상 고령자의 소득이 약 175% 늘어난 반면 18~64세 현역세대는 100% 증가에 그쳤다. 영국도 65세 이상이 175% 늘어나 현역세대의 125% 증가를 웃돌았다.
더욱 주목할 점은 프랑스에서 65세 이상 고령자의 평균소득이 현역세대 평균을 100으로 할 때 105 수준에 이르러, 조사 대상국 중 유일하게 고령자 소득이 현역세대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다른 나라들의 고령자 상대소득은 대부분 80~95 수준이었다.
연금개혁 시도마다 정치적 저항에 부딪혀
파이낸셜타임스는 양국에서 연금개혁을 시도한 정치인들이 번번이 정치적 타격을 받았다고 분석했다. 영국에서는 테레사 메이 전 총리와 앤디 번햄 전 보건장관이, 프랑스에서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미셸 바르니에 전 총리, 프랑수아 바이루 현 총리가 모두 고령화 사회의 재정부담 분담을 위한 개혁안을 내놓았다가 여론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특히 마크롱 대통령의 은퇴연령 상향 조정안은 전국적 시위를 불러일으켰고, 바르니에 전 총리는 연금 인상 6개월 연기 제안으로 정부가 무너지는 원인을 제공했다. 바이루 현 총리도 같은 공약 철회 거부로 두 번째 정부 붕괴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프랑스 정치분석가 프랑수아 발랑탱은 "연금이 프랑스 공공재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커서 작년 국방부 예산의 6분의 1에 해당할 정도"라며 "연금 지출을 국방예산에서 빼고 계산하면 프랑스는 북대서양조약기구의 국내총생산 대비 2% 국방비 지출 목표도 달성하지 못할 상황"이라고 말했다. 즉, 프랑스가 NATO 기준을 맞추려면 연금 지출까지 국방예산에 포함해서 계산해야 할 만큼 순수 군사비 지출이 부족한 현실이다.
수학적 현실과의 괴리 심화
파이낸셜타임스는 양국 유권자들이 정치인들의 재정운용을 비판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더 큰 연금을 마술처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영국에서 부유층을 대상으로 재산세를 걷어도 그 세수는 트리플록 제도가 단순히 임금상승률에만 연동하는 방식보다 매년 추가로 드는 비용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다.
지난해 영국 총선에서 노동당이 승리한 후에도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노동당 정부는 연금 수령자 대상 겨울 난방비 보조금의 소득조사 도입 계획을 철회해야 했으며, 유권자들은 연금 수령자에 대한 노동당의 냉대를 정부 출범 초기 최대 실정으로 평가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전했다.
한국도 급속한 고령화와 연금 지출 증가로 비슷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어, 프랑스와 영국의 사례는 정치적 인기에 치우친 연금정책이 장기적으로 세대 간 형평성을 해치고 재정 지속가능성을 위협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교훈이 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국민연금 개혁을 둘러싸고 '소득대체율은 즉각 올려주고 보험료는 조금씩 올리니 젊을수록 더 길게 더 많은 보험료를 내야 한다'는 세대갈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